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2

[스크랩] (말인의)청춘을 돌려다오- 9 (넉살꾼 서래옥)

末人 2006. 5. 16. 16:56


서래옥을 만난 것은 1967년도 쯤 이리라.
학교 동창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청협이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있을 무렵
학교 때부터
회장의 위치에 있었던
혁이라는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있었다.

나는 뒤늦게 그 모임에 합류하면서
지금은
변호사로 있는 동창 친구의 일가로써
이 모임에 들어와 있었던 서래옥을 만나게 된다.

다부져 보이는 체구에
스포츠형으로 짧게 깍은 헤어스타일은
그에게서
언제나 넘치는 파워를 느끼게 해 줬다.

유모어가 풍부했고
익살스런 장난끼가 많았던 친구,서래옥..

그는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태권도 실력도 수준급일 것이다.
국기원엘
유단자 자격을 딴다고 여러번 들린 걸로 기억하지만
정확하게
그가 태권도 몇단인지는 자세히는 모른다.

그뿐이 아니다.
바둑도 거의 프로에 가까우리만큼
아주 잘 둔다.

지와 용을 동시에 갖춘
시대의 엘리트다.
문장력도 상당히 뛰어난 다방면의 재주꾼이다.

뜻하지 않게도 혁이라는 친구가 죽고
침울한 분위기가 우리 모임에 흐르고 있을 무렵
우리는 자주 만났다.

마포 고바우집에서
찌그러진 주전자로 부터 막걸리를 따라 놓고
마주앉아
삶을,철학을,사랑을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그러다 취하면
어깨동무를 하고
만리동 고개를 걸어서 넘어가곤 했다.

여자는 자고로
가르쳐서 데리고 살아야 한다던 어려서의 그의 지론이
지금
얼마나 많이 지켜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에 대한 관심은 별로였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당시 여자에대한 무관심이
나중에 한국의 내로라하는
미녀들의 집단의 우두머리로써
조금의 스캔들도 없이
임무를 탈없이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는지도 모른다.

서래옥 그만큼
세계 여행을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거의 매일 외국여행을 다녔다.
아니
다녔다라기 보담은
다녀야 했다.
그 것이 그의 직업이었으니깐...

우리나라 비행기가 가는 곳 어디고
그가 안가본 곳은 한군데도 없다.
가 본 정도가 아니라
수십번 수백은 갔을 것이다.

세계를 다니며
그가 느꼈을 온갖 이야기들은
언젠가
그에게서 직접 듣기로 하고
나는
여기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장난끼가 심한 그 때문에
황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문정문학 시절
그 역시
글에 대한 상당한 관심이 있어하기에
가입을 권유했고
그도 문정동인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모임이 있고없고
종로 리본다방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그날도 오길데 없어
아침부터 다방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애꿎은 담배만 빨아대고 있는데
서래옥이 들어왔다.

점심은 먹었냐고 그가 물었다.
점심이 문제가 아니라
술이 고프다고 내가 말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던 얼마후
구세주처럼 나타난 윤금자...

넉살좋은 서래옥이 윤금자의 자존심을 긁었다.
말인이 술이 고프다하니
윤하씨가 한잔 사 주시라는 거다.

숙녀 체면에
마다할 수 없었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셋은 신설동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의 집이 그 부근이었던 거다.

돈이 없어
집에 가서 돈을 가지고 나오려고 그리로 갔는지
아니면
두 남자의 술 주정으로부터
손쉽게 탈출할 수 있겠다 싶어 그리로 갔는지
아무튼 우리는 신설동 부근 어느
커다란 갈비집을 들어갔다.

주거니 받거니
나와 서래옥은 구세주를 만난 듯
물주를 만난 듯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나서
연방 술잔을 비워갔다.

내가 생각해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우리 둘은 퍼마신 것이었다.

간다는 말도 못하고
술 마시어 점점 더 취해가며 망가지고 있는
두 사내 앞에서 쩔쩔매던 윤금자가
어느 틈이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황당했지만
어쩌랴...
계산조차 안하고 가버렸으니
주머니에 달랑
전차표 살 돈만 넣고 다니던 우리에겐
난감하고 당혹스럽고 죽을 맛이었다.

이 많은 술값을 무엇으로 치루고 나가랴...
손목에 찬 시계라도 잡히면 되련만
그날따라 고장나는 바람에 벗어놓고 나온 터였다.

한참을 고민하는 나에게
서래옥이 옆구리를 쿡찌르는 게 아닌가?
뭘 걱정이냐고,,
그냥 술이나 더 마시자며 쏘주 한병을 더 시키는 것이 아닌가?

돈 있어?
내가 물었다.
얌마, 돈 가지고 술먹냐? 아무 걱정 말고 기분좋게 술이나 마시자...

내가 알기로도
서래옥 그에겐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잡힐 값어치가 있는 물건도 없었다.

그렇게 또 한병을 비우고 나자 서래옥이 눈짓을 한다.

화장실 가는 척 하고 나 먼저 나가란다...
그리고
잡힐지도 모르니깐 나가자마자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가서 기다리라는 거다.
3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아주 완벽한 씨나리오였다.
그는 주인공이었고
나는 조연이었다.

시키는대로 했다.
나는 가슴이 콩닥거리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서래옥이 버스에서 내리며 킬킬 웃었다.

얌마, 성공이쟎아...

그도 용케도 도망쳐 나온 것이다.
이 사건은 후에
우리들의 멋진 역사적 사건이 되었지만
세상에 태어나
내가 저지른 최초이자 마지막
무단취식에 도주까지한 범죄행위였다.

물론 주범은 어디까지나 서래옥이었고 나는
단순가담의 공범이었을 뿐이다.

그의 익살과 넉살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사건을 말하겠다.

1970년 대 중반
한 친구의 함을 지고 부산엘 내려갔다가
송도 어시장을 들렸다.

마침 대구에 또 한 친구가 살기에
우리는 살아있는 문어 한마리를 사가지고
대구의 그 친구 집에 가서
일잔을 하고 가기로 뜻을 모았다.

어시장에 들러
힘 쎄고 큼직한 문어 한마리를 샀다.
비닐에 바람을 넣어 땡땡하게 묶어 주었다.

우리는 기차를 타려고 부산 역전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비닐 속에 있던 문어가
비닐을 찢고 세상 밖으로 다리를 내 젖고 흔드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또 다른 다리가 나오고
이어 또 다른 다리가...

버스 안은 수랑장이 되어 버렸다

때 마침 들고있던 비닐 우산에 그 문어를 집어 넣고 거꾸로 들었지만
맹렬한 문어의 기세는 꺽일 줄을 몰랐다.

황급히 부산역전에 내린 우리..
서래옥은
다급하게 역전 파출소로 달려갔다.
파출소 입구엔 언제나 커다란 글씨가 써져 있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라고....

경찰아저씨~!
우린 서울서 온 관광객인데
문어가 탈출을 해서 난리입니다
도와주십시요.

서래옥의 다급한 sos였지만
대답은 노였다.

세상에 원...
다른 건 다 도와드릴 수 있어도
문어탈출에 대하여는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였다.

그 경찰관의 말은 맞았다.
파출소를 갈 것이 아니라
어느 가겟방이라도 들어가서
비닐을 얻는 게 순서 아니었던가?

경찰의 평범함에 도전했던 서래옥,
평범함을 거부했던 그로부터
병원에 누워있다는 연락이 왔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손목이 골절되고
얼굴은 이그러지고...

살아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 높은 도봉산 바위 위에서 추락을 했으니....

그리고도 여전히
암벽타기를 즐기는 사람,
지금도
시간만 나면
실내암벽타기를 하러 다니는 사람,
인수봉에 올라가
달빛이 담긴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하는 낭만의 사나이..
주일이면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반야심경을 인용하기 좋아하는 사람.
어머니날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야할지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야할지를 고민하며
가슴 아파했던 사람.

그가
서래옥이다.















출처 : 도봉에서 관악까지
글쓴이 : 末人 원글보기
메모 : 서래옥을 만난 것은 1967년도 쯤 이리라.
학교 동창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청협이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있을 무렵
학교 때부터
회장의 위치에 있었던
혁이라는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있었다.

나는 뒤늦게 그 모임에 합류하면서
지금은
변호사로 있는 동창 친구의 일가로써
이 모임에 들어와 있었던 서래옥을 만나게 된다.

다부져 보이는 체구에
스포츠형으로 짧게 깍은 헤어스타일은
그에게서
언제나 넘치는 파워를 느끼게 해 줬다.

유모어가 풍부했고
익살스런 장난끼가 많았던 친구,서래옥..

그는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태권도 실력도 수준급일 것이다.
국기원엘
유단자 자격을 딴다고 여러번 들린 걸로 기억하지만
정확하게
그가 태권도 몇단인지는 자세히는 모른다.

그뿐이 아니다.
바둑도 거의 프로에 가까우리만큼
아주 잘 둔다.

지와 용을 동시에 갖춘
시대의 엘리트다.
문장력도 상당히 뛰어난 다방면의 재주꾼이다.

뜻하지 않게도 혁이라는 친구가 죽고
침울한 분위기가 우리 모임에 흐르고 있을 무렵
우리는 자주 만났다.

마포 고바우집에서
찌그러진 주전자로 부터 막걸리를 따라 놓고
마주앉아
삶을,철학을,사랑을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그러다 취하면
어깨동무를 하고
만리동 고개를 걸어서 넘어가곤 했다.

여자는 자고로
가르쳐서 데리고 살아야 한다던 어려서의 그의 지론이
지금
얼마나 많이 지켜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에 대한 관심은 별로였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당시 여자에대한 무관심이
나중에 한국의 내로라하는
미녀들의 집단의 우두머리로써
조금의 스캔들도 없이
임무를 탈없이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는지도 모른다.

서래옥 그만큼
세계 여행을 많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거의 매일 외국여행을 다녔다.
아니
다녔다라기 보담은
다녀야 했다.
그 것이 그의 직업이었으니깐...

우리나라 비행기가 가는 곳 어디고
그가 안가본 곳은 한군데도 없다.
가 본 정도가 아니라
수십번 수백은 갔을 것이다.

세계를 다니며
그가 느꼈을 온갖 이야기들은
언젠가
그에게서 직접 듣기로 하고
나는
여기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장난끼가 심한 그 때문에
황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문정문학 시절
그 역시
글에 대한 상당한 관심이 있어하기에
가입을 권유했고
그도 문정동인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모임이 있고없고
종로 리본다방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그날도 오길데 없어
아침부터 다방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애꿎은 담배만 빨아대고 있는데
서래옥이 들어왔다.

점심은 먹었냐고 그가 물었다.
점심이 문제가 아니라
술이 고프다고 내가 말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던 얼마후
구세주처럼 나타난 윤금자...

넉살좋은 서래옥이 윤금자의 자존심을 긁었다.
말인이 술이 고프다하니
윤하씨가 한잔 사 주시라는 거다.

숙녀 체면에
마다할 수 없었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셋은 신설동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의 집이 그 부근이었던 거다.

돈이 없어
집에 가서 돈을 가지고 나오려고 그리로 갔는지
아니면
두 남자의 술 주정으로부터
손쉽게 탈출할 수 있겠다 싶어 그리로 갔는지
아무튼 우리는 신설동 부근 어느
커다란 갈비집을 들어갔다.

주거니 받거니
나와 서래옥은 구세주를 만난 듯
물주를 만난 듯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나서
연방 술잔을 비워갔다.

내가 생각해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우리 둘은 퍼마신 것이었다.

간다는 말도 못하고
술 마시어 점점 더 취해가며 망가지고 있는
두 사내 앞에서 쩔쩔매던 윤금자가
어느 틈이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황당했지만
어쩌랴...
계산조차 안하고 가버렸으니
주머니에 달랑
전차표 살 돈만 넣고 다니던 우리에겐
난감하고 당혹스럽고 죽을 맛이었다.

이 많은 술값을 무엇으로 치루고 나가랴...
손목에 찬 시계라도 잡히면 되련만
그날따라 고장나는 바람에 벗어놓고 나온 터였다.

한참을 고민하는 나에게
서래옥이 옆구리를 쿡찌르는 게 아닌가?
뭘 걱정이냐고,,
그냥 술이나 더 마시자며 쏘주 한병을 더 시키는 것이 아닌가?

돈 있어?
내가 물었다.
얌마, 돈 가지고 술먹냐? 아무 걱정 말고 기분좋게 술이나 마시자...

내가 알기로도
서래옥 그에겐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잡힐 값어치가 있는 물건도 없었다.

그렇게 또 한병을 비우고 나자 서래옥이 눈짓을 한다.

화장실 가는 척 하고 나 먼저 나가란다...
그리고
잡힐지도 모르니깐 나가자마자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가서 기다리라는 거다.
3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아주 완벽한 씨나리오였다.
그는 주인공이었고
나는 조연이었다.

시키는대로 했다.
나는 가슴이 콩닥거리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서래옥이 버스에서 내리며 킬킬 웃었다.

얌마, 성공이쟎아...

그도 용케도 도망쳐 나온 것이다.
이 사건은 후에
우리들의 멋진 역사적 사건이 되었지만
세상에 태어나
내가 저지른 최초이자 마지막
무단취식에 도주까지한 범죄행위였다.

물론 주범은 어디까지나 서래옥이었고 나는
단순가담의 공범이었을 뿐이다.

그의 익살과 넉살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사건을 말하겠다.

1970년 대 중반
한 친구의 함을 지고 부산엘 내려갔다가
송도 어시장을 들렸다.

마침 대구에 또 한 친구가 살기에
우리는 살아있는 문어 한마리를 사가지고
대구의 그 친구 집에 가서
일잔을 하고 가기로 뜻을 모았다.

어시장에 들러
힘 쎄고 큼직한 문어 한마리를 샀다.
비닐에 바람을 넣어 땡땡하게 묶어 주었다.

우리는 기차를 타려고 부산 역전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비닐 속에 있던 문어가
비닐을 찢고 세상 밖으로 다리를 내 젖고 흔드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또 다른 다리가 나오고
이어 또 다른 다리가...

버스 안은 수랑장이 되어 버렸다

때 마침 들고있던 비닐 우산에 그 문어를 집어 넣고 거꾸로 들었지만
맹렬한 문어의 기세는 꺽일 줄을 몰랐다.

황급히 부산역전에 내린 우리..
서래옥은
다급하게 역전 파출소로 달려갔다.
파출소 입구엔 언제나 커다란 글씨가 써져 있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라고....

경찰아저씨~!
우린 서울서 온 관광객인데
문어가 탈출을 해서 난리입니다
도와주십시요.

서래옥의 다급한 sos였지만
대답은 노였다.

세상에 원...
다른 건 다 도와드릴 수 있어도
문어탈출에 대하여는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였다.

그 경찰관의 말은 맞았다.
파출소를 갈 것이 아니라
어느 가겟방이라도 들어가서
비닐을 얻는 게 순서 아니었던가?

경찰의 평범함에 도전했던 서래옥,
평범함을 거부했던 그로부터
병원에 누워있다는 연락이 왔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손목이 골절되고
얼굴은 이그러지고...

살아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 높은 도봉산 바위 위에서 추락을 했으니....

그리고도 여전히
암벽타기를 즐기는 사람,
지금도
시간만 나면
실내암벽타기를 하러 다니는 사람,
인수봉에 올라가
달빛이 담긴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하는 낭만의 사나이..
주일이면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반야심경을 인용하기 좋아하는 사람.
어머니날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야할지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야할지를 고민하며
가슴 아파했던 사람.

그가
서래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