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가을 산에서
그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면
가을 산으로 와라.
아직도 못다 준 사랑이
당신의 가슴 안에서
바람 속의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면
가을 산을 올라라.
산 속은 지금
불타는 열정에 호홉조차 멈추고 있다.
우뚝 솟은 인수의 우람한 돌기둥조차도
모두 녹여버릴 듯
가을은 지금 찬란히 불타고 있다.
당신의 눈동자가 그윽하지 아니하면 어떠랴
당신의 미소가 나를 향하지 않은들 어떠랴..
나는 지금
삼각산의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혀
자제할 수 없는 환희에 찬 교성을 질러대고 있다.
출렁이는 피빛 바다를 헤치고
우리는 지금 몽유도원을 향하고 있다.
말갈기처럼 늘어진 능선에 올라
숨은벽 찾아내고 하늘을 보니
비로서 우리는 우주의 한점이 된다.
하늘에 들어와 박혀 자연과 일체가 되니
여기가 유토피아요 파라다이스다.
손에 잡힐 듯 스쳐가는 하얀 구름이
공손헌원의 꿈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상경이요
발아래 굽어보이는 온갖 풍경은
그리스 신화 속의 엘리시움이요 샹리상제가 아니던가.
숨가쁘게 올라와 여유롭게 우뚝 서서
자연을 조망하는 맛이란
기쁨을 넘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한계감정,
바로 쾌감이었다.
산객들은 바로 이 쾌감 때문에 산을 오르는지도 모르겠다.
일년 내내
꽃피고 새 울고 비내리고
안개 자욱한 산을 오르내렸던 것은
바로 오늘,
오늘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잎새가 불타는 10월의 산중의 정경은
산행인이 만날 수 있는
모든 모습들 중의 절정이요 최고감이 아닐까?
그러나
아름다운 모습에 너무 취할 일은 아니다.
벌겋게 물들 수 밖에 없었던 나무 잎새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
미처 나무로 전하지 못한 당분이 산화하며 내는
고통의 색갈이 단풍인 것을...
전하지 못한 사랑이 있다면
우리 가슴도 단풍 들겠다.
있어도 아니 전하는 사랑,
주어도 받아드리지 못하는 타성에 젖은 폐쇄성.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모두는 서로 사랑할 일이다,
손 안에 쥔 모래가 새어 나가 듯
움켜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우리들의 시간들..
지랄같은 그리움에 목매달지 말고
지금을 소중히 써야만 한다.
킁킁대며 맡지 않더라도
서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고약한 땀냄새가
먼 훗날
오월의 풋사과 향만큼이나 그리워질 터이니깐...
그깐 단풍 따위야
말라비틀어져 볼상 사납더라도
그 곳에
우리들 사랑하는 마음만
바람처럼 일렁이고 있으면 된다.
2006년의 시월..
당신들의 땀에 젖은 얼굴 위로
가을의 찬란한 햇살이
파편처럼 부숴져 내린다.
아름다운 날들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모아
언제 한번
넘치는 술잔에 가득 타서
단숨에 벌컥벌컥 드리키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