산행기 2

염초봉 맛보기

末人 2007. 9. 20. 20:46

숨은벽 산행기

산허리를 감싸도는 희뿌연 물안개가 아름답다.
산을 오르는 우리 17명의 긴 행렬이 다 지나도록
내려오던 발거름을 멈추고 기다려주던 다른 등산객들이 불만(?)스런 탄성을 내 지른다.
"웬 일행이 이리도 많아요?
도대체 어디가 끝이요? 꼬리가 안보이는군..."
꼬리가 안보이긴 왜 안보여...ㅋㅋ
그 사람 시력이 문제지.
언제봐도 듬직해 보이는 거구-방랑자님이 최후미를 맡아
한명의 낙오자나 뒤쳐지는 회원들을 추스리며 오는데
그 큰 거구가 안보이다니...
도관산우회 역사이래
최대인원의 산행은 오전 10시30분,
구파발 1번 출구에서의 집결이 완료된 싯점부터 시작됐다.
80m/m 의 폭우예보 따윈 아랑곳없이
산행에 동참해 준 17명의 회원여러분들의 표정은 무척 밝아 있었다.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고,회비를 각출하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각자의 베낭에 분배해 담고 버스에 올랐다.
10여분을 달려 북한산 입구에서 하차,
계곡을 타고 오르는 산행을 시작했다.
불어난 계곡물이 시원스런 물소리를 내며 아래로아래로 쏟아져 흐른다.
온통 물기진 산길엔 빗줄기가 하영없이 뿌려댄다.
우산을 받쳐들기도 하고,판쵸의를 걸치기도 하고,비옷을 입기도 하며
빗속을 뚫고 오른다.
오늘의 목표는 염초봉-
이미 매표소 부근에 모여
산악대장님의 일장 훈시와 코스설명을 듣고 출발한 터라
우리는 선두와 후미의 간격을 최소한으로 좁히며 산을 올랐다.
우중 산행이라
예정됐던 코스를 일부 수정했다.
원효봉을 생략하고 계곡길을 타고 오르다
위문 아래 약수터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인적이 뜸한 곳이라 오솔길같이 한적한가 싶더니
이내 천길만길 깍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위로
겨우 사람하나 통과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길을 만난다.
나뭇가지가 베낭에 걸리기도 하는 그런 좁은 산길을 통과하고 나니
이번에 크고작은 바위 조각들이 널부러진 돌길이 펼쳐진다.
뭉툭뭉툭한 돌들을 디디며 급히 떨어지는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다시 또 급경사의 길을 오른다.
길도 아닌 길 같았는데 정확하게 목적지인 염초봉을 찾는데에는
대장님의 오랜 산행경험과
염초봉에 관한한 손바닥 위에 올려놓듯 빠삭한 법향님의 유도가 큰 힘이었다.
날개를 달은 양 급경사 길도 펄펄 날아가듯 오르는 법향님의 놀라운 체력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염초봉의 목 부위 쯤 될까?
먼저 온 한패거리의 등산객들이 무리지어
가져온 천막을 치고 있다.
산 정상 부근,
그것도 바위 산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넓다란 평지의 공간이 있다니 경이롭다.
희뿌연 안개가 휘감고 도는
염초봉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또 다른 풍경은 한폭의 동양화와도 같다.
우리는
산을 타고 넘어가는 물안개의 신비로운 흐름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암벽을 끼고 돌아가다 몇 거름 바위를 오르니
여긴 또 어인된 공간인가?
신비롭게도 우리 17명이 둘러앉기 딱 좋을 정도의 바위 위의 평지가
흡사 비밀 요새처럼 나타난다.
깍아지른 90도 절벽 바로 아래였다.
절벽 바위엔 암벽을 타던 이들이 로프를 걸기위해 박아놓은 (?)이
군데군데 보인다.
우리의 오늘의 호프 법향님이
바위를 올라 그 곳에 끈을 묶고 천막을 쳤다.
급하지만 아주 잘 쳐진 간이 천막아래
비록 오늘 동참은 못했지만
석천님이 야생화님 편에 들려 보낸
우리 회원들을 위해 구입한 돋자리(?)를 깔았다.
각자 짊어 지고 올라온 食,酒,飮,果를 꺼내놓으니
우리 앞엔 순식간에 진수성찬이 펼쳐진다.
비록 염초봉을 정복하진 못했지만
우린 염초봉이 지닌 약간은 신비스런 맛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식사후 우린 염초봉을 돌아 내료오길 포기하고 다시 오던 길을 와야만 했다.
대원들의 안전을 위하여
암벽 코스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염초봉을 완전히 반대편으로 돌아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그러는 와중에 일월서생님과 비봉님은 개인 사정상 중도 하산을 했고
남은 우리 15명의 대원들은 계곡을 타고 북한산의 서북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계곡은 북한산의 또 다른 절경이었다.
문득 우리가 내려온 곳을 뒤돌아 봤다.
아! 숨은 벽
숨어 있어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숨은 벽이
비구름 속에서 나타났다간 이내 사라자고
또 잠시 나타났다간 사라진다.
서북쪽에서 올려다 보는 염초봉,백운대,숨은 벽..
대머리 까까중인줄만 알았던 백운대가
긴 장발의 모습으로 보이는 곳...
북한산의 크기가 이토록 넓은가를 새삼 실감하며 우리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폭포가 쏟아져내리고
선녀탕과도 같은 넓고 깊고 깨끗한 물 속에 모두들 몸을 던져 넣는다.
산행에서 쌓였던 피로와 땀을 씻어내며
모두들 순간적으로 동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장난을 치고 물에 안들어가려는 이를 물속으로 강제로 처 박아 물을 먹이기도 하며
북한산의 하루를 씻어내고 있었다.
하산하다가 문득 다시 오름길로 우리를 끌고 가는 법향님,
따라만 와 달란다.
걷기에도 편한 굵은 왕모래길로 이루어진 오솔길을 타고 한참을 가다보니
나무장작으로 고기를 굽느라 연기가 무럭무럭 오르는 어느 촌가의 식당이 나왔다.
600g 에 1만원이라는 나무장작 돼지바베큐에 한잔을 나누며
한사람한사람 일어나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을 거치는 동안
서먹했던 회원 상호간에는 이제는 떨어져선 아니될
끈끈한 동료로써의 자리매김을 하는 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법향,
그의 농부가가 지긋이 눈감은 모습을 뚫고 열창으로 쏟아져 나올 때
그 곳의 우리 회원 뿐만이 아니고
다른 손님들까지도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왔다.
그새 빗줄기는 폭우로 바뀌어 우리가 앉은 등뒤 처마 밖에서 퍼부어 대고 있었다.
북한산 서북자락 효자리 민가
고즈넉한 북한산의 정취에 파묻혀
돌아가며 뽑아내는 회원들의 열창에 파묻혀
나누는 술잔 속에,
나누는 우정 속에,
염초봉 등정의 하루는 그렇게 그렇게 막을 내려 가고 있었다.
길게 뻗쳐진 아스팔트 길
희 검은 어둠을 뚫고 버스가 달려오는 동안
한대의 차량도 지나지 않은 조용한 시골길...
들떠있었던 우리네 마음도
이제 그 아스팔트 길의 조용함처럼
차분해지고 있었다.
행복한 하루...
그런 하루를 만들어 준
모든 회원님들께 감사드린다.

산행일시:2003년 9월 7일
산행참석자:
말인/상운/도봉산/제강/코알라/사계절/파라오/
야생화/마음/초행/젠틀/감자바위/방랑자/
사패능선/법향/일월서생/비봉(1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