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2

[스크랩] (말인의)청춘을 돌려다오- 8 (제강의 사미인곡)

末人 2006. 5. 16. 16:36

(제강의 사미인곡)

1971년 12월 초순
겨울이 시작되던 무렵
거리엔
성급한 이들이 틀어댄 캐럴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흡사
한눈에 보아도 예술가처럼 보이는
베레모를 눌러 쓴 건장하고 키 가 큰
내 또래의 한 사내가
나를 찾아왔다.

가늘고 긴 손가락을 움켜쥔 그의 손 안엔
몇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봉투에 담겨진 채 들려 있었다.

"말인입니까? 저 제강입니다."
"아~! 제강..."

그가 나를 찾아갈 거라는 연락을
다른 친구로부터 받고 있었던 터라
그가 올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로 놀라움도 없이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우선 술이나 한잔 하러 갑시다."
"아닙니다, 저는 술을 못합니다."

그는 손을 흔들어 극구 사양했다.
할 수 없이
중국집으로 가서 울면을 시켰다.

"이번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한 100여장 그렸습니다.
이것을 팔긴 팔아야 겠는데 방법이 없어
고민고민하다가 말인을 찾아가 보라는 이야기를
말상으로부터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봉투에서 꺼내 일일히 보여줬다.

인쇄되어 나오는 싸구려 카드하고는 질적으로 틀렸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그림들이 아주 멋져 보였다.

이 많은 카드를 손수 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랬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있지요, 카드와 낙서를 접목하는 겁니다."

얼마 전
25시 술집에서 가졌던 꽁트낙서전에서의
젊은이들의 반응이 괜찮았다는 생각이 떠올라
바로 그 방법을 생각했던 것이다.
카드와 낙서.
그리고 꽁트...

그리하여
돈암동 한성여고 앞
어느 큼직한 분식집을 빌려
그 곳에 제강의 카드와 나의 낙서를 함께 전시했다.

여학생들의 관심은 대단했지만
생각보다 만족한 결과는 얻지를 못했다.
카드는 탐을 냈지만
그들이 돈을 주고 구입하기엔 부담이 되는 듯 했다.

하여 나중엔 그냥
이쁘거나
귀여운 짓을 하는 여학생에겐
그냥 주었다.

이 카드낙서전을 계기로
제강과 나는 처음 만났지만
엄청 가까와 질 수 있었다.

제강은 본래 손재주가 기막혔다.
손재주 뿐만이 아니고
어느 한 곳에 열중하면 기어코 뿌리를 뽑고야 마는
집착력이 대단한 친구였다.

내가 아는 것만 꼽아봐도
그는 거의 전문가 수준 정도로
깊은 경지까지 도달한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목각은
그가 총각 때 엄청 즐겼던 취미 중의 취미였다.
섬세한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목각은
대단한 미술작품이었다.

그는 그것을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데 그쳤다.

결혼을 하고서는 사진촬영에 미쳐서
온갖 촬영대회는 다 따라 다닐 정도였다.

사진을 찍고파
그는 오토바이까지 샀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가 가고픈 곳이면 어디에고 가서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사람을 만들어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런 습관이
오늘날 제강의 사미인곡의 시초가 되었고
그가 작업맨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기까지
그는 그 짓을 너무도 즐겼다.

결국 오토바이를 버리고 승용차를 샀다.
아마도
우리 친구 중에서 그보다 먼저
자기 차를 가져 본 친구는 없었다.
70년대 후반부터 그는 자가용을 끌고 다녔다.

친구들의 결혼식 사진은 그가 도맡아 찍었고
그러다보니 결혼 뒤의 드라이브는
언제나 그의 차가 이용되었다.

오늘날
그의 산행사진이
빛나 보이는 것은
바로 이즈음 갈고 닦은
그의 오래된 실력의 결과일 뿐이다.

한동안 사진에 빠져있던 그가
어느 날 부터 낚시에 미쳐 버렸다.

그는 카메라를 벗어던지고 낚시 가방을 메고
충주 땜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낚시에 미친 그를 따라
나도 충청도 저수지,
북한강 상류의 어느 섬,
낚시가 금지된 팔당 땜의 어느 으슥한 곳 등등
많이도 다녔다.

그가
낚시에 미쳐 낚싯대를 드리고 있을 땐
나는 뒷전에 앉아
나의 짝꿍과 술타령을 했다.
이러한 나에 대하여
질투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우정이었던가?
방관이 우정이라면
지금 도리켜 생각해보면 실소가 나올 뿐이다.
차라리
패서라도 말릴 일이지...


이렇듯 낚시에 미쳐있던 그가
어느날 그나마도 때려치고
이번엔
증권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매사에 집착력이 강했던 그 인지라
그는 나름대로 증권전문가가 되어 갔다.

객장에 나가
시세를 체크하고 돌아와서는 전문서적을 펼쳐놓고
기술적 분석을 배워갔다.

종합주가지수,
업종별지수에
시장을 선도하는 개별종목까지 날마다 체크하며
대수그라프를 일일히 그려 나갔다.

커다란 로그 그라프용지( 이것도 손수 그려서 인쇄를 한것임) 한 장에
각종지수를 그려넣고
색갈별로
5일평균선,25일평균선,60일 평균선에
심리선,추세선까지 꼼꼼히 그려나갔다.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 정밀한 작업은
후에
그의 직업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떼 돈을 벌었다.
그의 기술적 분석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거의 3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투자수익에 고무되어
우리 친구들이 대부분 주식에 손을대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말인도
몇 푼 되지는 않지만
주식 때문에 돈을 날리기도 했지만...

1000포인트를 넘나들던 종합주가가 침체기로 접어들 즈음
그는 용케도 주식에서 손을 털고
동양란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란에 손댄지 오래지 않아
그는 누구보다도 란에 대하여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분갈이를 한다던가
가지치기..
그런 분야에 문외한인 나는 용어도 모른다.
아무튼 란에 대하여서는
우리 주변에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처음부터
술을 마시지 못했던 그에게
이러한 취미들을 갖는다는 건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야
시간만 나면
그저 한잔 퍼마시고 떠들고 히히덕대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런데
아이로니칼 하게도
이러한 그를 따라
단란주점의 전신이랄 수 있는
노래하는 술집을 가게되었다.

그는 그 술집의 단골이었다.
술도 한잔 마시지 못하는 그가
어이하여
아릿다운 아가씨들이 드글거리고
뺀드에
무대까지 있는 이런 술집의 단골이라니
처음엔 의아했다.

허나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직업상
그는
업자들로부터의 대접을 받는 자리에 있었기에
그가 들러
마시고 놀고 싶은대로 놀고 난 후
외상장부에 긋기만 하면
나중에
업자들이 대신 갚아주는 것이었던 것이다.

술도 못마시는 그는
이런 술집에 들러
괜시리 아가씨들과 노래하고 대화하고 웃었다.

그것이 그의 취미였다.

허지만
그것으로써 그의 인생이 풍요롭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는 대단한 작업맨이다.

허지만
우리가 농담처럼 놀려대는 그런 저속한 작업맨은 아니다.

괜시리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자신의 가슴 안에 안고 싶어하기 보다는
자신의 카메라 앵글 앞에 세워보고 싶어 했고
자신이 기른
란초 한 포기를 선물해 주고 싶어했다.

나에게
채팅을 가르쳐준 친구다.

그는 말한다.
한 개를 가르쳐 놓으면
열가지 짓을 하는 나라고...

그러나 어쩌랴..
그가 가르쳐 준 채팅이
오늘의 나를
이처럼 엄청난 인터넷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 것을...

하루도
컴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로 만들어 버린 제강..

그런 제강에게도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아픈 사미인곡이 있었으니...

그 깊은 사연이야
낸들 어찌 알 것인가?
기회가 되면
언젠가 한번 쯤 들려주지 않을까?

그는
정말로 작업에는 소질이 없었다.
웬만하면 성공할텐데
숟가락으로 입에까지 떠 넣어 주어도
삼키지를 못하는 형국이었다.

어찌보면 순진(?)하고
어찌보면 너무 성급했다.

우리는 느긋한 성격이지만
그는 단번에 무언가를 이루려 했다.
했기에
질겁을 하고 도망가는 여인들이 속출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로부터
작업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서래옥은
작업을 하면 잘 할텐데
애시당초
작업이라는 걸 시작하지는 않았다.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나중에
하나씩 하나씩 기회가 되는대로 들려드리려 한다.
지금은 간단간단
맛보기 이야기로써
회원님들의 반응을 살피려 한다.
가장 열광하는 대목,
가장 궁금해 하는 이야기들을 집중적으로 들려드리려 한다.

서래옥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들려주겠다.
출처 : 도봉에서 관악까지
글쓴이 : 末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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