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1
기분좋은 아침
末人
2005. 11. 2. 12:19
누구나 다 인생을 미리 연습해 보고 난 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루하루가 어쩌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연습의 나날일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내일을 향하여 우리 역시 불확실한 행동으로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처럼 아침 출근 지하철을 탔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출근시간을 살짝 비껴난 9시가 넘어서다. 90 되신 은퇴한 한의사 할아버지를 찾아가 부어오른 다리의 이곳 저곳에 침을 맞고 몇군데 부황까지 뜨고 난 후 출근을 해야하는데 운전해 주겠다는 마누라를 떨쳐버리고 (아차,독신이라더니 웬 마누라냐구요? 아쉬우니깐 오늘만 임시로 그렇게 부르겠나이다.ㅋㅋ) 혼자서도 갈만할 것 같아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참으로 눈물이 날 정도의 감동을 받는 일이 생겼다. 족히 70은 넘어 뵈는 듯한 노인 한분과 절뚝거리며 같은 문을 통하여 지하철에 올라서 한 옆에 얌전히 서 있는데 그 노인이 좀 떨어져 서 있던 내게 다가와 경로석에 앉기를 권하는 것이 아니가?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며 정중히 사양했는데도 부득불 나를 그 곳으로 끌다시피 안내하여 앉혀주는 것이었다. 자신도 양보받은 자리라며 방금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서 있는 한 여인을 가르켰다. 그여인도 내가 보기엔 60은 훨씬 넘어보이는 노인 분이었다. 앉아 있기가 도무지 민망해서 고개도 못들 정도였지만 그 노인의 권유가 하도 완강하여 더 이상 사양도 못하고 그냥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원 머리 허연 친구 녀석은 자리를 두어번 양보 받은 적이 있다했지만 머리 시커먼(비록 염색이지만) 내가 자리를 양보받아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것도 노인들의 좌석을 노인들로부터 양보 받았다니... 참으로 고맙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더 코 끝이 찡해옴을 느껴야 했다. 고속터미날 역에서 환승하여 양재동으로 향하는 3호선으로 갈아탔을 때에 나는 또 한번의 양보를 받았다. 헐렁한 지하철 안이었는데 경로석에 앉아있던 중년여인이 나의 붕대로 칭칭 감긴 다리를 보더니 조금도 망서림이 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저만치 먼곳으로 피신해 가는 것이었다. 그 후 에스컬레이터가 장착되어있지 않은 양재역 5번 출구로 나가는 계단을 힘겹게 절뚝이며 올라가며 여기도 자동 승강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함께 내렸지만 절뚝이며 걸어야했기에 제일 꼴등이 되어버리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수많은 장애인들이 느낄 엄청난 열등감과 좌절감이 어떨까를 조금은 실감할 수 있었던 아침... 불확실한 내일로 향하는 우리들이지만 아름다운 마음이 있다면 그 거친 내일로 가는 길도 조금은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을 해본 아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