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1

[스크랩] 어느 하루

末人 2006. 5. 22. 18:39

(프럴러그) 산행을 하기로..

 

몸이 좀 피곤하다.
일요산행을 포기한
모처럼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이다.
느긋하게 식사하고
텔레비죤의 가요프로를 보고있다가
불현듯 그의 전화를 받았다.

집에 있으면 뭘하느냐..
산에라도 가잔다.
에라,그 말도 맞다.
그냥 천천히 조금만 올라가다가
쉬기 좋은 곳에서 쉬다가 내려올 심사로
허겁지겁 베낭을 챙겼다.

또 한명의 지인인 J를 불렀다.
도봉산역에서의 만남 약속을 하고 전철을 기다리는데
한 중년여인이 말을 걸어온다.
수락산을 가려면 어떻게 가는냐고..
차림으로 보아 산행초보인 듯 하다.

생각같아서는
하루를 함께 하며 안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선약이 있어 포기하고 도봉산을 향한다.

 

(제1장)알토쎅스폰을 연주하는 사람

 

W와 J와 조우...
매표소를 향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싱거운 사람 J는
며칠을 갈아입지 않았는지도 모를
괴죄죄한 회색빛 티에 헐렁한 양복바지 차림이다.
갓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도 안하고 나온 듯
눈가가 부석부석하다.
도봉매표소에서 표를 석장 사서 우리에게 한장씩 들려주더니
자신은 산행을 할 수 없으니
산행 후 오후 3시 30분에 이 자리에서 만나자는 거였다
자신은 핸펀도 없으니
지금의 이 구두약속을 꼭 지켜달라는 거였다.
본래 산을 잘 오르지 못하는 그인지라
W와 나는 그러마하고 그와 헤어졌다.
이 후로 우리 둘의 산행 일정은
3시30분 도봉매표소 도착에 맞추어서 진행해 나갔다.

냉골로 접어들었다.
약수터에서 두어모금의 약수를 벌컥였다.
계류가 졸졸 흐르는 골을 따라 오른다.
조금 오르다보니
약간 외진 곳에서
금색 금관악기인 섹스폰을 만지작이고 있는
어떤 이를 만났다.
알토쎅스폰의 마우스피스를 분리하여 열심히 닦고 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와 대화를 가졌다.
초등학교 시절
뺀드부에 차출되었을 때
제일 먼저 내가 다루려 했던 것이 테너쌕스폰이었다.
자유당 때...
그런데 마우스피스에 장착하는 떨림판역활을 하는 리드가
고가의 수입품이라 취급하는데 있어
여간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감에 그 악기를 포기하고
트럼펫을 맡았던 추억 있는지라
이런 산길에서 관악기를 다루는 이를 만났다는 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도 취미로 알토쎅스폰을 연주하는데
이 자리만 거의 8년 째 찾아 온다는 거였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고
그저 좋아할 뿐이라는 겸손..
산행인들이 빈번히 오가는 길목이라
시끄러운 째즈같은 건 연주할 수 없고 조용한 것들을 엄선해서 부른단다.

생각같아서는 한 곡 연주를 부탁해서 듣고 싶었지만
갓 올라와 준비를 하고 있었고
또한 우리는 산행이 목적이었던지라 시간이 없었다.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걸음을 옮겼다.

 

(제2장)오찬시간에 만났던 사람들

 

포대능선의 어느 한 곳
사방이 훤히 조망되는 곳 바위능선 위
아가다 소나무의 짙은 솔향아래에 자리잡고
오찬을 즐기려 했다.
그러나 조금의 시장기도 느낄 수 없었다.
가지고 올라온 초록색통의 장수막걸리 한잔을 따라 마셨다.
W는 극구 마시기를 사양한다.
우리가 자리잡은 바로 옆으로 4명의 남녀가 자리를 편다.
마창 거인산악회라는 깃발을 베낭 뒤에 한장 씩 매달고 있었다.
"마산 창원에서 오셨군요?"
고개를 끄덕인다.
새벽 5시 창원에서 관광버스로 원정산행을 온 모양이었다.
짖궂은 W가 물었다.
아마 회비는 25000원씩 내고 오셨을 걸요?
라고 질문아닌 질문을 혼잣말처럼 뇌깔였다.
맞습니더...
캬캬캬... 우리는 씨익 웃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세 여인이 우리 바로 아래 위치에 또 자리를 잡는다.
앉자마자 내 쪽을 올려다보며
혹시 나무젓가락 좀 남는 것 있으신지요? 라고 물어왔다.
나는 베낭 속에서 두벌의 젓가락을 찾아서 주었다.
가지가지 무척도 많이 챙겨왔다.
한 두가지 먹어보고는 싶었지만
무심한 세 여인은
내가 건네준 젓가락으로 자기네들끼리 잘도 먹고 있을 뿐이었다.
정이나  보라만 왔어도 이 설움은 안당했을텐데.. 흑흑..
야속한 3 여인...ㅋㅋ

 

(제3장) 통기타 라이브

 

오르기 전 꺼벙한 J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3시30분을 목표로 부지런히 하산을 서둘렀다.
흐르는 땀...
한여름처럼 더운 날씨다.
그늘 속을 걸을 때는 몰랐는데
그늘 밖으로 나서면 살을 데일 듯한 강렬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계류로 내려서서
폭포처럼 내리 쏟아지는 물줄기에 머리를 처박 듯 디 밀었다.
어으 시원해...
한 무더기의 물을 뒤지어 쓰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어서 내려가 시원한 생맥주 한잔 들이키고 싶었다.

매표소 입구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지만
조금은 예상했던대로 J-! 그는 보이질 않았다.
우리는 5분을 기다려 보고는 이내 그와의 만남을 포기하고
시원한 생맥주집을 찾아 걸었다.
우글거리는 인파들..
그런 복잡한 술집들을 피하여
가장 한가로운 집을 찾으려고 걸었다.
그런데
어느 공원옆
감미로운 통기타 반주에
조금은 허스키한 탁한 음성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 쪽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도로가
공원의 목재 원두막 아래서 사내는 통기타를 뜯으며
노래에 열중하고 있었다.
바로 여기다
우리는 원탁을 하나 차지하고 앉아서 생맥을 시켰다.
박강성의 문밖의 여자.
고래사냥..
사랑...뭐 기타 등등
라이브까페에서 들을 수 있는 레파토리는 다 나왔다.
우리는 12잔의 호프를 마시며 두어시간 동안 앉아서
생음악을 즐겼다.

노천까페에서의 한 때..
도봉산 정상
포대능선의 윤곽이 하늘 한가운데에 또렷히 펼쳐지는 곳..

그 능선 위로 노을이 깔릴 때 쯤
멋진 곳 다시 찾을 것을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4장)에필로그-장여사

 

편안한 여인 장여사...
그가 부쳐주는 해물파전은 맛이 있다.
그녀의 꾸밈없는 인간성이 베인 음식이라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콩꼬투리만한 협소한 장소지만
나는 그래서 그 목로집을 자주 찾곤한다.
오늘도 예외없이
그 집에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노천까페에서 일어나
다시 또 노상의 동동주집까지 오는데에는 채 한시간도 안걸렸다.

시원한 병맥주를 한병한병 잡아가다 보니 5병이나 잡았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와
편안한 대화를 안주 삼아
마지막 입가심 같은 술잔을 비우고 나니 12시가 다 되어오고 있었다.

등산베낭을 들쳐메고 집으로 향하는 발길...
오늘도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기가 꽤나 힘들었다.
나오긴 쉬운데
돌아가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난관이 내 앞을 막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집이 좋은 건지 밖이 좋은 건지...
일요일이면
변함없이 거듭되는 말인의 고민...

 


 

 

 

출처 :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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