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1
심근경색
末人
2005. 12. 15. 10:46
참을 수 없다.
참기엔 너무도 힘이들다.
앉아있기가 너무 힘들어 기인 책상 위에 엎드려 봤다.
그래도 고통스럽다.
죽을 것만같은 통증이 가슴을 덮는다.
무언가 불쾌하고
가슴이 조여드는 듯 가슴 안에 무슨 불덩이가 있는 듯
어떻게 아프다고 말하기 조차 애매한 통증이 멈추질 않는다.
전에도 여러번 이러했지만
그 때는 잠깐동안,1~2분 이러다 말았는데
이번엔 도무지 통증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이게 무슨 꼴이람..
텅빈 가게에 혼자 출근하자마자 시작된 고통이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진다.
집에다 전화를 겨우겨우 돌려 빨리 나오라고 연락을 취하고
다시 책상에 양팔을 올려놓고 기대듯 엎드린체
식구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일전에도 가슴이 자주 아파
술과 담배를 많이 태워서 기도나 식도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동네 병원을 들렸더니
심전도 검사를 해본 담당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라는 말에
그 의사가 추천해준대로 모 대학병원 심장내과를 찾아갔었던 적이 있다.
심전도,핵의학검사 등등을 거쳐 결국은 심혈관 조영술을 받았는데
아직은 수술(풍선이나 철망)은 장치 안하고
약물치료만 하여도 될 듯하다며 처방전을 써준 적이 있었다.
별 대수롭지 않다고 느껴서
약도 먹는둥 마는 둥 거르기 일쑤였고 술도 마시고 싶으면 마음대로 퍼마시며 지냈다.
다행이도
약 35년간을 피워 온
담배는 조영술 받기 두어달 전에 끊은 바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통증은 지난 번 그것하고는 사뭇 달랐다.
10여분이 지나도 가라앉지를 않는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닌가하는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다.
순간 떠오르는 얼굴들
특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70중반을 넘어가는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한 집안의 장남으로써
온 집안의 중추적역할을 하며
정신적 지주역할마저 하는 내가
이렇게 무너지고 난다면 큰일이다 싶었다.
나 하나 잘못되는 건 그렇다치고라도
노약한 우리 어머니의 슬픔과 충격은 무어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119에 전화를 했다.
119요원들이 도착하는 10여분이
지옥에서의 영원처럼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다.
서둘러 나를 태운 긴급 구호차량은 급한 신호음을 터트리며 도회지를 질주해갔다.
가게에서 제일 가까운 Y병원 응급실로 나를 데려갔다.
간호원들이며 젊은 의사들이 황급히 내게 매달려
산소호홉기도 꼽아주고 혀밑에 무슨 약도 넣어주고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고 난리도 아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그렇게 몇분이 지나자
심했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아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혀 밑에 넣은 약은 XX라하는 혈관 확장제로써
심장 쪽으로 혈액을 원활히 공급시켜주는 역활을 해 준 탓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거다.
그러는 사이
안식구와 아들이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6개월 전 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 H대병원으로 보내 줄 것을 간청했다.
나에대한 그 때의 검사결과도 있을 것이고
병원치료를 받는다해도 그 병원이 집과 가까워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아서였다.
허지만 병원 측에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큰일난다는 거다.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싯점이란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나자 몸과 마음이 모두 평온해져 왔다.
꼭 H대 병원엘 가야겠냐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친절한 Y병원측에서 특수앰불런스차와 여의사 한분까지 동행시켜
나를 H대병원 응급실까지 태워다 주었다.
너무도 고맙고 친절한 그 분들이었다.
"우리 병원도 심장내과는 잘 보는데요..."
혼잣말처럼 웃으며 말해주던 그 Y병원의 어느 젊은 남자의사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맴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 Y병원은 심장내과는 권위있는 병원이라는 거다.
H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막바로 심혈관촬영을 통한 검사와 치료에 들어간다.
때마침 지난번 나를 검사해 주었던 K의사님이 진료하는 날이었다.
그 분의 주재아래 검사는 진행되었고
컴퓨터 영상에 나타난 나의 심혈관은 어느 한부분이 무척 좁아져 있었다.
의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바로 저 좁아진 부분에 스탠드를 장치했단다.
그 시술 시간은 대략 30분 가량이었다.
마취도 없이
검사실에 누워서
오른쪽 팔목을 통하여 무언가 가슴쪽으로 밀어져 들어오는 조그마한 느낌만을 받으며
컴퓨터 모니터에 비치는 내 심장의 모습을 지켜봤다.
꿈틀대다간 몸부림치는 듯하고
그 심장에 여러 갈래의 검게 나타나는 혈관의 모습이 보인다.
삑삑거리는 컴퓨터의 신호음이 계속되고
의료진들의 시술하며 나누는 전문 용어들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있었다.
숨가쁜 시간이 흐른다.
간간히 친절한 여자의사분이
아프거나 이상한 곳이 있으면 참지마시고 말씀하세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아프거나 이상하거나 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긴장되는 것도 없었다.
의료진들끼리 나누는 전문 용어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들의 목소리가 밝게 느껴져 마음이 놓였다.
아주 자그마하게 들려오는 조용한 팝송이 긴장감을 풀어주기엔 안성마춤같았다.]
저런 음악을 들려주는 작은 배려가
두려움에 가득찬 환자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줄 모른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30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술은 마무리 되고 있었다.
환자인 나에게 그동안의 시술 과정을 설명해 준다.
어느 부분이 좁아져서
그 부분에 조금전에 그물망을 넣어 혈관을 넓혀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그런지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 느낌이든다.
3층 별관 검사실을 나와 시트에 실린체 본관 3층으로 실려가는 동안
병원복도의 하얀 천정이 필름처럼 빨리 지나가고 있다.
나의 아팠던 어제가 과거로 흘러가는 듯,,,,
20층으로 올라왔다.
오른쪽 동맥을 뚫은 손목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부목을 대고
반창고로 고정을 시켰다.
병실로 들어서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가슴도 무언가 시원하게 뚫린 듯 유쾌한 기분이 든다.
엊저녁부터의 금식도 풀렸다.
가벼운 미음부터 먹으라는데
병원에서 미음을 구하기도 그렇고 하여
문병온 분들이 들고온 두유를 마셨다.
살 것 같았다.
어찌보면 너무도 간단히 끝난 일인데
나에겐 삶과 죽음을 넘나든 시간들이었다.
호수를 타고 내 혈관 속으로 기어드는 링겔액...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갯수를 세며 오후를 보낸다.
가끔 가슴 통증이 올때면
무언가 기분이 언짢고
살고픈 마음도 사라지고
어쩌면 내 삶이 종지부를 찍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무기력증에 빠지곤 했었는데
서서히 그런 어둡던 마음은 걷혀가고
새로운 삶에대한 욕구가 살아나는 듯 했다.
저녁이 되자 머리가 뽀개질 듯 아파왔다.
간호사를 황급히 불렀다.
링겔액(혈관확장제라던가?)의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자
머리통증이 줄어들었다.
허지만 이번엔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두가지 상극된 효과가 나타난다.
약물이 많이 투입되면 혈관이 넓어져 머리통증을 유발하고
줄이면 혈관이 좁아져 심장 쪽으로 원활한 피의 공급이 안이루어지는 듯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늘였다 줄였다를 반복하다
어느 중간 쯤에서 타협을 봤다.
머리도 조금 아프고 가슴도 조금 답답한체로 밤을 보냈다.
그렇게 이틀을 안정하고 퇴원을 했다.
이제
무언가 희망만이 내 앞에 펼쳐올 것만 같은 들뜬 기분에
콧노래마저 나온다.
이제 좀 더 절제되고 질서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온 마음을 뒤덮는다.
술도 줄이고
담배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태우질 말 것이며
기름기 많은 육식도 될 수 있으면 피할 것이며
몸에 좋다는
해초류,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고
검은콩,우리밀,현미잡곡밥 등등만 먹어야지..
그렇게 처음 한두달은 잘도 실천해 갔다.
좋아하던 술도 줄였고
어쩌다 갖는 술자리에서는 안주는 될수 있으면
두부구이나 날두부만을 먹었다.
저녁마다
한강 고수부지엘 나가 한시간씩 걷는 둥
나름대로 이제껏 가져보지 않았던
몸에대하여 나름대로 관심을 가졌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숨이차던 증상도 사라졌고
가까운 산을 오르는 것도 자신이 있었다.
낮은 산이었지만 쉬엄쉬엄 오르며
어느정도 기초체력을 단련시킨 후
본격적으로 등산을 다니려고 했다.
몇달을 그렇게 가벼운 산행을 한 끝에 드디어
높은 산을 찾아 가기로 했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몇몇분과
등산 까페를 만든 터라
그분들의 산행에 동참키로 하고 북한산을 찾았다.
그러나 나의 등산 속도로는 도저히 그들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속도를 좀 내면 숨이 차기는 마찬가지였다 .
아주 천천히 속도를 조절해야만 오를 수 있었다.
오르기를 포기하고
다시 혼자 동네 근처인 아차산에서의 연습 산행을 계속했다.
차츰차츰 속도를 내 보기도 하며 자신감을 길렀다.
그러다가 그들과 합류하여 도봉산 북한산,관악산등등
서울 근교산행을 거의 매주하며 보냈다.
가슴이 아프거나 숨이 차거나 한 것은 도통 느껴보질 않으며
3달에 한번 H대병원 K 교수님을 찾아가
진료하고 약을 타오며 1년 9개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K 교수님이
시술한지도 오래됐으니 정밀검사를 한번 해보자 하기에
다시 심전도검사와 혈액검사
핵의학 검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를 마치고 일주일 뒤
자신만만하게 검사 결과를 보러 간 나는
청청벽력같은 검사결과를 들어야 했다.
관상동맥에 또 다시 이상징후가 보인다는 것이다.
입원하여 정밀검사를 해 보자는 거다.
피할 수 없었다.
안한다고 할 수도 없는 사실 앞에서 난감함을 느껴야 했다.
심근경색이란
한번 시술 했다고 완치되는 병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동맥경화라는 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하기 전에는
늘 이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두번째 시술한 것처럼
똑 같은 과정을 거쳐 입원하고 수술을 했다.
지난번 시술한 자리가 다시 좁아졌다는 거다.
철망을 넣었었는데
그 곳이 좁아져서 피돌림이 원활치 못하다는 거다.
더더욱 같은 자리를 또 수술하는 거라
이번엔 의료보헙혜택도 없다는 거다.
그렇다고 아니 할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70%좁아진 혈관에 좀 더 강한 재질로된 철망을 덧씌웠단다.
여간해선 다시는 좁아지지 않을 거란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무슨 뾰죽한 수가 있겠는가?
다만
이렇게 중대한 심장 질환이건만
팔뚝에 주사기를 꼽고 간단한 시술로 고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퇴원을 하고
친구가 태워주는 승용차에 몸을 싣고
북한강변을 달렸다.
찜찜했던 기분,울적하고 안타깝고 짜증나고 불안했던 나쁜 기분들이
일순간에 달아나는 듯 했다.
신록의 잎새들이 지는 석양을 받아 더욱 빛나 보였다.
석양을 안고 달리는 강변...
붉은 태양이 잠겨드는 강물이 너무도 아름답다.
지금 나의 마음도
저렇게 아름다운 저녁태양이 잠긴 강물처럼 고요롭다.
자연의 작은 모습과
자연의 작은 흔들림까지도 사랑하며 살고 싶다.
편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은
심장병에 있어선 정말 필요한 마음자세이리라.
한번 손상되면 다시 회생되지 않는다는 심장근육..
의학이 발달하여 줄기세포를 이식하여 살리는 기술이 지금
한창 개발 중이라니
차세대는 심장병도 그리 걱정할 병은 아닌듯 하다.
허지만
보다 건강한 심장을 갖고 실기 위하여서는
보다 질서있는 생활을 해야하리라.
참기엔 너무도 힘이들다.
앉아있기가 너무 힘들어 기인 책상 위에 엎드려 봤다.
그래도 고통스럽다.
죽을 것만같은 통증이 가슴을 덮는다.
무언가 불쾌하고
가슴이 조여드는 듯 가슴 안에 무슨 불덩이가 있는 듯
어떻게 아프다고 말하기 조차 애매한 통증이 멈추질 않는다.
전에도 여러번 이러했지만
그 때는 잠깐동안,1~2분 이러다 말았는데
이번엔 도무지 통증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이게 무슨 꼴이람..
텅빈 가게에 혼자 출근하자마자 시작된 고통이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진다.
집에다 전화를 겨우겨우 돌려 빨리 나오라고 연락을 취하고
다시 책상에 양팔을 올려놓고 기대듯 엎드린체
식구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일전에도 가슴이 자주 아파
술과 담배를 많이 태워서 기도나 식도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동네 병원을 들렸더니
심전도 검사를 해본 담당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라는 말에
그 의사가 추천해준대로 모 대학병원 심장내과를 찾아갔었던 적이 있다.
심전도,핵의학검사 등등을 거쳐 결국은 심혈관 조영술을 받았는데
아직은 수술(풍선이나 철망)은 장치 안하고
약물치료만 하여도 될 듯하다며 처방전을 써준 적이 있었다.
별 대수롭지 않다고 느껴서
약도 먹는둥 마는 둥 거르기 일쑤였고 술도 마시고 싶으면 마음대로 퍼마시며 지냈다.
다행이도
약 35년간을 피워 온
담배는 조영술 받기 두어달 전에 끊은 바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통증은 지난 번 그것하고는 사뭇 달랐다.
10여분이 지나도 가라앉지를 않는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닌가하는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다.
순간 떠오르는 얼굴들
특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70중반을 넘어가는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한 집안의 장남으로써
온 집안의 중추적역할을 하며
정신적 지주역할마저 하는 내가
이렇게 무너지고 난다면 큰일이다 싶었다.
나 하나 잘못되는 건 그렇다치고라도
노약한 우리 어머니의 슬픔과 충격은 무어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119에 전화를 했다.
119요원들이 도착하는 10여분이
지옥에서의 영원처럼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다.
서둘러 나를 태운 긴급 구호차량은 급한 신호음을 터트리며 도회지를 질주해갔다.
가게에서 제일 가까운 Y병원 응급실로 나를 데려갔다.
간호원들이며 젊은 의사들이 황급히 내게 매달려
산소호홉기도 꼽아주고 혀밑에 무슨 약도 넣어주고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고 난리도 아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그렇게 몇분이 지나자
심했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아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혀 밑에 넣은 약은 XX라하는 혈관 확장제로써
심장 쪽으로 혈액을 원활히 공급시켜주는 역활을 해 준 탓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거다.
그러는 사이
안식구와 아들이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6개월 전 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 H대병원으로 보내 줄 것을 간청했다.
나에대한 그 때의 검사결과도 있을 것이고
병원치료를 받는다해도 그 병원이 집과 가까워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아서였다.
허지만 병원 측에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큰일난다는 거다.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싯점이란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나자 몸과 마음이 모두 평온해져 왔다.
꼭 H대 병원엘 가야겠냐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친절한 Y병원측에서 특수앰불런스차와 여의사 한분까지 동행시켜
나를 H대병원 응급실까지 태워다 주었다.
너무도 고맙고 친절한 그 분들이었다.
"우리 병원도 심장내과는 잘 보는데요..."
혼잣말처럼 웃으며 말해주던 그 Y병원의 어느 젊은 남자의사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맴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 Y병원은 심장내과는 권위있는 병원이라는 거다.
H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막바로 심혈관촬영을 통한 검사와 치료에 들어간다.
때마침 지난번 나를 검사해 주었던 K의사님이 진료하는 날이었다.
그 분의 주재아래 검사는 진행되었고
컴퓨터 영상에 나타난 나의 심혈관은 어느 한부분이 무척 좁아져 있었다.
의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바로 저 좁아진 부분에 스탠드를 장치했단다.
그 시술 시간은 대략 30분 가량이었다.
마취도 없이
검사실에 누워서
오른쪽 팔목을 통하여 무언가 가슴쪽으로 밀어져 들어오는 조그마한 느낌만을 받으며
컴퓨터 모니터에 비치는 내 심장의 모습을 지켜봤다.
꿈틀대다간 몸부림치는 듯하고
그 심장에 여러 갈래의 검게 나타나는 혈관의 모습이 보인다.
삑삑거리는 컴퓨터의 신호음이 계속되고
의료진들의 시술하며 나누는 전문 용어들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있었다.
숨가쁜 시간이 흐른다.
간간히 친절한 여자의사분이
아프거나 이상한 곳이 있으면 참지마시고 말씀하세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아프거나 이상하거나 하는 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긴장되는 것도 없었다.
의료진들끼리 나누는 전문 용어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들의 목소리가 밝게 느껴져 마음이 놓였다.
아주 자그마하게 들려오는 조용한 팝송이 긴장감을 풀어주기엔 안성마춤같았다.]
저런 음악을 들려주는 작은 배려가
두려움에 가득찬 환자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줄 모른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30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술은 마무리 되고 있었다.
환자인 나에게 그동안의 시술 과정을 설명해 준다.
어느 부분이 좁아져서
그 부분에 조금전에 그물망을 넣어 혈관을 넓혀 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그런지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 느낌이든다.
3층 별관 검사실을 나와 시트에 실린체 본관 3층으로 실려가는 동안
병원복도의 하얀 천정이 필름처럼 빨리 지나가고 있다.
나의 아팠던 어제가 과거로 흘러가는 듯,,,,
20층으로 올라왔다.
오른쪽 동맥을 뚫은 손목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부목을 대고
반창고로 고정을 시켰다.
병실로 들어서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가슴도 무언가 시원하게 뚫린 듯 유쾌한 기분이 든다.
엊저녁부터의 금식도 풀렸다.
가벼운 미음부터 먹으라는데
병원에서 미음을 구하기도 그렇고 하여
문병온 분들이 들고온 두유를 마셨다.
살 것 같았다.
어찌보면 너무도 간단히 끝난 일인데
나에겐 삶과 죽음을 넘나든 시간들이었다.
호수를 타고 내 혈관 속으로 기어드는 링겔액...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갯수를 세며 오후를 보낸다.
가끔 가슴 통증이 올때면
무언가 기분이 언짢고
살고픈 마음도 사라지고
어쩌면 내 삶이 종지부를 찍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무기력증에 빠지곤 했었는데
서서히 그런 어둡던 마음은 걷혀가고
새로운 삶에대한 욕구가 살아나는 듯 했다.
저녁이 되자 머리가 뽀개질 듯 아파왔다.
간호사를 황급히 불렀다.
링겔액(혈관확장제라던가?)의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자
머리통증이 줄어들었다.
허지만 이번엔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두가지 상극된 효과가 나타난다.
약물이 많이 투입되면 혈관이 넓어져 머리통증을 유발하고
줄이면 혈관이 좁아져 심장 쪽으로 원활한 피의 공급이 안이루어지는 듯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늘였다 줄였다를 반복하다
어느 중간 쯤에서 타협을 봤다.
머리도 조금 아프고 가슴도 조금 답답한체로 밤을 보냈다.
그렇게 이틀을 안정하고 퇴원을 했다.
이제
무언가 희망만이 내 앞에 펼쳐올 것만 같은 들뜬 기분에
콧노래마저 나온다.
이제 좀 더 절제되고 질서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온 마음을 뒤덮는다.
술도 줄이고
담배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태우질 말 것이며
기름기 많은 육식도 될 수 있으면 피할 것이며
몸에 좋다는
해초류,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고
검은콩,우리밀,현미잡곡밥 등등만 먹어야지..
그렇게 처음 한두달은 잘도 실천해 갔다.
좋아하던 술도 줄였고
어쩌다 갖는 술자리에서는 안주는 될수 있으면
두부구이나 날두부만을 먹었다.
저녁마다
한강 고수부지엘 나가 한시간씩 걷는 둥
나름대로 이제껏 가져보지 않았던
몸에대하여 나름대로 관심을 가졌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숨이차던 증상도 사라졌고
가까운 산을 오르는 것도 자신이 있었다.
낮은 산이었지만 쉬엄쉬엄 오르며
어느정도 기초체력을 단련시킨 후
본격적으로 등산을 다니려고 했다.
몇달을 그렇게 가벼운 산행을 한 끝에 드디어
높은 산을 찾아 가기로 했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몇몇분과
등산 까페를 만든 터라
그분들의 산행에 동참키로 하고 북한산을 찾았다.
그러나 나의 등산 속도로는 도저히 그들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속도를 좀 내면 숨이 차기는 마찬가지였다 .
아주 천천히 속도를 조절해야만 오를 수 있었다.
오르기를 포기하고
다시 혼자 동네 근처인 아차산에서의 연습 산행을 계속했다.
차츰차츰 속도를 내 보기도 하며 자신감을 길렀다.
그러다가 그들과 합류하여 도봉산 북한산,관악산등등
서울 근교산행을 거의 매주하며 보냈다.
가슴이 아프거나 숨이 차거나 한 것은 도통 느껴보질 않으며
3달에 한번 H대병원 K 교수님을 찾아가
진료하고 약을 타오며 1년 9개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K 교수님이
시술한지도 오래됐으니 정밀검사를 한번 해보자 하기에
다시 심전도검사와 혈액검사
핵의학 검사를 하게 되었다.
검사를 마치고 일주일 뒤
자신만만하게 검사 결과를 보러 간 나는
청청벽력같은 검사결과를 들어야 했다.
관상동맥에 또 다시 이상징후가 보인다는 것이다.
입원하여 정밀검사를 해 보자는 거다.
피할 수 없었다.
안한다고 할 수도 없는 사실 앞에서 난감함을 느껴야 했다.
심근경색이란
한번 시술 했다고 완치되는 병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동맥경화라는 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하기 전에는
늘 이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두번째 시술한 것처럼
똑 같은 과정을 거쳐 입원하고 수술을 했다.
지난번 시술한 자리가 다시 좁아졌다는 거다.
철망을 넣었었는데
그 곳이 좁아져서 피돌림이 원활치 못하다는 거다.
더더욱 같은 자리를 또 수술하는 거라
이번엔 의료보헙혜택도 없다는 거다.
그렇다고 아니 할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70%좁아진 혈관에 좀 더 강한 재질로된 철망을 덧씌웠단다.
여간해선 다시는 좁아지지 않을 거란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무슨 뾰죽한 수가 있겠는가?
다만
이렇게 중대한 심장 질환이건만
팔뚝에 주사기를 꼽고 간단한 시술로 고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퇴원을 하고
친구가 태워주는 승용차에 몸을 싣고
북한강변을 달렸다.
찜찜했던 기분,울적하고 안타깝고 짜증나고 불안했던 나쁜 기분들이
일순간에 달아나는 듯 했다.
신록의 잎새들이 지는 석양을 받아 더욱 빛나 보였다.
석양을 안고 달리는 강변...
붉은 태양이 잠겨드는 강물이 너무도 아름답다.
지금 나의 마음도
저렇게 아름다운 저녁태양이 잠긴 강물처럼 고요롭다.
자연의 작은 모습과
자연의 작은 흔들림까지도 사랑하며 살고 싶다.
편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은
심장병에 있어선 정말 필요한 마음자세이리라.
한번 손상되면 다시 회생되지 않는다는 심장근육..
의학이 발달하여 줄기세포를 이식하여 살리는 기술이 지금
한창 개발 중이라니
차세대는 심장병도 그리 걱정할 병은 아닌듯 하다.
허지만
보다 건강한 심장을 갖고 실기 위하여서는
보다 질서있는 생활을 해야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