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1

비 오는 날의 수채화

末人 2005. 12. 15. 10:49
비오는 날의 수채화


찢어진 세월을 들고
이른 봄비 내리는 거리를 지났다.
높은 빌딩 사이에 끼어
더욱 낡아보이는 작은 건물에 덩그라니 매달려 있는
낡은 간판 하나
쌓인 먼지만큼이나 두꺼운
시간의 흔적 위에
배고픈 시장기가 그날처럼 내려온다.
그날의 나보다 더 커버린
아들이 몰아주는 자동차 뒷자리에 타고 앉아가며
끝도 없이 길어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두운 터널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무거웁도록 불러오는
뱃살을 걱정하는 내가 되다니.
까까머리 속 가득 넘치던 호기심은
지나가는 과정이었지.
그로부터 시작된 흡연은
이십만 가치도 더 불지러 물어 본 기억만을 남기고
어느날 강퇴시켰다.
무언가로 채우고파 몸부림치던 날들,
채울 것 많아지는 날까지 기다렸는데
이걸 어떻게 저 네모난 원고지 속으로 옮기란 말인가.
그날처럼
봄비는 내리건만
떨어져 딩구는 곳엔 아무 것도 없다.
비는 내리건만
아무 것도 적시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