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1

그녀--3

末人 2005. 8. 31. 14:17
그녀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생각보다
살이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꼬마 인형에서나 볼수있는
해맑은 미소가 인상적인 그녀입니다.

약속시간보다 10분을 늦게 도착한 그녀였지만
이미 조금 늦을 거라는 문자멧세지를 받았던 터라
기다리진 않았습니다.

역 뒷골목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랐습니다.
언제나처럼
조용한 곳을 찾다보니
역에서 다소 떨어진 언덕까지 오르게 된 건데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이 곳에 웬 모텔이 이리도 많은지..
그 곳은 내가
그 역 주변을 그렇게 다녔는데도
한번도 발견하지 못했던
모텔들의 골목이었습니다.

우린 황급히 그 골목을 되돌아 내려와
한식집을 들어갔습니다.

실로 일년도 더 오랜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소주 잔을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건강에 대해서도..
그리고 산행과 우정..
그리고 가정이라는 것 까지도...

미안했던 마음을
근 일년 넘도록 지니고 살았던 터라
오늘 만남이
그 모든 것을 털 수 있는 자리였으면 했습니다.

했기에
무리하게 빈 소주병의 숫자를 늘려갔습니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과오도 있다고 했습니다.
허지만
원망하진 않았다고 들려주었습니다.

민남의 시간이 끝날 무렵 쯤
그녀로부터 기분이 상당히 좋아져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종종 만나
이런 자리를 가지자며..
그리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자고..
그리고
그녀의 해맑은 미소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돌아 왔습니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핸펀의 음악이 울립니다.

속았다고..
자기를 속였다는 전화였습니다.

내가
그녀를 만난 이유에 대하여
속았다는 거였습니다.
내가
자신을 만나 목적이
다른 곳에 있었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밉다고..
사람이 그럴 수 있냐며 울먹거립니다.

순수했던 만남의 의미가
퇴색되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인간관계가 힘든 것일까?

순수한 나의 마음을
이렇게 왜곡해 버리다니...

씁쓸했습니다.
함께 했던 5시간의 의미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허탈을 느꼈습니다.

에이...
망할 넘의 인간사....

퉤퉤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