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1

이별 아닌 이별

末人 2007. 1. 5. 22:05


이제
갈아탔던 열차의 종점이 서서히 다가온다.
무던히도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걷잡을 수조차 없을 슬픔이 폭풍우처럼 밀려오던 날
난파된 내게
구조선처럼 다가와 주었던 그를
이제 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가 내민 손에
쓰러질 듯 비틀거리던 나의 모든 걸 맡기고
서러움 안으로 곱씹으며
그렇게 위안 받으며 왔었건만
이제는 그를 놓아 주어야 할 때다
그 힘든 짐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
갈곳을 잃은 내 슬픈 영혼을
따슨 입김으로 다독거려주던 그에게
한없는 고마움조차 전하지 못하고
이렇게 또 다시 돌아서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기에
마음 아프게 생각진 않으리 굳게 입술을 깨물어 본다.

이것도 사랑이었다면 사랑이라 하자
다시는 찾을 수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을 터인데도
서럽지도 눈물나지도 않는 이것을 사랑이라 이름부치려면 부쳐라.
지난번 지독히도 슬픈 이별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지금은
담담하다,
아니
또다시 그런 엄청난 슬픔이 두려워
적당히 마음줬고
적당히 먼 곳에서
적당히 가까운 듯 지내며
준비해온 덕인지도 모른다.

이별은 항상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지만
나는
그것을 고통으로 만들진 않을 것이다
이별을 아름다와 해야 한다
슬픔을 꿈처럼 보듬어야 한다,
그가 남긴 미소를 회억의 사진첩에 두고
웃으며 꺼내 볼 수 있어야 한다.

 


미련한 사람이라고 했다.
둔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별이 눈 앞에 다가왔어도 그것이 이별인지도 모르는
그렇게 둔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얀 손수건에 한웅큼의 눈물을 싸서 가슴이 아프도록
세차게 안겨줘야 비로서 그 때
그것이 이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갔는데도 갔는지조차 모르고
허상을 잡으려고 바둥거리는 미련스런 몸짓을 그는
마냥 비웃을 것이다.]
사라졌는데도 있는 줄 착각하며
여전히 허공에 대고 미친놈처럼 지껄여 대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정말 잘 떠났다고 자위 할 것이다.
아니 떠난 것이 아니라 벗어났다고 느낄 것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부르고 불러봐도 대답이 없을 때
그 때 비로서 그가 갔음을 알고 허둥대겠지만
이미 그는 나로부터 아주 멀리 가 있기에
발버둥치고 징징대며 울고 있는 나를 볼 수조차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그것이 현실로 내 앞에 던져졌을 때
왜 나는 가슴 아파 해야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야 된단 말인가...
나만 그를 사랑하고 좋아했었던 당연한 결과인가?
나이먹은 자들의 사랑이란
항상 이렇게 덧없고 허망한 것일 수도 있겟지.
서로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장벽을 하나씩 갖고 시작했기에
그럴 수 밖에 없겠지.
그럴테지.
최대한 그의 일상을 지켜줘야 했기에
불타는 사랑 따윈 애시당초 우리에겐 있을 수 없는 거였지.
그런 애절한 사랑을 준다는 것 자체가
그를 흔들리게 하는 짓이고
그의 모든 걸 앗아버리겟다는 것인지도 모르기에
처음부터 일정한 거리 밖에서
우린 쳐다만 볼 뿐
아무 것도 주고 받지 않고서도 얼마나 우린 우리로써 함께 할 수 잇었지 않았던가?
더러
그런 것을 불만스러워 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러길 잘 했다는 생각 끝에 밀려오는 안도감을
우린 너무도 많이 즐겨왔었지.
그래,
차라리 잘 됐는지도 몰라.
이렇게 훌쩍 떠나지 않으면 어떻게 돌아 갈 수 있겠어?
잘 갔는지도 몰라
언젠가는 겪어야 할 홍역이잖아.
오히려 돌아 갈 수 있었던 그의 용기를 칭찬해 줘야 할지도 몰라.
그치?
그렇지?
맞지?
맞잖아...
맞다고 해봐봐...
응?
얼릉 맞다고 해줘...
...
ㅠㅠㅠ...

 


걷잡을 수 없이 내가 흔들릴 때
그가 있었다는 건 너무도 큰 위안이었어.
가슴 뽀개지는 고통이 올적마다
그는 진통제처럼 내 아픔을 잠재우곤 했었지.
그니의 잔영이 너무도 뚜렷하게 나의 온 뇌리를 덮고 있을 때였기에
오히려 그의 존재는 작을 수 밖에 없었지.
결코 마음 안에 담아 둔 사이는 아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감정으로 아무 때고 부딪칠 수 있었던거지.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만남이었기에
오히려 편했고 좋을 수 있었어.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만남이 잦아지고 하는 사이에
마음 한켠으로부터 무언가 나도 모르는 연민이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거야.
며칠만 그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그의 소식이 궁금해졌고
한동안 보질 못하면 보고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곤 했었다.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었어.
그건 분명히 우리가 서로에대해 요구하거나 기대하지도 않았던 건데
그런 마음이 싹처럼 트고 자랄 수 있었다니...
어느 날 그런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그립고 사무치고 보고싶은 감정은 마음 안에 가득가득 차오르고 있었어.
무엇때문에
어디로 가자고
왜 이래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냥 이유도 없이 우린 서로에게 다가가 있었어.
그의 환한 미소를 보면
내 마음도 밝아졌고
그의 질투어린 시샘을 느끼면 오히려 내 마음은 더욱 즐거웠고
그의 쪽으로 기울고 있었어.
그렇게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서서히 나를 잠식해 들어온 그 였는데
이제
이렇게
한순간에
썰물 빠지 듯 나로부터 사라지다니...
나 어떻게 이 구멍난 마음을 감당 하란 말이야...
말 좀 해주고 가
대답 좀 해주고 가라구...
어떻게 해야 좋냔 말이야....
엉?
....

 


밉다 못해 분노로 치받친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게 되는 줄도 모르고
왔었다는 게 화가 난다.
단 1%의 연민조차도 남지않고 사라져 버린다.
더럽다.
무심코 집어든 어느 잡지 한켠에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서 발췌했노라는 글귀가 들어온다.
미워 하지 말란다.
그래, 그건 성인군자들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일 뿐이야.
미운데 어찌 미워하지 않을 수 있어.
에이~!
더럽고 지저분한 세상!
에이~!
치살맞고 껄끄러운 세상!
잘가라!
가면 가는 거지뭐.
뭐가 아쉬워~!
첨부터 없었던 건데
사라진것도 없어진 것도 아니야.
에이, 에이,....
망할 놈의 비는 왜 이렇게 진종일 뿌려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