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욕탕사람들
욕탕의 여인들
넬 던 작
이문원 번역
등장인물
미올렛(45세) ---
조시(34세) ---
매도우부인(65세) ---
단(35세, 매도우 부인의 딸) ---
낸시(38세) ---
제인(38세) ---
빌 --- (소리만 들리고 나타나지는 않는 남자)
[페이지] 001
[막] 1막
[장] 1장
[무대] 영국 런던의 1909년도에 세워진 터키식 목욕탕. (시에서 운영하는 공중탕이다) 세로 홈이 파여진 녹색의 기둥들과 고풍스런 섬세한 철제 구조가 낡은 침대, 그리고 한쪽 벽면을 가로질러 쓰여있는 현대적 글자체의 "터키식 휴게실"이라는 문구와 대조를 이룬다. 계단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있는 타일로 만들어진 냉탕욕조가 자리하고 있다. 한쪽 옆으로는 약간의 뜨개질 거리와 라디오가 놓여있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속제 락커들이 한 줄로 놓여있다. 중앙에는 커다란 구식 체중 저울이 그 옆에는 전신용 거울이 세워져 있다.
(비올렛이 목욕 수건을 한아름 안고 들어온다. 수건들을 내려놓고 침상 위의 베개들을 다독거리는 등 목욕탕 문을 열 준비에 부산하다. 라디오의 음악소리에 맞추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본다. 잠시 샤워 실에 다녀온 그녀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다른 한쪽을 향해 외친다)
[비올렛] 빌! 빌 이리 좀 와봐! (한남자의 그림자가 유리문 뒤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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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왜 그러슈? (목소리만 들린다)
(비올렛이 라디오를 끈다)
[비] 저 빌어먹을 샤워꼭지들 또 말썽이라구. 도대체 보수과에 고쳐달란 연락을 한 거야, 안한 거야?
[빌] 했죠. 다음주 내로 고쳐준대요.
[비] 다음주? 그럼 당장 이번 주는 어쩌란 거야? 샤워 고장난 목욕탕에 와서 머리감고 목욕도 하고 하란 얘기야? 시원하게?
[빌] 그걸 왜 나한테 따져요? 내 잘못도 아닌데---
[비] 목욕탕이 죄다 고물딱지가 다 됐는데도 저 녀석은 맨날 한다는 소리가 뭐? "내 잘못도 아닌데" 그저 사내란 물건들은 너나 할거 없이 오리발만 내민다니까.
(문이 활짝 열리며 조시 등장)
[조시] 안녕, 비올렛!
[비] 응, 어서 와요.
[조] 내 진짜 이제 그 만원버스는 이가 갈려요. 아니 이 밍크코트, 바지, 부츠를 쪽 빼 입고 그런 똥차나 타고 다닌다는 게 말이나 돼요? 장갑이 빠진 게 구색이 좀 안 맞았지만--- 그래서 파란색 스타킹을 장갑 대신 슬쩍 꼈지--- 보기에 그럴 듯 하죠?
(조시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비올렛은 자기 일을 하고 있다)
[비] 아직도 그 외국남자랑 같이 지내우?
[조]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럼요. 그런데 이젠 아주 신물이 나 죽겠어요. 시도 때도 없이 그 짓을 하재요. 어제 밤에는 내가 일부러 머리엔 구리쁘를 잔뜩 말고, 잠옷도 긴소매 긴 바지로 된 걸로 입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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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위에다가 긴 덧양말까지 끼워 신었는데도 날 올라타려고 들더래니까 참! 이렇게 소리를 지르더라구요 "그 옷 벗어버려. 지금 당장!" 아니 사실은 이랬죠. (희한한 말투로) "그 옷 벗어버려, 지금 당장!" 그러면서 그 자식 내 속옷을 찢어버리는 거예요. 아프기도 아팠지만 그거 처음 입은 새거였으니, 얼마나 아까와요. (옷을 벗으며 그녀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황홀한 듯 들여다본다) 그 자식은 친구도 한 마리 없어요. 재미란 것도 모르고. 재미는커녕 그저 시계불알처럼 왔다갔다한다니 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똥누고, 직장 갔다 돌아와서 발 닦고 저녁 먹고, 텔레비 좀 보다가는 그냥 올라타는 거 밖에 몰라요. 그 짓 하는 게 그 작자의 유일한 낙이라구나 할까, 하룻밤에도 수도 없이 해대는데, 짐승 같은 자식, 그 짓에는 이골이 난 나도 해도 너무 한다는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비] 그럼 좀 편한 남자를 찾아보지 그러우?
[조] 어디 그게 쉽게 뜻대로 되는 일이에요? 그래 아줌마가 하나 소개해 줘요, 당장 신발 바꿔 신을 테니까. 누구? 아저씨?
[비] 우리 그이는 빼고!
[조] 것봐요. 그러니 내 그 제리랑 뒹굴 수밖에 더 있어요? 한번은 둘이 멍청이 마주 앉아 있다가, 투덜대더라구요. "지루해 죽겠어" "오호, 지루하시다구?" 그러구 내 그 자식 낡쓰를 집어 들었죠. "그럼 내 일거리를 만들어 드리지" 그담에 이렇게 (시늉을 하며) 셔츠 단추를 하나, 하나 다 잡아 뜯어버렸죠. "자, 이제 단추를 제자리에 달면서 놀아보셔"" 아 그랬더니 요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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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코 날 째려보대요. 이렇게요. (흉내를 낸다) 한참 있다가 이러 대요. "너 하이얀 눈 좋아하지" "아니, 별로" 그랬더니 이 말려 죽일 인간이 찬장에서 이 킬로 짜리 밀가루 푸대를 꺼내와서는 부엌 바닥에 좍 뿌려 놓는 거예요. 난 그냥 웃어줬죠. 근데 그 자식은 웃지도 않고, 꼼짝 않고 앉아서 날 노려보고 있는 거예요. 결국 내가 그걸 다 치울 때까지. 도대체 뭘 바라는지 알 수가 없는 인간이라니까? 낙이 없어요, 낙이. 이젠 한술 더 떠서 내가 부엌을 빨강색으로 새로 칠할려면 파란색 페인트를 끼얹어 버리고, 또 파란색 옷을 사 달래면 빨강색 옷을 만지작거리고 있구요. 결국은 그나마 사주지도 않으면서. 내 친구는 한 놈 물면 껍질까지 홀딱 벗겨버린다는데, 난 도대체 그런 재주도 없고,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니 까요. (조시는 옷을 모두 벗고 침상을 정돈하고 있다)
[비] 그럼 조시 지갑은 털어 봤자 먼지밖에 안나오겠구려.
[조] 누가 아니래요? 그래요, 이젠 그 자식한테 돈주머니 좀 풀어놓게 구슬리는 수법을 개발해야 돼요. 나랑 맨날 내 침대에서 물고 빨고 하면, 전기세, 전화세는 지가 낼만한 거 아녜요. 요샌 하루걸러 고지서가 날라드는 통에 돌아가시겠다니 까요. 아유, 골 아퍼. 밀린 세금 땜에 속 반쓰까지래도 다 팔아야 할 지경이에요. 내 여기라도 와서 이렇게 풀어버리지 않았다 간 당장 돌아버릴 거예요.
(그녀는 침상에 눕고 비올렛이 따뜻한 수건으로 그녀를 덮어 준다)
[비] 돈버는 방법은 딱 세 가지밖에 없수. 첫째가 유산상속을 받는 건데, 이건 해당사항이 없을 테고, 둘째는 돈 많은 남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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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는 거. 그리고 마지막 방법이 자기가 직접 버는 거지.
[조] 셋 다 별 볼일 없네요, 내 경우에는?
[비] 조시도 직장을 구해보면 되잖겠수?
[조] 하, 이 동네에서요? 아유 아줌마, 난 지루해서 못 견뎌요. 잘 아시면서.
[비] 그게 싫으면 계속 그 시원찮은 녀석들한테 매여 사는 방법밖에 뭐가 있겠수.
[조] 어쨌든요, 제리 녀석 내 고지서들 책임을 져야 된다구요. 나야 없다구 나자빠지면 그만이지, 뭐. (문이 열리고 매도우 부인, 그리고 뒤이어 그녀의 딸인 단이 들어온다)
[매] 아니, 이 불쌍한 것이, 아 글쎄 얘가 화장실에서 볼일 보구 나오다가 미끄러져 넘어졌다우. 그래서 시퍼런 멍이 얘 이--- (그녀는 황급히 입을 막고는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명칭의 그 부위를 가리키는 시늉으로, 단의 엉덩이를 두들긴다) --- 에 생겼수. 그뿐인가, 어제는 또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서, 술이 약간 취했었거든. 여기 좀 봐요. (그녀는 단의 머리를 뒤로 슬어 넘겨 이마에 난 멍 자국을 보여준다) 이 가엾은 것이, 내가 집밖에 나가 있을 때마다 무슨 놈의 술을 그렇게 마셔대는지--- 그런데도 빈 병들을 어디다 숨겨두는지 통 모르겠거든--- (그녀 미소, 단은 박장대소) 웃음도 나오겠다, 그 꼴을 해가 지구는. (단은 계속 웃어댄다) 그만하지 못하겠니, 얘야. 저리 가서 옷이나 벗어라. 아침에 깨보니까 밤새 비가 많이 내린 모양이더군. 온통 물바다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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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지붕이 아직도 새나 부죠? 매도우 부인?
[단] 비올렛 내 머리 어때?
[매] 급히 짤랐더니 저렇게 됐어. 별수 없지, 부엌 가위 밖에 없던걸.
[단] 괜찮은 거 같애? 엄만 왜 내가 머리 기르는걸 싫어하는지 몰라.
[매] 머리 길러봐야 이밖에 더 생기니? 쟨 짧은 머리가 어울려요. 근데 왜 저리 머리를 기르지 못해서 야단인지 원.
[비] 빨리 사람을 불러서 지붕을 수리하든지 하셔야지, 폐렴이라도 걸리면 어쩌실려구.
[매] 난 운이 따르는 여자거든. 아마 날이 개이면, 새는 것도 저절로 멈출게 틀림없어요. 그보다도 수리공이 지붕에 기어올라가 있는걸 보면 단이 기겁을 할꺼라구.
[단] 지붕을 뚫고 집안으로 떨어질지도 몰라.
[매]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하구, 가서 옷이나 벗으라니까. (큰 소리로 속삭이듯) 쟨 지금 생리중이라우. 그래서 좀 이상해진 거야. 거 왜 생리 중에는 별난 짓 하는 이들 있잖수.
[단] 엊저녁은 참 잘먹었어. 튀긴 닭, 튀긴 감자, 커다란 빵---
[매] 고기국물 수프.
[단] --- 고기국물 스프. 그리고 디저트로 엄마가 사과 파이도 만들어 줬지.
[매] 정말 맛있게 먹었지. 그런데 끝날 때쯤 큰딸 버니스가 찾아오지 않았겠수? "엄마, 식사가 끝났으면 나이프랑 포크를 나란히 놔야죠" 이러길래 내 쏴줬지. "난 식사도구 같은 거엔 관심 없다. 음식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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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먹을 거 좀 없어, 여기?
[매] 있어도 못 준다. 네 언니 보기에 네가 너무 살이 쪘대잖니. 가서 몸무게 좀 달아보렴. (비올렛에게) 일 키로 늘 때마다 명이 일년씩이나 줄어든다는구먼.
[단] 그래도 뭐 좀 먹고 싶어, 배가 고픈걸.
[매] 쟨 오늘 아침에도 벌써 계란 후라이, 돼지고기에 차를 석잔 이나 게눈 감추듯 해버렸다우. 그러구두 젤리 한 상자를 다 비워버리더라구.
[매] 얘 그래 놓구도 더 들어갈 구석이 있냐? 이 배 좀 봐라, 응! (매도우 부인이 단의 점퍼를 들어 올리고, 핑크빛 속옷 고무줄 위로 불거져 나온 배를 보여준다.)
(단은 어찌됐건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는 사실에 기뻐, 미소를 짓는다)
[단] 아이 참 엄마두! 난 출출하단 말이야!
[매] 안돼요! 너 그렇게 퍼먹다가 심장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 알고나 있니? (그녀는 자신의 점퍼를 들어 올린다) 난 사시사철 이렇게 코르셋에다 털 속옷을 이중으로 입고 다닌다우. 아무리 더운 날이래두. 이렇게 끼어 입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입고 다니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녀는 눈을 굴린다) 요즘 사내녀석들 눈길이 보통 징그러우--- 하여튼 우리 큰 딸애는 집에만 오면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 잔소리가 시에미 같다우. 이건 꼭 친정 집에 온 게 아니라 위생검사 하러 온 거 같다니까. 얘! 옷 벗지 못하겠니!
(매도우 부인과 단은 침상 중 하나의 커튼을 드리운다. 문이 열리고 낸시가 등장. 맵시 있고, 고상한, 차림새의 여성. 우산도 들고 있다. 문 옆에 서서 부츠를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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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말씀 좀 여쭐게요. 혹시 제인 이라고 여기 안 왔나요?
[비] 아뇨. 아직 안 왔네요.
[낸] (시계를 보며) 정각 열한시인데. 여기서 열한시에 만나기로 했거든요.
[비] 여기 처음이신 것 같네요.
[낸] 네. 하지만 제인한테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비] 그럴거에요. 제인은 사우나를 무척 좋아 하니까. 자, 이 침대를 쓰도록 하세요. 이따가 제인이 오면 바로 옆자리를 만들어 줄 테니까. 옷장은 열려 있는 거 아무거나 쓰세요. (낸시에게 수건을 두 장을 건네준다) 옷 벗고 사우나탕에 들어가지 그래요 기다리는 동안.
[낸] 됐어요. 올 때까지 여기서 그냥 기다리죠.
[비] 친구 사인가 보죠?
[낸] 네. 학교 동창이에요. (돌아서며) --- 코트만 벗어놓고 기다리죠.
[비] (낸시를. 무례하지는 않으나 찬찬히 아래위로 살펴보며) 우리 손님 중엔 가발이 설흔 다섯 개에, 선글라스가 쉬흔개라고 자랑하는 여자도 있는데, 그게 여기선 아무리 뽐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건 알더라구요. (자리를 떠난다)
[낸]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녀는 락커로 가서 부츠와 우산을 집어넣고는 침상으로 돌아온다. 콜드크림을 꺼내어 들고는 불안스럽게 시계와 문을 번갈아 본다. 그리고는 책을 한 권 꺼내들고 읽는다. 다른 여자들의 존재를 무시한다. 매도우 부인과 단이 커튼 뒤로부터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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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핑크빛 꽃무늬의 목욕캡, 핑크빛 반투명 플라스틱 가운, 핑크빛 슬리퍼 차림이다. 두 사람 체중계로 간다)
[매] (단에게) 얘 올라가 봐라. 올라서 보라니까.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지 봐야지.
[단] 난 줄넘기 그만 할래. 언니가 뭐라구 해도.
[미] 사우나 실에 들어가서 땀을 빼야겠다. 몸무게가 지난주보다 3킬로그램이나 더 늘었잖니.
[단] 그건 머리가 자라서 그런 거야.
[매] 아니에요. 그놈의 젤리 덕분이지.
[단] (웃는다) 아무렴 어때, 엄마. 이래도 엄만 날 사랑하잖아?
[매] (못들은 척 하며) 단, 사우나 실에 들어가라니까! 자, 얼른! 안 들어가면 이따가 과자 안 준다. (비올렛에게) 아이구, 요즘 와선 부쩍 몸이 말을 안 듣는다우. 의사란 작자가 약을 주긴 하는데 도통 들어먹어야 말이지. 그 남자가 내 몸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을 턱이 있나, 알 시간도 없구.
[단] (건너편 사우나실 쪽에서) 엄마, 요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졌어. (킬킬 웃는다)
[매] 단 어서 들어가라니까. 쟨 땀을 많이 빼야 된다우. 그래야 몸 속의 산성 기가 빠지거든. (눈을 좌우로 굴리고, 단에게 등을 돌리며 공모하듯 속삭인다) 글쎄 쟤가 또다시 경찰관들 소리가 들린다지 뭐유. 그놈들이 옆집 정원에 숨어서 자기를 훔쳐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옛날 그때 경찰이 단의 신원 조사를 나왔을 땐 말이우, 그중 한 놈이 이러더라구. "아주머니, 따님을 어서 시집이나 보내세요. 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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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게 하시라구요" 그래서 내가 대꾸해줬지. "누구 좋으라루, 이 양반아?" 그래 우리 여자들이 당신네 남자들 몸이나 풀어주려고 태어난 줄 알아?" 그런데 난 쟤가 이 경찰관 네 사람에 대한 환상을 떨쳐버리지 못하니. 아시다시피 우리 집 가정교육이 보통 엄한 게 아니잖수. 우리 딸네 미들은 절대로 길거리에 나가서 놀지도 못하게 했구.
[비] 단이 경찰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까지는 아주 정상적인 여자 애였죠. 매일 아침 8시 반이면 이 목욕탕 앞을 지나가던 일이 생각나네요.
[매] 저 애가 자전거도 곧잘 탔지.
[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던 게 틀림없었잖아요. 그때 좀 캐물어 보지 그러셨어요?
[매] 그땐 저 애 아빠가 살아 계셨잖수. 그인 그런 얘긴 꺼내기도 싫어했다우. "그만 덮어둡시다. 우리 애는 잘 극복 해낼 꺼요" 이러기만 했다니까. 의사가 나한테 신경 안정제를 주기 시작한 게- 그게 아마 1965년이었을 거야- 그 뒤론 저 앤 식사 때랑 여기 올 때만 빼놓고는 종일 침대에 누워서 지내왔지.
[비] 쇼핑 때라도 데려가지 그러세요.
[매] 갈려구 들어야 말이지. 잘 알잖수. 외출 안 한지 16년이나 됐다니까. 여기 오는 건 빼고. 글쎄 100미터밖에 되지 않는 거리도 누가 쫓아 오는 것처럼 뛰지 않고는 못 배기니--- 하여튼 저 애 아버지는 이런 문제로 얘길 꺼내는걸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우--- 점잖은 양반이었으니까.
(제인이 도착한다. 집시 스타일의 발랄한 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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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젖은 머리를 흔들며) 아이 추워!
[비] 잘 있었어, 제인. 곧 따뜻해 질꺼유.
[제] 안녕하세요, 비올렛.
[낸] 안녕, 제인. (두 사람 볼에 살짝 키스를 한다)
[제] 늦어서 미안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샘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느라구.
[낸] 코트가 다 젖었다, 얘.
[제] 이거 스팀 있는데 걸어놔도 괜찮죠?
[비] 그래요. (제인은 코트를 스팀 옆에 걸어놓는다)
[조시] 하! 정말 근사한 꿈을 꿨네. 그야말로 환상적인 꿈이야. 은빛 커텐이 쫙 쳐져있고, 새빨간 비단이 쭉 펼쳐져 있는 거야. 그 새빨간 비단 위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내 몸이 싹 미끄러져 내려오더라구. 남자들이 혼이 나가서 주욱 날 둘러서서 바라보구있구.
[비] 참! 샤워가 고장났어.
[조] 지랄이네!
[제] 난 머리 감아야 되는데, 빌어먹을!
[비] 내 물통에다 뜨거운 물 담아올게. 보수과 놈들, 여길 고물상으로 만들 작정인가 보다니까.
[제] (옷을 벗으며) 낸시, 옷 벗어. 내 사우나 하는 거 가르쳐줄게. 나 오래 기다린 건 아니지?
(낸시도 옷을 벗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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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고 눈치를 살피며, 벗은 옷들을 매우 깔끔하게 개어 놓는다. 타월 한 장으로 몸을 단단히 감은 후에야 속옷을 그 아래로 벗어 내린다)
[낸] 아냐, 약간, 참, 그런데 제인, 오늘 아침 정말 끔찍했어.
[제] 왜?
[낸] 세탁기가 고장났지 뭐야.
[제] (유머 있게) 아이구, 가엾기도 해라.
[낸] 어제 수리공이 오기로 되어 있었거든. 하루종일 기다렸다구.
[제] 그래 결국 왔어?
[낸] 아니--- (주위를 둘러보며) 더 끔찍 했던 건 아침에 우리 강아지 니나가 내 방 카페트 위에 먹은걸 토해 놨던 거야. (우울하게) 가엾어 죽겠어. 벌써 열여섯 살이나 먹어서 음식을 잘 다져주지 않으면 소화를 못시키거든.
[제] 갓난애기처럼?
[낸] 그럼. 니나가 죽는 날엔 난 정말 혼자가 되는 거야. 우리 아들 올리버, 그 앤 여자친구랑 헤어졌대. 자긴 요크에 이는 대학으로 갈거니 까, 런던에 있는 여자 친구는 아무 의미도 없대나? 하긴 주말에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제] 그 애한테 이 제인 아줌마 충고 좀 전해주렴--- " 얘, 올리버, 그렇다구 그 여자 애를 포기해 버릴 필요는 전혀 없단다--- 이 아줌마는 네 나이 때 남자친구 한 타스랑 동시에 연애를 즐겼단다"
[낸] (미소) 너 그때 정말 유명했었지---
(비올렛이 뜨거운 물이 담긴 물통을 들고 들어온다. 낸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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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 거울 좀 봐. 내가 찌그러진 괴물처럼 보여! (고개를 돌린다)
[제] 네 영양크림 좀 쓸게!
[낸] 그래. 랑콤이야. 세일 하길래 샀지.
[제] 그럼 세일 덕 톡톡히 보고 살아야지. 나도 최고급 샴푸를 가져왔는데 써볼래? 아보카도.
[낸] 머리까지 감을 생각은 없었는데.
[제] 아냐, 감는 게 좋아. 완전히 몸을 적셔서 땀을 빼고 나서, 몸을 말리고, 다시 한번 몸을 적시고. 이렇게 반복하는 게 사우나 비결이라구. 배가 고파질 때쯤 되면 저기 비올렛 아주머니께서 먹을걸 갖다 주실 테고. 그러다 노곤해지며 누워서 한잠 푹 자고 나면 몸이 거뜬해 지는 거야--- 이리 와서, 나 따라 해봐.
[낸] 가방 여기다 놔둬도 괜찮을까?
[제] 필요한 것만 꺼내고 옷이랑 같이 옷장에 넣어 줘. 자, 사우나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샤워를--- 이런, 빌어먹을, 샤워가 고장났댔지.
[비] 물 떠왔어. 제인. 사우나 실로 갖구 가서 머리 감아요.
[제] 한바탕 늘어졌다가 나와야지. 이번 주말 내내 기분 잡쳐 있었으니. 나이 설흔 다섯에 장학금에 목매고 사는 학생 주제니 나도 골 아픈 팔자야. 내보기엔 시원찮은 숙제에다가, 우리 애 샘이 자전거 도둑 맞았다고 펑펑 울어대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어 그 뿐이야? 일요일날 옛날 남자친구가 점심 먹으러 오겠다구 그래서 한 상 차려 놨었거든. 기다려두 하두 안 오길에 전화 해봤더니 뭐 그 작자 가라사대 내 약속을 까맣게 까먹고, 지 아버지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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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려고 했었다나?
[낸]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제] 신경 끊으라고 그랬지. 별로 차린 것도 없으니까--- 게다가 어차피 해야될 숙제도 많고--- 그리고 전화를 끊어버렸어. 한바탕 울었지.
[낸] 남자랑 같이 살던 때가 그립니?
[제] 아니, 적어도 지금까지 겪어온 사내들한텐 아무 미련도 없어요. 그래, 작년에 미국에 갔을 때 레즈비언들을 만나봤는데, 분위기들 아주 좋더라구. 그런데 문제는 난 사내가 더 좋다는데 에 있지.
[낸] 난 내가 뭘 바라는 지도 모르겠어. 있긴 있는지 몰라도, 너무 오랫동안 그게 뭔지 심각하게 따져본 일도 없는 게 사실이고. 어머, 내 정신 좀 봐. 유리병에 부어뒀던 식초를 그대로 두고 왔네.
[제] 뭐?
[낸] 병에 얼룩이 져있었거든. 유리병 속에 소금이랑 식초를 섞어 넣어 두면 그 안의 얼룩이 빠지거든, 너도 알걸?
[조] 거 알아두면 편하겠네.
(매도우 부인이 물통을 차지하고 앉는다. 제인과 낸시 사우나 실로 들어간다)
[매] (속옷을 물통에 넣으며) 단, 이리 와라! 샴푸 같은 거 필요도 없어. 돈 낭비란다. 이렇게 비누를 약간 속옷에 문지른 담에, 다시 이 속옷 비누거품을 젖은 머리에 대고 문지르면 일거양득이니까. 그담에 물 한 통만 끼얹으면 간단히 끝난다구. 하지만 여기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게 한결 낫긴 낫지. 내 지금 사는 집에 40년이나 살았지만, 더욱 물에는 손도 못 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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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다우. 어떻게 보면 그게 다행이기도 하지. 조시처럼 전기세 걱정도 필요 없고, 여기 와서 말동무들도 얻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우. 맘 같아선 매일 오고 싶어요.
[비] 정말 그러세요?
[매] 그렇다마다. 목욕탕 오는 날은 우리 두 식구 행삿 날인걸.
[단] 딴 날들은 지겨워 죽겠어.
[매] 시끄럽다. 이 에미가 얼마나 잘 돌봐주고 있냐?
[단] 그래도 지겨워.
[매] 얘, 저리가 좀 누우렴. 다리가 살결이 더 희어진 것 같네. (비올렛에게) 내 티눈 좀 빼주겠수? 발은 내 깨끗이 씻었어요. 때 다 벗기고, 물도 여러 번 끼얹었으니, 발 냄새는 안 날게유.
(비올렛 그녀 곁에 앉는다) 누구나 다 이웃 사촌인 건 아니지. 우리 집 좀 아래쪽에 사는 할망구 말이우. 그 할망구가 우리 단이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더라고 주둥아리를 놀리는 게 아니겠수? 술이 엉망진창 되게 취해 갖고는 마이크를 붙들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나. 그 못된 할망구 같으니라구. 우리애가 술집 들락댄다는 게 씨알머리가 있는 소리냐 말이야.
[단] (커튼 뒤에서 소리친다) 엄마 누가 날 훔쳐보고 있어!
[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비올렛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그 일이 터진 뒤로 쟨 사흘 동안이나 누워서 꼼짝 못했다우. 땀을 온몸에서 비 오듯 흘리면서. 거 틀림없이 경찰서에서 무슨 해꼬지를 당했구나 했지만, 누군가 귀뜸을 해주더라구. "경찰을 상대로 해봐야 아무 승산이 없어요. 죄다 똘똘 한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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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 갖구는, 당신 딸을 건드리다니 미쳤냐구 딱 잡아 뗄 테니까요. 의사가 준 약을 먹고는 계속 쟨 졸고만 앉아있구. 아, 쟤 아버지가 런던 경찰국에 한두 번 찾아가긴 했지. 담당자란 작자가 이러더래. "만일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귀하의 따님과 성적 접촉을 가졌다면, 그자는 엄중한 문책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곤 끝이야, 십몇 년 동안. 내 바램이 있다면 저 애가 어느 날 갑자기 의자에 편히 앉아 죽어있는걸 내 눈으로 보는 거라우. 쟨 나보다 먼저 죽어야 돼. 물론 보고 싶기야 하겠지만, 만일 내가 먼저 가면 저 가엾은걸 누가 돌봐주겠수? 아이구, 이번 주엔 왜 이렇게 몸이 찌뿌둥 한지 모르겠어. 밤잠 제대로 잔게 한 이틀이나 될까? 단, 저 애야 잠자는 게 최고의 낙이지만, 난 어제 밤만 해도 새벽 6시나 돼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우. (매도우 부인은 틀니를 혀로 밀어냈다 집어넣었다 하며 말을 잇는다. 누구 엿듣는 사람이 없을까 하여 좌우를 급히 살피기도 한다) 내가 이제나저제나 저 애한테 매달리는건 사랑 때문이기도 하고, 또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지. 어쨌든 난 쟤 에미잖수!
(낸시와 제인이 사우나 실에서 몸에 타월을 두른 채 나온다. 냉탕 옆에서 타월을 벗는다. 낸시는 그녀의 머리를 한 손으로 감아쥐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무릎 깊이까지 조심스레 걸어 내려간다. 갑자기 제인이 욕탕 속으로 뛰어 내리며 낸시의 팔목을 잡아끈다. 둘 다 목욕탕 안으로 넘어진다. 비명을 지르며 서로 상대방에게 물을 튀긴다. 비오렛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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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이봐요, 숙녀님들. 그렇게 소란을 피우면, 시청에서 나보고 사표를 쓰라고 할 꺼야!
(낸시와 제인은 물 밖으로 나온다. 비올렛이 그들에게 타월을 건네준다)
[낸] 아, 따뜻해!
[비] 마른 수건으로 골고루 문질러봐요.
[제] 돌아서.
(낸시가 등을 돌리고 제인이 문지른다) 팔을 들고! (낸시의 등과 그 아래쪽을 문지른다)
[낸] 기분이 좋아.
[제] 담배나 한 대 피자. 나도 아주 개운해졌어.
(그들은 나무 벤치에 앉아 불을 붙인다)
[조] (지나가며) 나도 냉탕에 뛰어 들어봤음 좋겠네.
[제] 별로 깊지 않아.
[조] 난 물이 무서워. 어려서 수영을 못 배웠거든. 접시 물만 봐도 오금이 저린 다니까.
[제] 나 오늘 새벽 네시까지 꼬박 밤샘하면서 숙제한 거 아니? 이슬람 역사에 대해서. 나답지 않지? 근데 사실 어젯밤 11시쯤만 해도 눈물만 글썽거리고 있었거든. 막막하더라구. 그러다가 이를 악물었지. "그래 제인, 해보는 거야! 아니? 내년 이맘때쯤이면 아랍어과를 수석 졸업하고, 증기선을 타고 나일강 상류를 여행하고 있을지? 중동 역사 전공 교수가 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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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난 어제밤 참 기가 막히는 꿈을 꿨는데. 누가 어떤 여자 애를 나한테 맡겼는데, 난 걜 빨래 건조기에 넣어놓고는 까맣게 잊어버린 거야. 어떤 여자가 와서 그 애가 죽었다고 얘기해 주기 전까지. 바싹 말라비틀어진 그 조그만 몸뚱아리를 바라볼 수가 없더라구. 그 애 모습을 조금이라도 가려볼려고 그 여자한테 부탁했어. 밝은 색 수건으로 그 애 몸을 감싸달라구. 그런데 그 여자 얘기가 그 애 엄마가 오늘 찾아오기로 되어 있으니까, 내가 직접 만나서 이 일을 얘기해야 된다는 거야. 그 애 엄마가 어떻게 나올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더군. 내 우물우물 변명하는 수밖에 없었어.
<"어쨌든 얜 원래 불구자였잖아요. 이 애 부모는 아마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몰아닥치더니 그 애를 덮으려던 수건을 날려 버렸어. 그 수건은 아주 커다란 진흙구덩이에 빠져 버리는 거야. 아주 커다랗고 깊은 진흙구덩이 한가운데에. 더 이상 그 애 몸을 감출 방도가 없었어. 이 모든게 내 책임이라는 두려움이 몰려왔어. 그때 그 여자는 날 탓하지 않았어. 기왕 일어난 일이니 피하지 말고 현실에 맞서야 한다면서. 제인 그 아이는 바로 나 자신이었구, 그 여자는 바로 너였어. 넌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힘을 줬어.
[제] 무슨 죄책감인데?
[매] (비올렛에게) 내 우리 집 뜰에서 국화를 좀 꺾어다가 집안에 들여놨다가 가져왔다우, 비올렛 주려구. 화단엔 벌레들이 끓어서 말이야. 벌레 먹은 꽃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지 않우. (신문지로 싼 꾸러미를 푼다)
[단] 엄만 꽃을 너무 너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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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정말 이쁘네요. 가서 물병에 담아 놔야겠네요.
[매] 얘, 넌 가서 몸무게 한번 더 달아봐라.
(단, 쿵쿵거리며 저울로 간다)
저 애만 남겨놓고 내 어떻게 눈을 감을지, 한번은 경찰관이 찾아 와서는, 단이 자기 옷을 갈가리 찢어놨다는 게 아니겠수. 쟤가 경찰관들 순찰시간이랑 장소를 훤히 알고 있다 곤 해두 십 육 년 동안이나 집밖에 나가본 일이 없는 애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있겠수. 결국 흐지부지 없던 얘기가 되 버렸지만, 하나는 확실 하다구. 내 딸애는 남자하네 먼저 치근덕거릴 애가 아니란 걸. 암, 이 에미한테까지도 키쓰 한번 해준 일이 없는 앤걸. 가정교육이 엄하기도 했구. 그런 내 딸애가 경찰관한테 덤벼들었다니. 그 말은 누가 믿겠수? 내 아들애한테도 궂은일 한번 안시키고 에미 노릇을 해온 나라우. 다 컸을 때까지도 석탄 심부름 한번 시키질 않았으니까. 이젠 그 아이도 자기 사업을 하고 있으니, 가끔 한번 우리랑 같이 저녁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있지. 누가 뭐래도 단은 제 여동생이니 저 앨 가엾게 여길 만도 하지 않겠수 그런데 아들녀석은 우리가 창피스러운 모양이야. 하지만 우리 단은 나쁜 애는 결코 아니우. 정신병원에 간 일이 있다고 해서 그걸 나쁜 거라고 할 수는 없지.
(단은 뒤편에 서서, 엄마의 말을 따라 한다)
[단] 오빤 나랑 차도 같이 마시구 해야돼. 난 신경에 문제가 있는 거 뿐이지. 나쁜 아이는 아냐. 아무한테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거든.
[매] 우리끼리 얘기지만,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아들녀석은 제 동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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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려 들지 않을거유. 일전에 내 은근히 떠봤더니 이러잖수. "안돼요. 걘 없어져야 해요. 어디 먼 곳으로 보내버려야 한다구요" 내 속으로 낳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정나미가 뚝 떨어지더군.
(매도우 부인이 침상 쪽으로 가고, 단이 그 뒤를 따른다)
단, 저쪽 구석에 가서 줄넘기를 하거라.
(단, 줄넘기를 시작한다. 줄넘기 노래를 부르며 하는데 줄이 플라스틱 가운데 부딪히며 찰싹 찰싹 하는 소리가 난다)
[단] 프랑스의 귀부인, 얼레꼴레리 키쓰 한번 못해봤대, 얼레 골레리 영국의 왕자님, 얼레꼴레리, 꼬리 없는 말을 탄대, 얼레꼴레리 세상만사 다 우습네, 얼레꼴레리
[낸] 내가 별안간 연락해서 깜짝 놀랬지?
[제] 네 결혼식 때 널 보고 처음이니까.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방년 19세의 어린양을 본 뒤로는. 최소한 난 스물 다섯까지는 버티지 않았겠니. 그때 내가 딱 한번 편지 보냈는데 받아보긴 했니?
[낸] 받았어. 답장은 안 보냈지만. 네가 내 남편 윌리암을 맘에 들어 할지 자신이 없었어.
[제] 아니면 네 남편이 과연 날 맘에 들어할지?
[낸] 그건 그인 널 거북하게 느꼈을 거야.
[제] 왜?
[낸] 넌 너무 직선적이니까! 참 내일 우리 올리버 시합 날이야. 걘 학교 럭비팀 주장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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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랑스러우시겠수!
[낸] 난 운동이라면 늘 낙제였잖니. 너 학교 때 세인트 힐다 여고랑 소프트볼 시합에서 내가 결정적인 순간에 공을 놓치는 바람에 졌던 거 생각나니? 시합 끝난 담에 탈의실에서 클로다 모리슨이 내 머리채를 끄잡아 흔들던 일도? 그땐 나도 정말 화가 나더라.
[제] 하지만 잘 참아내셨지.
[낸] 엄마가 언제나 "숙녀는 언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하구 가르치셨거든. 하여튼 그때 네가 날 구해준 거야.
[제] 난 널 첨 본 날부터 마음에 들었거든. 약해 보이면서도 악바리 같은데 가 있는 게.
[조] 이봐 제인. 넌 공부 많이 했다며. 내 문제 좀 해결해 줘. 글쎄 이틀 전에 그 자식이랑 여섯 번을 했는데, 이게 글쎄 매번 일이 끝날 때마다 목욕탕에 가서 샤워를 하더라구. 아니 몸에서 냄새가 나면 저나 씻을 일이지 내가 지 강아지인가? 나까지 밤새도록 침실에서 목욕탕으로 목욕탕에서 침실로 끌고 다니잖아. 개새끼, 그 새끼 댐에 쓸데없는 일로 녹초가 되 버렸어. 이게 정상적인 성생활이라고 배웠니?
[제] (웃으며) 아니, 지극히 정상적인 거라고 책에 쓰여있진 않은 것 같애.
(낸시는 당혹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조] 어젯밤엔 그 새끼 아주 죽여주더라구. 한참 둘이서 신나게 하는 중이고, 나도 점점 클라이막스에 올라가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 인간이 먼저 끝내버리더니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만!" 내 쏘아 부쳤지. "그럼 난 뭐야?" 그러고는 내가 일을 끝낼 때까지 한시간 동안 계속 몰아댔지. 머리를 들려고 하면 처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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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숨쉴 틈도 안주고 말야--- 아, 황홀했어. 글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통한 것처럼 짜릿 짜릿 했으니까--- 사실 난 지난 몇 달 동안 잘 안됐었거든. 이젠 날아갈 것처럼 개운해.
[매] 우리 고양이가 집나간지 이틀이나 됐는데 돌아오질 않는다우. 전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비]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여자 친구가 생겼나보죠.
[매] 아녜요. 그 녀석은 그런 일엔 관심이 없을거유--- 수술을 받았거든.
[단] (메아리) 수술을 받았거든.
[매] 혹시 다른 숫코양이들한테 시달리고 있을 진 모르지.
[단] (놀리듯) 엄만 얼굴색이 새하얘졌어!
(단, 웃어 제낀다. 매도우 부인은 딸을 무시하고 계속 말을 잇는다)
[매] 내 친구 하나도 기르던 숫코양이를 거세 수술 시켰는데, 마침 그 동네에 암코양이가 한 마리도 없었다는 거유. 그랬더니 그 동네 수코양이들이 이 녀석을 암컷으로 알고 덤벼들어 혼났다는 군. 가엾게 된 거지.
[낸] (불안한 듯 시계를 보며) 지금 몇 시지?
(빌의 그림자가 유리문에 어른거린다)
[빌] (무대 밖에서) 비올렛!
(단, 깜짝 놀라 일어난다)
[단] 경찰이다! 경찰이야!
[매] 가만히 그냥 누워 있거라, 얘야!
[비] 염려 말아, 빌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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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단에게) 알약은 두 알 먹고 다시 자거라. 너 땜에 이 에미도 놀랐잖니?
(비올렛 나간다)
[낸] (불안한 듯)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 (서두른다) 너무 늦었어.
[제] 좀 더 있다 가자, 얘. 난 별로 급할 게 없어. 우리 애 샘은 친구랑 영화 보러 갔을테구.
[낸] 안 돼, 난 할 일이 많아. 니나 저녁밥 차려줘야 되고, 막내 벤지도 엄마를 찾고 있을 거야.
[제] 관둬라, 얘. 벤지도 이제 제 몸 돌볼 나이야.
(수분 후, 비올렛 돌아온다)
[비] 저 녀석은 맨날 날 화나게 만든다니까. 전에도 보니까 지 일은 안하고 웬 계집애랑 뭘 처먹으면서 노닥거리고 있잖아. 그때 마침 매니저가 내려왔다가 수영장에 쌓여있는 수건더미를 보고는 정리하라는 거야. 그래 내 한마디했지. "이보세요 비렛트씨, 난 목욕탕 수건을 벌써 다 정리했어요. 그런데 저기 저렇게 퍼질러 앉아서 지 애인이랑 계란에 베이컨에 콩을 들고 계시는 빌 브래들리 나리 대신에 내가 왜 또 수영장 수건까지 정리해야 되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어림없는 수작들 마슈. 당신네 남정네들이 똘똘 뭉쳐서 덤벼도, 난 내일 외엔 손 하나 까딱 안할테니까!"
[매] 이번엔 대체 무슨 일이라우?
[비] 빌 녀석 얘기가 보일러 파이프가 다 삭아서, 일곱시에 뜨거운 물을 끊어버린대요.
[조] 말도 안돼. 그럼 죄다 얼어죽으란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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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끼 우리가 왜 여기 오는지 일구나 있어? 내 동태가 되고 싶었으면, 집에 있었지, 차비 들여가면서 여길 왜 와?
[비] 보일러가 너무 낡았다나봐요.
[매] 아니 쓰다보면 낡는거야 당연하지. 그렇다고 고칠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하고, 아예 꼭지를 잠가버리겠다는 거야? 늙은이, 여자뿐이라고 깔보는 거로구먼.
[단] (놀린다) 잘한다 엄마.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돼. 노인네들은 뭐든지 꽁하니 맘속에만 넣어두고 있거든. 그게 늙었단 증거래. 엄만 그럼 안 돼.
[매] 입다물고 줄넘기나 해라, 얘야. 누가 널보고 칭찬해 달랬니. 새벽 3시까지 퍼마신다니까. 내 남편 같았으면 벌써 요절을 내놨을 거예요. 내 보수과에 새 보일라를 신청하면 안되냐구 했더니, 그 녀석 낄낄대면서 "아이구, 아줌마 여길 다 뜯어고치려면 적어도 7만 5천 파운드는 들걸요"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내 한바탕 해줬죠. "얼마면 어떻다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세금을 내고 있는 거 아니냐 말야, 안 그래? 그놈의 시청 관리 놈들은 우리가 모욕한번 할려구 네놈들처럼 지중해 휴양지까지 날아가는 줄 알고 있는 거야?
(낸시, 그동안 바삐 옷을 입는다)
[장] 2장
(비올렛은 1장에서의 하얀 가운대신 깔끔한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있다.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낑낑거리며 새는 파이프를 수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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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무대 밖에서) 여자들은 다 한통속이란 말이야. 보통 땐 무서운 게 없는 것처럼 콧대를 높이 세우다가도, 쪼그만 일이 생기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여자 목소리로) 도와주세요, 도와줘요 빌 선생님! 파이프가 새요! 어서요! 망치 좀 가져와요! 이렇게 해봐요! 저렇게 해봐요! 여자들 숱하게 겪어봤지만, 결론은 하나밖에 없더라 이 말씀이야. "여자란 누워있을 때랑 뭔가 퍼먹고 있을 때만 행복한 동물이다" (침묵) 비올렛, 비올렛, 거기 있어요?
[비] 저리 꺼져, 빌. 나 바빠!
(비올렛은 라디오를 켠다. 매도우 부인과 단이 들어온다. 몸이 젖고 추워 보인다)
[매] 오늘 올 작정이 아니었는데, 몸이 또 영 안 좋아서, 게다가 우리단도 허리가 아프대니.
[단] 허리가 막 쑤셔. 물을 막 퍼냈거든.
[매] 넌 가만있어 얘야. 무슨 얘긴지 알 수도 없겠다. 빗물 새는걸 큰 양철 목욕통으로 받아놓게 했는데 그게 가득 차서 넘쳐흘렀지 뭐유. 그래서 저 애가 목욕통 빗물을 아래층까지 퍼 날랐다는 얘기지.
[단] 정원까지 나가 내다버렸어.
[매] 이층에는 싱크대가 없거든. 비가 하도 잘 새서 이층은 아예 쓰질 않는다우.
[단] 물을 퍼 날라야 할 때만 빼놓고.
[매] 조용히 하고 가서 옷이나 벗거라. 저 애가 오늘 아침엔 부엌에서 그 상상 속의 경찰관들하고 혼잣말로 열심히 떠들고 있더라구. 그 작자들한테 욕을 막 퍼부어 대는데 부엌 창문으로 저를 엿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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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나. 응큼한 수작을 부리려고 말이야. 보통 화를 내는 게 아니더라구. (비올렛에게) 그래도 난 쟤가 좋아. 아무한테도 쟬 빼앗기지 않을 거유, 암.
[단] (침상에서) 엄마, 오늘 간식은 뭐야?
[매] 머릿기름으로 금붕어나 두어 마리 튀겨먹자!
[단] 아이 징그러! 나 안 먹어!
[매] (속삭인다) 실은 양다리하고 튀김 감자가 있다우.
[비] (바닥에서 일어서며) 수리 끝! 이젠 저 빌 녀석 더 이상 파이프가 샌다는 핑계는 못 대겠지.
[매] (혀로 의치를 밀어냈다 집어넣었다 하며) 우리 집 벽난로도 이제 다 됐나봐. 굴뚝 청소를 했는데도 자꾸 불이 꺼지니. 그 통에 우리 요즘 보온물병을 끌어안고 잔다우. 사실 암만해도 옆집 사람들이 우리 굴뚝에 장난질을 하는 것 같아.
(조시, 뛰어 들어온다)
[조] 가버렸어, 그 새끼. 다 싸들고 날라버렸다구. 침대 밑에 양말 두 짝만 떨어져 있더라니까. 수건이랑 치약까지 죄다 집어 가는 바람에 난 오늘 아침 이빨도 못 닦았어. 개새끼, 열네 달 동안이나 한 침대에서 뒹굴었는데 그런 식으로 가버려? 내가 다니는 직장에 대해 들통이 나버렸어요. "난 너 같은 거랑은 같이 살수 없어, 넌 갈보야" 이러더니 아 그 자식이 내 옷을 발기발기 찢고는 날 막 두드려 패는 거예요. (스커트를 들어 올리고 멍 자국을 보인다) 그리곤 자기 짐을 꾸리기 시작하더군요. 그래 내가 "넌 독일산 똥개야" 그래줬죠. 그 말에 이게 입에 게거품을 물더니 내 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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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먹이더라구요. 아이구, 아파 죽겠네, 개새끼! 이 꼴로 어떻게 클럽엘 나가지? (다시 울기 시작한다)
[비] 그만 울고 안에 들어가서 사우나나 해.
[조] 나도 제대로 된 직장을 찾고, 스스로 독립해야 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기껏 기회가 와봐야, 다 뻔한 것들뿐인데. 하루종일 똑같은 짓만 반복해야 되는 것들뿐이라구요. 그런데 끼어 들었다간, 난 아마 돌아버릴거에요. 난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비] 요즘 같은 세상엔 그런 사람 찾기가 쉽지 않지.
[조] 그 자식, 그런 식으로 날라버릴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비] 이봐, 조시. 엎지러진 물 다시 주어 담을 수도 없잖아. 이젠 눈앞에 닥친 일들을 똑바로 봐야해.
[조] 마루에 깔았던 카페트까지 다 말아갖구 가버렸다구요 (울며) 비올렛, 나 이제 어떡하죠? (조시는 털썩 주저앉아 비올렛의 무릎에 자신의 머리를 묻는다)
[비] 우선 옷 벗고 사우나를 하면서 푹 쉬어.
[조] 막판엔 무릎까지 꿇고 매달렸드랬어요. 앞으론 욕도 안하고, 뭐든 시키는대로 하겠다구. 근데 그때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면서 목이 꽉 잠겨버리더라구요. 내가 비참해지고. 내 다른 직장을 구하겠다고 싹싹 비니까, 그 자식 하는 말이 "넌 집구석이나 박혀있어" 이러더라구요--- 그래 내가 "돈은 거저 생기나" 그랬더니 개새끼, 거지한테 적선하듯 이십 파운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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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에 던져버리곤 휑하니 가버렸어요. 이 팔에 멍든 거 좀 보세요. 어떻게나 기막히고, 분한지 아픈 줄도 모르고 벽을 막 두들겨댔죠.
[비] (조시의 손목을 잡으며) 실컷 울어버려. 그러고 나면 시원해질 거야. 그리고 다시 새 출발하는 거야.
[조] 그런데 문제는, 난 아직까지도 뭣보다 제리가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거예요. 내게 돌아와 주기를요. 그때까진 더 나은 일을 찾아봐야겠죠. 굶어죽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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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조시는 거울 앞에서 눈썹을 뽑고 있다)
[조] 누가 뭐래도 이 몸은 키쓰와 애무를 받아야지, 주먹과 발길질 받을 몸이 아니시지. 제리 그자식도 내 몸매가 좀 드러나기라도 하면 "좀 가리고 다닐 수 없어" 안하곤 못 배기니까. 멍청한 사내놈들 독점욕이라는 거죠. 근데 걱정이에요. 왼쪽 젖꼭지 밑에 뾰두락지가 생겨서. 나 토플리스 크럽에 새로 취직했거든요. 아랫도리에 새빨간 헝겊조각 하나 붙이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안 입는데. 거기 쇼를 오후에 하기 망정이지, 제리가 또 이일을 눈치채면 이번엔 내 머리를 욕조 속에 처박고 물 고문이라도 하러 들거에요. 하여튼 참 운 좋게 새 직장 얻은거에요! 돈이 한참 필요할 때니까. 근데 한쪽으론 또 새 걱정이 생겨요. 젊은 기집애들한테 손님 다 뺏겨 버릴까봐. 젖꼭지 밑에 뾰두락지 난거 들키면 그럴 거 아녜요? 암만해도 요걸 살짝 가릴 궁리를 해야지. 그래 살색 비단 장식을 살짝 붙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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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돈푼 꽤 들텐데.
[조] 그렇겠죠. 하지만 몸치장에 돈 아끼면 안돼요. 최고급 유행으로 차려 입고 길에 나가야난 진면목이 드러나는걸요.
[비] 우리 딸년이랑 비슷한 소릴 하는군. 걘 "엄만 구식이야" 하고 면박 주는 게 일이라니까. 하두 멋 부리는걸 좋아해서 이젠 크리스마스 저녁에도 난 차 한잔 못 마시고, 펀치인지 뭔지나 듣고 우아한 척하고 다녀야 된다구. 난 상류사회 사람들 흉내, 어색해서 못 내겠어. 그 뿐이야. 걘 내 옷차림에도 일일이 간섭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구.
[조] 그래도 아줌마 애들은 말썽은 안 피잖아요. 소년원에 들어간 애들도 없구, 그래도 아줌마는 복 받은 거예요.
[비] 아이넷 키우는 덴 복만 갖구는 안되더라구. 걔들 키우느라 정말 피눈물날 정도로 마음 고생도 많이 했지. 알겠지만 애들이 어디 밥만 먹여 준다고 착하게 자라나? 혼내고, 가르쳐야 하나 하나 겨우 깨우치지. 브라이언 녀석이 어렸을 때, 잠자고 있는 지 이모 결혼반지를 몰래 훔친 일도 있었어. 그 녀석한테 이랬지. "이놈, 반지 훔친 거 네놈 짓이지? 지금 당장 내놓을래, 파출소에 끌려갈래?" 그랬더니 내 말이 그냥 엄포가 아니란 걸 눈치채고는, 잘못했다며 앙하고 울어버리는 거야. 그 울음소리 아마 100미터 떨어진데 서도 들렸을걸.
[조] 내 아들녀석은, 누가 지 애비 자식 아니랠까봐 열 다섯에 일찌감치 소년원에 들어앉았죠. 낸시 언니 애들은 어때?
[낸] 우리 큰애는 곧 대학에 다닐 거야. 딸애는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있고 막내는 국민학생이고.
[조] 걱정 하나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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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꼭 그렇지 않어.
[조] 듣기엔 모범적으로 자상한 엄마시던 데. 일찍 자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서 애들 아침이랑 도시락 챙겨주는 진짜 엄마 말야.
[낸] 그렇지. (갑자기 생각에 잠기며) 그런데 어떨 때는 화가 나기도 해.
[조] 정말?
[낸] 한번도 입밖에 낸 적은 없는데--- 한번은 온 가족이 내 생일을 깜빡 잊고 지나쳐버린 일이 있었어. 그때 내가 슬쩍 눈치를 줄 수도 있었지만 하도 속이 상해서 하루종일 나 혼자 끙끙 앓기만 했지. 속으로만 애들한테 욕을 막 하면서 "그래, 엄마 생일도 기억 못하는 니들이 이담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니?"
(조시 웃는다)
[비] 난 애들에게 한번도 져 본적이 없지. 자식들이 부모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게 놔두질 않았어. 그래 노니까 고래고래 악쓰며 야단 처댈 일도 별로 안 생기더군. 한번 안 된다 하면 지 엄마를 꺾을 수 없다는 걸 잘들 알고 있었으니까.
[조] 하여튼 애들을 정말 아껴주는 남자랑 같이 애를 키우면 재미있을 거야--- 내 도와 드릴게요. (수건을 챙긴다)
[비] 우리 남편이 주장하는 건 이거야 "난 가정에서 겉돌 수는 없다" 그 말 그대로 반평생을 함께 살아왔지. 집안 일을 미주알 고주알 일일이 참견하고 다니니까. 심지어 기저귀감 까지 같이 고르러 다녔어요. 또 내가 애들 밥 준비하면, 한쪽 옆에서 애들 옷을 갈아 입히고--- (섹시하게) --- 밤이면 우린 아직도 황홀한 시간을 즐긴다구.
[조] 우리애 쟈니도 가옥 대신 대학을 갔어야 하는건데.
[비] 내가 여길 직장으로 잡았을 때, 우리 어머닌 펄쩍 뛰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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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살아 계셨을 때니까, 이러시더군. "얘, 망칙하게 빨가벗이 몸뚱이들만 왔다갔다하는데서 일하겠단 거냐? 아서라" 하지만 직접 여기 와보시고는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지.
[조] 나도 아줌마 같았더라면, 우리 애도 그 모양 그 꼴이 되진 않았을 텐데.
[비] 내 여기서 일 시작한 게 벌써 18년 전인데, 그땐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면서 십 파운드씩 받았지. 꽤 괜찮은 벌이였어. 그전엔 의복 공장에서 바느질일을 했는데,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빠서 징징 울면서 손을 놀릴 지경이었어. 게다가 웬 도둑 년은 그렇게 많은지, 언젠간 단추가 여섯 상자나 사라져 버렸는데도, 십장 녀석은 난리가 일어날까 봐 입도 뻥긋 못하더군. 여자들 입이 무서웠나봐.
[조] 그런 놈들이 뒤로 호박씨 까는 거예요.
(제인, 사우나 실에서 나와 냉탕에 뛰어 든다)
낸시 언니, 남편 부자였어?
[낸] 신혼 초에는 우리 아주 어려웠어. 윌리엄이 아직 변호사 개업을 하지 못했던 때니까. 우리 아버진 검사이셨는데, 우리 형제가 15살만 되면 은행구좌를 만들어 주고는 금전출납부에 수입, 지출을 꼭 적어놓게 하셨지. 한 푼이라도 예상 밖의 지출이 있는 달은 톡톡히 혼이 났어. 그 경험 덕에 신혼시절 살림을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몰라.
(제인, 냉탕에서 나온다. 젖은 채로 머리를 문지른다)
[제] 은행구좌 얘긴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마라 얘. 우리 아버지가 은행장이셨잖니. 내 결혼 직후에 아버진 몸져누우셨거든. 내 결혼이 그 원인이었는지 몰라. 하여튼 우리 부부가 똥차를 끌고 아버지를 뵈러 갔었지. 그때 임종직전 이셨는데, 내가 침대 머리맡으로 발꿈치를 들고 가만히 다가갔더니,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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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운을 내서 이러시더군. "얘, 너희들 차 보험에 들었냐? 세금은 냈구? 그런 후에 영원히 의식을 잃으셨지.
[조] (낸시에게) 그럼 한번도 빚을 져본 일이 없겠네?
[낸] 그럼!
[조] (황홀해 하며) 야, 그거 죽이네! 빚 안 지고 사는 사람 내 평생 처음 봤어!
(잠시 침묵, 낸시, 용기를 내어 말한다)
[낸] 남편이랑 나 헤어졌어.
[조] 어머, 그래.
[낸] 지난 여름이었어. 우린 함께 외식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 초저녁부터 아끼던 외출복을 꺼내 정성껏 다려놓고 그일 기다리고 있었어. 생각보다 좀 늦게 윌리엄이 돌아왔어. 이층으로 올라오더니 저만큼 침대 끝에 걸터앉더군. 창밖에는 목련꽃이 한창 활짝 피어있었지. 그이가 말을 꺼냈어. "내겐 사랑하는 다른 여자가 있어. 당신과 헤어지고 싶어" 이십 이년의 결혼생활, 그리고 그 사람은 그 날밤 그렇게 떠나버린 거야. 난 문 앞에 걸린 외출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생각해봤어.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고.
[조] 거봐, 인생이란 서로 등쳐먹기 바쁘다가 끝장나는 거야. 남편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들 때문에 희생될 필요는 눈곱만큼도 없다구.
[낸] 그래도 난 그이를 행복하게 해줄려고 노력했어.
[조] 그래, 그 작자 꺼져버린 뒤에 새로 하나 건지긴 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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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열두 살짜리 아들이랑 같이 있으면서 "하나 건지기"란 불가능해.
[조] 왜?
[낸] 애한테 상처를 주게 될 테니까.
[조] 맙소사. 그렇게 따질 것 다 따지면 이 복잡하고 골 아픈 세상에 어떻게 사누?
(낸시, 지갑을 뒤져 사진을 몇 장 꺼내 조시에게 건네준다)
[낸] 우리 집이야!
[조] 야, 집 한번 기똥차다. 나도 이런데 살아봤음. 이 창문들 좀 봐. 방도 많겠는데.
[낸] 필요 이상으로.
[조] 옛날에 남편이랑 같이 살았을 땐 우린 박물관에서 살았지. 남편이 거기 관리인이었거든. 다 한물간 가구들이랑 집이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그럴 듯 했어. 하루 왼종일 그 고문들을 닦고 광내야 한다는 것만 빼놓곤 말야. (광내는 흉내를 낸다) 그런데 말이지 희한한 생각이 들더라구. 나도 이 골동품들처럼 가만히 앉아서 돈을 긁어 모을 수도 있겠더란 말이야.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박물관에 누드로 길게 누워 있는 거야. 이렇게. 그럼 사람들이 날 보러 입장료 내면서 개떼처럼 모여들 거 아니냐구. 그까짓 시들어빠진 골동품들보다야, 백옥 같은 내 몸매가 한결 싱싱하잖아, 안 그래?
(그녀는 황홀한 듯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본다. 제인은 침상에 누워 잠들어 있다. 낸시가 사우나로 향할 때 조시가 불러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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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낸시 언니, 내 목덜미 위에 난 게 혹시 여드름인지 봐줄래?
[낸] (살펴보며) 글쎄, 아무것도 없는데.
[조] 언니, 거울 한번 봐봐.
[낸] (눈을 감으며) 괴로워, 내 얼굴 보면!
[조] 아니 언니얼굴이 어때서. 남자들이 줄줄 쫓아다니게 생겼는데. 자, 봐봐, 잘 봐. (낸시 거울을 본다) 또 하나 언니 매력 포인트는 키가 늘씬하다는 거야. 난 작아서 꼭 하이힐을 신구 다녀야 되거든. 얼마나 신경질 나는지 알아.
[낸] (자기 모습을 보며) 말대가리 같잖아!
[조] 집에 쓰다 남은 오이크림이 좀 있는데, 언니 눈 아래 잔주름 펴는데 효과가 있겠다. 다음에 올 때 꼭 갖다줄게. 그렇다고 뭐 꼭 크림을 써야만 될 정도는 아니야. 아유, 내 주름살 걱정이나 해야지. (눈 밑 주름을 살핀다)
[낸] (돌아서 조시를 보며) 고마워. 허지만 지금 기분 같아선 오이크림 이상의 뭔가가 필요 할거 같애.
[조] 그래? 그럼 그게 뭐든 지간에 손에 거머줘버려. 난 내가 하고 싶어 안달이 난걸 못할 때 제일 비참해지더라구.
[낸] (재미 있다는 듯) 그럼 조시는 언제나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나보지?
[조]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대개 그렇다는 얘기지.
[제]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켠다) 무슨 얘기들하고 있어? 아이, 잠 한번 잘 잤다.
[낸] 조시한테 바라는 게 뭔지 물어 봤드랬어.
[제] 바라는 게 뭐니, 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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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갑작스레 콧노래를 부르며 냉탕 옆에 눕는다)
[낸] 나 갓 결혼했을 때 윌리엄이 날 누드로 만들어 놓고는 걸어 다녀보라. 그랬지. 내 몸이 그때까지 봐온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구. 칭찬하면서--- 내가 부끄럽다는데도 사진을 수백 장은 찍어댔을거야. (잠시 사이) 정말 우습잖아? 내 얼굴을 비쳐보고 있는데도, 저 거울 속의 여자는 남의 얼굴로 생소하게 날 마주보고 있으니.
(제인, 팔을 둘러 낸시를 감싸고는 팔을 마주 댄다. 계속 거울을 응시하고 있다)
[조] (계속 냉탕 옆에 누워) 책임감 어쩌구 하는 건 내겐 가소롭게 느껴져, 아, 하나 잘 낚으면 평생 팔자를 고치게 되는데 왜 내가 사서 고생을 해. 오, 또 몸이 뜨거워지네. 난 지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강가에 누워있다. 이때 하얀 양복을 입은 멋진 남자가 다가와 내 발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는 발가락 끝에 입을 맞춘다. 그의 입술이 차츰 내 몸위 로 미끄러져 올라오고---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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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낸시, 제인, 비올렛이 망치를 들고 등장. 보일러를 직접 점검하고들 있다.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들)
[낸] 새기는커녕 그런 흔적도 없잖아.
[제] 물탱크도 아무 위험 없구!
[비] 빌 녀석 되지도 않는 소리를 꾸며낸 거야. 남자들이 여길 쓰는 날은 아홉시까지 스팀을 틀어놔도 아무도 샌다는 소리가 없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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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접 시청 보수과에 가보든지 해야돼.
(단이 뛰어 들어온다)
[단] 엄마가 아파. 나보고 혼자 가래. 그래서 나 혼자 왔어.
[제] 잘했다.
[비] 엄마 어디가 편찮으시대니?
[단] 막 토했어! 분수처럼 막 쏟아졌어. 내가 얼른 가서 커다란 대야를 갖다줬지.
[낸] 언제 그랬니?
[단] 지난번 주부터 안 좋았는데 어제가 최고로 심했어. 어젯밤에 같이 잘려고 할 때 불도 흐릿한데 엄마가 이러는 거야. "우린 모두 언젠가 죽게 되어있지. 때가 서로 틀릴 뿐이야"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는 스커트 자락을 들어 올려 눈물을 닦는다)
[낸] 단, 울지 말아.
[비] 실컷 울게 내버려둬--- (단을 침상에 데려간다) 자, 옷 벗고 침상에 눕거라. 그리고 시원하게 울어버려--- 엄만 지금 주무시니?
[단] 날보고 혼자 목욕 가랬어. 혼자 오기 싫은데, 엄마가 이랬어. "내 옆에서 어물대지 말고 빨리 가라. 비올렛 아줌마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줄 테니"
[제] (단에게) 나랑 사우나 같이할까, 지금 들어갈 건데?
[단] (훌쩍거리며) 난 좀 더 울고 싶어.
[제] 그래, 울기엔 사우나 실이 최고로 좋아. 엄마 병원에 다녀오셨니?
[단] 아니, 그대신 언니가 왔어--- (다시 울음을 터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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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나보고 게을러빠진 화냥년 이랬어. 엄만 병이 낫지 않을거구, 그럼 난 먼 데로 가야만 될 거래--- 또 내가 통조림 잘 못 딴다구, 현관에서 우유 안 들여왔다구 막 화를 내구--- 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지?
(그녀는 더 울려고 침상으로 간다. 비올렛이 그녀를 돌본다. 조시가 정장을 하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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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내 얼굴 꼴 좀 봐! (선글라스를 벗고 멍든 얼굴을 보인다) 그 개새끼가 어젯밤 이래놨어. 술을 처마시고 있다가, 내 모가지를 팔로 감더니 이러는 거야. "널 죽여버리겠어" "육갑 떨고 있네" 내가 쏴 붙였지. "소리 없이 보내주지" 그 자식이 으스스하게 좍 깔린 목통으로 이러는 거야. "이거 못 놔"하고 악을 쓰긴 했지만, 속으론 은근히 캥기더라구. 그 개새끼 날 계속 밀어붙이는 거야. "침대로 올라가" 그래서 내가 "싫어, 너 같은 잡놈이랑은 더 이상 안 해"하구 발악을 했어. 그 개새끼 "짝"하고 한 대 올려붙이더라구. 그담엔 뭐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도 안나--- 이 일 꼬투리는 내가 새 드레스를 산 거 때문에 시작된 거야. "네까짓게 직장인가 뭔가 다닌다구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년인 걸로 착각 하냐, 하!하!하!--- " "네가 미스 유니버스라도 된 줄 아는 거냐, 응?" 놈팽이 새끼, 별 볼 일도 없는 자존심 타령을 그런 식으로 하더라구. 아이, 귀때기야, 왜 날 맨날 왼쪽 뺨따구만 얻어터지지?
[낸] 도대체 그런 남자를 왜 다시 받아들였어?
[조] 우리 엄마가 맨날 하던 말이 있지. "더러운 물도 세숫물도 쓰고 난 담에 버려라" (아무도 반응이 없다 화가 나서) 고지서 날라드는 건 어떡하란 말야? 여기계신 여자 분들께는 별 문제 아니시겠지. 모두들 사내새끼 없이도 살 여유들이 있으시니까. 난 그럴 수가 없어! 난 열다섯 살 때부터 새벽에 엄마랑 청소를 다니기 시작했어. 열 여섯에 임신을 했어--- 댁들께선 책상머리에 앉아 계실 때 말이야. (침묵) 난 가난, 이제 신물이 나, 이가 갈려. 내가 요새 몇 시까지 일하는 줄 알아? 주말에도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 7시까지 보트 위에서 웨이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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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을 했다구. 삼십 파운드 주더군.
[낸] 많이 받았네.
[조] 많은 것도 아냐. 엿같이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지난주까지 고지서 해결할 만큼은 번 거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의자에 앉은 채로 떨어져 버렸어. 그게 바로 일요일날이었는데, 오늘 아침 문 앞에 또 뭐가 떨어져 있었는지 알아? 또 다른 좆같은 고지서야. 이번엔 월부 텔레비전 값. 정말 고지서 더미에 깔려서 숨막혀 뒈질 지경이야. 나 혼자 다 감당할래니까. 돌아가실 지경이라구--- 그 자식이라도 없으면 빚더미에서 헤어날 길이 없잖아.
(모두 조용하다. 단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잠시 침묵) 바로 그 일요일 오후엔 너무 피곤해서 찢어진 청바지랑 되는 대로 걸치고 있었거든. 근데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아? 제리가 쑥 들어서더라구. (제리 흉내) "너 꼴불견이구나. 이제 다 포기하고 막 가는 모양이시군. 그런 꼬락서니를 하고 있다간, 어느 한 놈 널 거들떠보지도 않을텐데. "아, 숨이 콱 막히더라구. 숨도 안 쉬어지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혼자 버텨보겠다구 몸부림치는 게 무슨 가치가 있나?" (비올렛에게) 아무 소용없는 발버둥이란 답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제리를 다시 받아들였죠. "언젠간 널 죽여버리고 말 꺼야" 이런 협박을 들으면서, 우린 다시 침대 속에서 그 짓을 했어요. 물론 아무 느낌도 오지 않았죠. 그 자식 가버린 담엔 애꿎은 시트를 씹으면서 펑펑 울어버렸어요. 그 자식 가면서 점잖게 타이르더군요. "책, 책 좀 읽어봐" "난 책만 들었다 하면 졸음이 온단 말야. 책은 무슨 빌어먹을 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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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 나한텐 책이 아니라 신나는 게 필요하다구, 살아있는 게!" 이렇게 뒤통수에 대고 소리지르긴 했지만, 나도 뭔가 큰일을 해낸 굉장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건 사실이죠. 지금 이 꼬락서니로야 내 묘비엔 기껏 "잠자리에선 끝내준 여인, 여기 잠자리를 마련하다" 이런 정도나 쓰이겠죠. 이렇게 끝나버리긴 정말 싫어요, 나도.
[비] 그 정도도 못되고 끝나버린 여자들도 얼마나 많다구.
(침묵, 스팀이 나가버린다)
[제] 스팀이 나가버렸네. 빌어먹을, 또야. (입구 쪽으로 간다) 빌! 스팀이 안 들어오잖아.
(잠시 후, 빌이 외치는 소리)
[빌] (무대 밖) 파이프가 낡았다니까요. 지금 스팀을 계속 내보내는 건 위험하다구요.
[비] (소리쳐 대꾸한다) 어디 있다 만나서 한번 나랑 따져보자구. (돌아온다) 나쁜 놈, 여기 보수는 모두 저 녀석 책임이거든. 여긴 서민들의 휴식처지, 똥통이 아니란 말야!
(빌의 그림자, 문 앞에 어른거린다)
[빌] (무대 밖) 잠깐 올라오시래요! 지배인이 좀 뵙자구요.
[비] 참, 이 꼴로 나가봐야겠군. 지들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들이라구. (나간다)
[낸] 대체 남자들은 왜들 저럴까?
[제] 남자란 종자들은 선천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있거든. 틈만 나면 호박씨만 까고, 전화한다고 해놓고 까먹고, 온다구 해놓고는 종무소식이고, 그렇게 멋대로 되는 대로 사는 게 사내자식들 속성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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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그 동물들 주둥이만 열었다하면 쏟아져 나오느니 거짓말 뿐이구.
[제] 사내놈들 그런 짓거리를 눈감아 줘선 안 돼. 못 본체하고 넘기는 건 우리들 잘못이야.
[낸] 그런데 왜, 뭐 때문에 우린 남자들 잘못을 눈감아주지?
[조] 그것들, 자기네들이 꽤나 대단한 존재들인 줄 안다니까!
[제] (경멸 적으로) 엄마들부터 고추 달린 자식들한테나 모든걸 다 바치려 드니.
[낸] 맞아--- 그건 우리부터도 그랬어--- 우리 첫애가 태어났을 때, 간호원이 이러더군. "보세요, 아줌마 고추 에요!" 그 말을 듣고 짜릿한 흥분을 느꼈던 일이 아직껏 생생해. "고추 사내 아이" 한 주일 내내 이 말을 혼자 몇 번이고 중얼거렸지. 그때마다 온몸이 짜릿했고, 난 비록 여자지만 내 몸으로 사내아이를 낳았단 사실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으로 여겨졌으니까.
[제] 얘들아, 우린 여자들 역시 진짜 남자들만큼이나 중요한 존재란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해. 우린 남자들보다 더 잘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못나지도 않은 동등한 존재라구! 그런데 이건 꼭 여자들은 남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구걸하는 당연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잖아.
[조] (갑자기 부드러워지며) 음, 그래도 자기 첫 번째 애를 갖는다는 건 어떤 여자건 흥분이 안될 수 없어. 안 그래?
[낸] 그래--- 나도 잠시동안은 진정한 여자의 행복 같은걸 느꼈으니까. --- 하지만 결혼생활 대부분은 난 그저 남편이 바라는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지--- 침대에서까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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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나도 내가 원하는걸 요구할 수 있는 거란 생각조차 못해봤어.
[조] 그럼 남편한테 한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단 말야?
[낸] 한번 시도는 해봤지. 그랬더니 짜증내면서 이러더군. "여보, 이따가 얘기합시다. 난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조] 그런 식으로 자꾸 양보하다간 끝이 없는 거야. 그럴 때 이렇게 악을 써 줘야돼. "야, 내가 니 종이냐? 맨날 니 비위만 맞춰줘야 되게? 넌 내 남편이고 , 난 니 마누라야. 니 눈치만 살펴야 되는 강아지 새끼가 아니란 말이야!" 난 내 남편을 그렇게 볶아댔거든. 우린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치고 받다가도 금방 풀어졌었어. 그인 날 꼭 껴안으면서 이러는 거야. "사랑해 조시" --- 그이가 보석강도 범으로 십 오 년형만 받지 않았어도, 내 팔자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진 않았을 텐데.
[제] 난 솔직히 대부분의 남자들이란 신경 쓸 가치조차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해.
[조] 하지만 남자들 없이 무슨 사는 낙이 있어, 아냐?
[낸] 우리 막내 벤지도 짐을 전부 싸들고 학교로 오늘 떠나버렸어. 그 큰 트렁크를 질질 끌면서.
[제] 얘, 왜 진작 얘기 안 했니?
[조] 괜찮아? 아들애가 가버릴까 봐 겁내고 있었잖아?
[낸] 희한한 일이지만, 아무렇지도 않아. 이젠 마치 사막에 홀로 남은 것 같긴 하지만, 마음은 도리어 평안해졌어. 평화로운 사막--- 나와--- 그리고 니나만이 있는.
[조] 그렇게 체념하는 게 속편하지. 잘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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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 가운 벗고 사우나 해도 돼?
[제] (낸시 곁으로 가서 앉는다) 만약 우리 샘도 떠나버린다면 내 기분이 어떨지 나도 자신이 없어. 아마 한동안은 절망감 같은 게 들 꺼야.
[조] 언니들, 그렇게 김빠지는 얘긴 그만하구, 저리 들어가서 나 머리 감는 거나 좀 도와줘.
[단] 난 몸무게 달아볼까?
[조] 너도 그거 그만두고, 사우나 실에나 들어와라. 그 가운인지 뭔지 벗어 던져버리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오늘밤도 내 곁에 있어줘요--- "
(비올렛 등장, 어두운 표정. 대화가 중단된다. 비올렛, 의자로 가 앉는다)
비올렛, 무슨 일 있어요?
[단] 비올렛 아줌마, 왜 그래?
[비] 십 팔 년 근무했는데--- 겨우 육 주일 말미를 주겠다니---
[제] 무슨 얘기 에요?
[비] 십 팔 년 동안 여기서 모두 함께 지냈는데---
[낸] 무슨 일이에요?
[비] 우리 목욕탕을 폐쇄하기로 했대!
[제] 개새끼들!
[비] 육 주 내로 목욕탕 문을 닫아야 돼. (비올렛,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는 운다)
[조] (따라간다) 비올렛, 기운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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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나한테는 상의 한번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야!
[낸] 이유가 뭐래요?
[비] 지배인이 그러는데 이 자리에다 시립도서관을 세운다는 거야. 그래 내가 지난주에만도 목욕탕 손님이 백설은 세 명이나 됐다고 그랬지. 근데 그 작자 얘기가 그 정도론 부족하다는 거야. 도대체 1960년에는 충분했던 숫자가 왜 지금은 부족해졌다는 거야? 시의회에서 이 숫자를 근거로, 시민들은 공중목욕탕보다는 도서관을 더 원한다는 결론을 내렸대. 이 공중목욕탕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거야.
[조] 불알을 떼버릴 새끼들. 지들 눈깔엔 우린 시민으로 안보이나? 이젠 어디 가서 제리 자식에 대한 하소연을 하란 말야? 아니 그보다도 한겨울에 집에 죽치고 있다간 동태가 되 버릴텐데.
[단] 그럼 엄마랑 나랑 다시는 여기 올 수 없단 말야?
[비] 책상 앞에서 앉아서 숫자놀음만 하고 있는 그 작자들이 도대체 이 목욕탕에 대해서 뭘 알고 있단 말야? 그 의원이란 놈들 죄다 합친 것보다도 나 혼자서 여기 일은 더 잘 알고 있다구. 누가 찾아오고, 왜 찾아오는지--- 눈먼 노인네들은 어떡하지? 매오두 부인하고 단은? 앞으로 그 사람들은 어쩌란 얘기야? --- 이건 당국의 기만술책이란 거야! 이따위 속임수에는 지지 않을 거야!
(단, 비로소 사태를 직감한다. 큰 비명을 지른 후에, 큰 소리로 엉엉 울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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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막
[장] 1장
(매도우 부인은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은 채로 침상에 누워 있다. 다음과 같은 구호들이 욕탕 여기저기 붙어있다. "공중탕을 사수하자!" "대책 없는 욕탕폐쇄, 서민복지 보장하라!" "우리를 얼간이로 아는 거냐? -조시-" 지방자치가 개판 정치인가? 지역구민 봉사 실현하라!" "물가정책으로 기만하더니, 이제 목욕탕마저 빼앗는가?" "여기서 살을 빼지 못하면, 초콜렛 못 먹는다 -단-" 낸시와 조시, 조그만 수건으로 몸을 두르고는 다리를 꼬고 무대 앞쪽에 앉아 있다. 웃음)
[낸] (웃음을 참으며) 그래서? 어떻게 됐어?
[조] 그 치 연극배우라 말투는 햄릿이라도 되는 것 같지만, 속은 아직 새파란 애숭이더라고. 보기 좋게 걸려들었지 뭐--- 제리가 이제 가버렸대니까. 몸이 바짝 달아서 그 날밤으로 우리 집에 오겠단 거야. 저녁식사 핑계 대면서. 그래서 난 속이 환히 비치는 검정 드레스에, 목에는 검정 스카프를 두르고, 금목걸이로 액센트를 줬지. 그리고는 무드 있게 촛불을 부드럽게 켰지.
[낸] (웃으며) 조시!
[조] 한번 그냥 해본 거야! 그런데 고 녀석 포도주를 따를 생각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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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멍하니 바라보고 있더라구. 깜찍하게 귀여운 눈으로. 그 순간 난 벌써 감을 잡았지. 발딱 일어나면서 손을 내밀고 이래버렸지. "식탁에서 가서 식사나 할까?" 그 다음날 그 녀석 몸이 바싹 달아 가지고 또 클럽엘 찾아왔겠지. 그땐 내 튕겨 버렸어. "가서 젖이나 더 먹고 와"
[낸] 그런 방법은 어떻게 생각해 냈어, 조시?
[조] 젊은애들은 야생마 같거든. 몸이 근질거려서 못 견딜 땐 그런 애들을 꼬시는 게 최고야. 만약 맘에 들면, 해버리는 거야. 죄책감 나부랭이는 빨래 통에나 집어던져 버려. 남자들 재미볼 때 어디 예펜네들한테 미안한 마음이라도 갖는 줄 알아? 여자들도 똑같이 가끔 기분 풀어버려야 할 때가 있는거라구--- 안 그랬단 늙기도 전에 할망구가 되어 버리니까.
[낸] (생각하며) 일리 있는 얘기야--- 네가 부럽다, 얘!
[매] (커텐 뒤에서) 비올렛! (커텐을 걷는다)
[비] 네. 왜 그러세요!
[매] 미안하지만 내 등 좀 두들겨 주겠수? 원 어찌나 몸이 결리는지, 차라리 집에 있을걸 그랬나봐.
[비] 이 비 오는 날 에요? 그 지붕 새는 집에 계시다간 신경통이 더 도지실 꺼 에요. 눈감고 살살 엎드리세요. 시원하게 안마해 드릴게요. 좀 있다가 샌드위치랑 차도 갖다드릴게요.
[매] 우리 버니스가 오늘은 내 수발을 들러 오질 못한다우. 주인집에서 종일 강아지를 돌봐야 된다나.
[단] 언니는 날보고 내 꺼만 아는 돼지랬어! 내 방 문을 쾅 닫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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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보고 돼지랬단 말야. 내가 왜 돼지야? 나도 집안일 많이 하구 있다구. 버니스 언닌 너무해, 내 언니면서 말야.
(조시, 비올렛에게 새 코트를 보여준다)
[조] 첨엔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에이 하고 월부로 사버렸어요. 너무 갖고 싶은걸 어떡해.
[비] 정말 고급 같은데. (단에게) 어때, 참 좋지?
[조] (비올렛에게) 난 한번 갖고 싶다하면, 손에 넣을 때까진 몸살이 나서 못 견딘다니까. 손안에 이렇게 쥐고 나야 맘이 편안해져요.
[비] 하지만 그것도 돈이 있어야 되는 일이라구.
[조] 그러니 난 재수 좋은 여자죠. 즐기면서 돈을 만질 수 있으니까.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금요일 밤엔 정말 끝내줬드랬어요.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밀어부였다구. 우리 둘이 같이 동시에 비명소리를 터뜨린 게 한달 만에 처음이었어요--- 그러구 나니까 은근히 사람이 사근사근해 지는 거 있죠--- 방도 새로 도배해주고, 부엌엔 타일까지 깔아주더라니까. 끝내주더라구요. 아줌만 요새 어때요?
[비] 어젯밤에 시청에서 전화가 왔지. 굴뚝이 위험해 보이니 조사관을 파견하겠다나. 그래 내 사다리를 준비해 뒀거든. 그런데 그 작자가 와서 하는 말이 자긴 못 올라간다는 거야. 어지럼증이 있다나. "정말 안올라갈꺼에요?" 내 이러니까, 죽어도 못 올라가겠대. 나중엔 망원경으로 굴뚝 속을 올려다봤는데, 깜깜하기만 하지 뭐가 보이나? 내가 "아무 이상도 없죠?" 하고 능청을 떠니까 그 작자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군요" 하곤 가버리더라구. 시청 놈들, 하는 일이 맨날 그런 식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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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내가 보기엔 젊어 보여도 이 목욕탕 다니기 시작한지가 벌써 38년이나 됐수. 근데 이 목욕탕이 문닫으면 아이구 그땐 어떡하누?
[비] 도대체 도서관은 왜 또 짓는지, 원. 저 길모퉁이도 하나 있잖아.
[매] 도서관이란 게 남자들이랑 애들한테나 필요한 거지. 우리한텐 이 목욕탕이 더 쓸모가 있다구.
[비] 요즘은 저 위 옛것들 맘대루에요. 우리 세금갖구 지들이 떡 주무르듯 한다니까.
[조] 가만 있어봐, 근데 도서관도 있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거기선 교양을 쌓을 수 있잖아요. 교양이 있으면 그럴듯한 직장에서 일할 수도 있고. 난 벌거벗고 춤추는 일은 이젠 신물이 나요.
[비] 우리 어머닌 보건소에서 밤일을 하셨는데, 시에서 거길 폐쇄하는 바람에 실업자가 되셨지. 아버진 양조장에 다니셨는데, 불법이라고 문을 닫게 했어. 동생은 탄광에서 일하는데,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뼈빠지게 일하지. 그래도 걘 행복한 편이야, 집안에서 유일하게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 됐으니까.
[조]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꺼야--- 서튼에 있는 내 친구가 그러는 데요. 걔가 일하는 도서관엔 작가들이 모이는데요. 그 사람들한테 지 얘기를 들려주면, 그걸 쇼킹하게 바꿔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준대요.
[매] 그래서 나오는 게 지저분한 책들밖에 더 되겠수? 하여간 여긴 딱 한군데 단이랑 내가 딴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유. 도서관에선 얘기를 할 수가 없잖수. 산지사방에 "잡담금지"라는 딱지가 붙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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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도서관에서 하이힐을 신고 걸어봤음 좋겠어.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다들 고개를 들고 날 쳐다볼 꺼야. 내 다리 매끈해졌죠? 어제 제리 면도기로 털을 다 밀어냈거든요. 그 자식 구역질난다고 성질을 벌컥 내면서, 면도기를 쓰레기통에 내던져 버리데요.
[비] 내 남편은 그 일에는 정반대였어. "면도기 하나를 두 가지 용도로 쓸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군" 그랬으니까.
(제인, 흥분한 얼굴로 들어온다)
[제] 기막힌 소식이야! 시청에서 연락이 왔는데, 시의회에서 우리 문제에 대해 공청회를 열기로 결정했대. 복지과장이 우리를 전부 소개하기로 되어 있는데, 시간은 금요일 저녁 일곱시.
[낸] 그거 참 잘됐네!
[제] 그럼. 그런데 우리 쪽에서도 조직적으로 대비를 해 돼. 시간이 이틀밖에 안 남았어. (테이블로 가며 코트를 벗는다) 오늘 조간신문들 봤어? (신문을 보인다)
[비] (신문을 받아들고 읽는다) "<공중탕을 사수하라> 트리게잇 가의 공중탕들이 폐쇄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목욕탕의 여인들은 이에 맞서 대항할 기세이다. 시당국 계획에 의하면 앞으로 4주 후에 목욕탕 건물이 공식적으로 폐쇄될 예정이나, <공중탕을 사수하라>라는 구호 하에 모인 여성운동가들은 시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하였으며, 공중탕에 온갖 구호를 내거는 등 만만치 않은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낸] 햐, 이거 잔다크라도 된 기분인데.
(모두들 흥분하여 주위에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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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신문에 나랑 단 이름은 나지 않았겠지. 버니스가 코방귀를 뀔 거야. "엄만 자기일 이나 신경쓰슈"할꺼라구.
[제] 우린 다음과 같은 객관적 자료들을 시민들한테 적극적으로 제공해야돼. 즉 이 지역의 9,000가구가 집에 욕실이 없다, 또 욕실이 있는 가구 중 25,000가구의 시민들이 온수사용에 필요한 연료비를 낼 여유가 없다, 그리고 적어도 이백 명의 맹인들이 목욕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 그리고 공청회 규칙은 다음과 같다. (인쇄된 종이 한 장을 꺼내 읽는다) "공청회 규칙 제 29조에 의거하면, 대표인 단은 3인 이상 10인 이하의 공식 청원인 들로 구성된다. 단 공식 청원인 들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대변인을 지명할 수도 있다. 대표인 단 중 1인에게만 연설의 기회가 제공되며, 동인의 연설 시간은 15분으로 제한된다"
[조] 햐, 그거 골 때리게 복잡하네.
[제] 자, 신중히 생각해 본 담에, 대표인 단을 결정하자구.
(그러는 동안 단이 플라스틱 가운을 벗어버리고는 비키니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서 있다. 배꼽 부근에 빨간 하트가 그려져 있다)
[낸] 얘, 멋지다, 단.
[조] (휘파람) 휘익!
[매] 단, 무슨 짓이냐!
[비] 내버려두세요. 몸에 화장 좀 한 건데요, 뭐. (차를 나눠준다)
[매] 저러다 가운데 묻힐까봐 그러지.
[낸] 괜찮을 꺼 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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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비올렛을 도우며) 나 토플리스 클럽에서 사흘 밤 뛰면 십 오 파운드 주거든요. 그리고 제리가 삼십 파운드씩 주고. 그거면 전기세는 다 해결 되요. 실리아 고 계집애가 꿔간 돈만 받으면, 전화료도 깨끗이 갚아버릴 수 있고, 문제는 새로 산 중고차 값이랑 보험료 밖에 없어요.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실리아 걔 참 처량하게 됐어요. 고게 어떤 놈 씨를 사귄 지 이주일 밖에 안돼서 옜다 모르겠다 결혼을 해버린거에요. 근데 그 신랑이란 자식이 그 짓은 하루에도 네 번씩이나 하면서, 먹을 건 다 트렁크에 쑤셔 넣고 잠가버린데요. 걔 먹성이 보통 아닌 앤데, 정말 불쌍하게 된 거죠. 걔에다 대면 난 행복한 거예요. 사람은 밑을 내려다 보구 살아야 행복하단 말이 맞는다니까.
[낸] 산다는 건 누구한테나 힘겨운 일이지.
[조] 그럼, 그야말로 짓밟고, 짓밟히는 일의 연속이라구, 살기 위해서, 난 클럽에 일자릴 얻을려구, 배불 뜨기 지배인 녀석한테 하룻밤 짓밟혀준 일도 있었다니까.
[제] 누가 강요한 일은 아니잖니. 네가 선택한 거지.
[조] 도덕선생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제] 미안해. 이거 종이가 떨어졌네. (나간다)
[조] 나 고등학교 때 도덕선생은 여자였는데두, 맨날 군복같이 투박한 옷으로 온몸을 가리고 다녔거든. 그 여자가 한번은 잣대로 날 때리 길래 엄마한테 일러버렸지. 그랬더니 엄마가 학교에 찾아와서 그 여자 따귀를 올려붙여 버린 거야. 그 덕에 난 퇴학당했는데, 어차피 더 다닐 수도 없었지, 임신했었으니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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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생각에 잠겨) 제인 말이 맞아, 조시--- 누가 강요한 일은 아니야, 내가 선택한 거지. (조시, 낸시를 바로 보며)
[조] 언니가 나에 대해 뭘 알고 있지?
[낸] 자존심엔 항상 희생이 따르는 법이야.
[조] 지금 내가 대체 어떤 직장을 구할 수 있단 거야? 이젠 꽃다운 십대 소녀도 아니라구. 게다가 난 천성이 돈이라 비싼 옷 없인 못사는 사람이야. 철지난 구두랑 낡아빠진 코트 같은 건 못 견딘단 말야. 그뿐이 아냐, 난 언니처럼 정숙하신 가정주부님만 보면 먹은 게 다 넘어오는 체질이야--- 난 언니처럼 되기 싫다구. 매일같이 쓸고 닦고, 또 더러워지고, 다시 쓸고 닦고, 지겹지도 않아? 난 지겨워, 지겨워, 지겹다구! 왜 우리 같은 계집년들은 분수에 어울리지도 않게 비싼 옷이랑 화장품에 돈 쳐 들여가며 모양을 내는지 알기나 해? 우린 이 쓰레기 같은데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쓰레기 같은 일만 하는 신세다 가 뒈질 팔자기 때문이야. 돈 많고 정신나간 놈팽이 하나 걸고넘어지긴 전엔. 언니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 그렇지 않을걸. 난 언니보다 훨씬 여행을 많이 다녔어. 언니가 따스한 저녁을 드신 횟수보다, 내가 멋진 휴양지 수영장 옆에 누워있던 적이 더 많은걸.
[낸] 모두 남의 돈으로 말이지?
[조] 그게 뭐 어때서? 언니가 남의 돈 울거내지않는건, 그럴 필요까진 느끼지 않기 때문이지, 나보다 더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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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인생을 즐기고 싶어! 화려한 옷, 멋들어진 여행, 근사한 차--- 나 그런걸 즐기고 싶어. 또 남의 돈으로지만 즐겨왔어. 언니보다 더 확실하게. 그 지루하고, 엿 같은 생활이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면 나도 안 말려. 하지만 여자란 즐기며 살아가도록 태어난 동물이라구. (걸어갔다 다시 돌아온다) 어쩌다 길 가다가 대학생 놈들한테 버스 노선이라도 물어볼 때면, 그 개새끼들 내 말씨 듣고 똥이라도 본 것처럼 낯짝을 찌푸려 댄다구. 야! 못 배운 죄 때문에 멸시 당하는 기분 너 알기나 해?
[낸] 멸시당한다구?
[비] 나도 딱한 번 대학교 도서관이란 델 가본 적이 있었지.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하도 오줌보가 터질라구 하길래 견딜 수가 있나. 그래 뛰어들어가 변소를 찾았지. 누가 사서한테 물어보라더군. 그래서 사서를 붙잡았어. 같은 여자라 잘 통할 것 같구. 내 물어봤어, "변소가 어딨나요?" 그 년이 이러더군. "안돼요, 관계자외 출입금지 에요" "그게 뭔 말인가요?" 하고 물어봤더니, "굉장히 위험하다는 뜻이에요" 아, 이러더라구. 위험해? 하, 변소 좀 쓰겠다는데 뭐가 위험하단 개소리야?
[조] (비올렛 얘기를 무시하며) 먹물낀 것들은 이기적이야. 진짜 공부는 책으로 하는 게 아냐, 살면서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거지.
[낸] (떨며) 멸시했다고? 난 널 멸시한 일이 없어. 이건 공정치 않아.
[조] 무식한 죄로 멸시 당하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알아? 직장에 이력서 넣을 때마다 저 학력이란 이유로 수도 없이 퇴짜를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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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씨가 저속하고, 철자법도 엉망진창 개판이라구--- 결국 두 손에 쥐게되는 건 걸레자루 뿐이야.
[낸] (일어서며) --- 제발 그만해!
[조] 네가 뭔데 그만 두라 마라 해?--- 네가 뭐야? 내 상원이라도 되시나? 글줄이나 제대로 쓴다고 영국여왕이라도 된 기분이야? 웃기지 마, 넌 서방한테 버림받고, 그대신 위자료 깨나 챙긴 별 볼일 없는 여자야. 네가 채인 거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야. 넌 항상 모든 사람들 머리 꼭대기 위에 앉으려 하니까. 잘나체 하지마, 네 서방이 원한 건 사랑이지, 자존심 나부랭이가 아니라구.
[낸] 닥쳐, 제발 닥치란 말야! (낸시, 귀를 막고 등을 돌린다)
[조] 내말 아직 안 끝났어--- 제리 자식 나만 보면 뭐라는 줄 알아? 난 마흔이 넘어도 웨이스트레스 주제를 못 벗어날꺼래. 사실이야. 사실이지만, 난 견딜 수 없어. 가난이 견딜 수 없단 말이야. 개새끼, 틈만 나면 한달 말이 "넌 좆도 아냐, 네 인생은 길바닥에서 종칠 인생이야" 지난 여섯 달 동안 열 여덟 번이나 면접을 봤어. 운전사, 사환, 카운타--- 내 말투에 전부 머리를 설레설레 하더군. 이력서라는 것도 한심하고. 그동안 난 개새끼, 고양이 새끼처럼 여기저기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녔어. 결국 찾아낸 일이 뭔지 알아? 코딱지 만한 "라디오 대여" 회사야. 한시간에 한번 올까말까한 14번 버스를 타고, 두시 간쯤 가서, 아무도 관심 없는 "라디오 대여"광고 전단을 한아름 받아 갖고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지. 그리곤 매연이 코를 찌르는 시내 중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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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 서서 행인들한테 그걸 나눠주는 거야. 죄다 아래위로 한번씩 훑어보며 지나가지. 하루종일 거리에 서서 그 짓을 하고 나면 저녁엔 구두를 신을 수조차 없어.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느껴지는 묘한 소외감이야. 이런 직업이 내 자존심을 살려주는 거라면, 내 클럽에서 일을 얻게된 날 밤 얘기도 해드리지. 그 배불 뜨기 지배인 자식이 능글거리며 이러더군. "조시, 살결이 아주 곱군. 어디 좀 벗어보겠어?" 안될 거 없었지. 그래 내 윗도리를 훌훌 벗어 던져 버리고 앉아 있으니까, 그 배불뚜기가 내 젖꼭지를 톡톡 치면서 "거참, 귀엽게도 생겼다" 그 매독 균만 득실거리는 클럽에서, 난 가슴을 몽땅 드러내 놓고, 보통 때 같으면 내 치맛자락도 못 스치게 할 그런 쓰레기랑 마주 앉아 있는 거야. 난 눈을 비비며 생각했어. "씨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외긴, 돈 몇 푼이랑 일자릴 얻기 위해 서지" 구역질이 나더군. 그 새끼 바지랑 양말을 주섬주섬 벗더니 바닥에 타월을 한 장 깔더라구. 그 위에 누우란 거지. 다시 눈을 비비면서 생각을 고쳐 먹었어. "미친개한테 한번 물린 셈치자. 조시, 넌 돈이 필요하잖아!" 하지만 속으론 계속 구역질이 났어. 나 자신도 수치스러웠지.
(모두들 숙연하다. 조시. 주위를 둘러본다. 낸시 귀를 막았던 손을 떼고는 귀를 기울인다)
결혼한 뒤엔 영락없는 가정부 신세였어--- 남편이 감옥에 쳐 박히지만 않았더라도, 난 아직 그 똑같은 일들을 매일 반복하게 있었겠지, 쓸고 닦고, 치우고, 안정의 대가로 말이야. 그보단 차라리 아무 부담 없이 한 남자한테 얹혀 사는 게 훨씬 나아, 적어도 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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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은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 넌 아마 꿈도 꾸지 못할 꺼야. 난 나가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한잔하고 싶으면, 난 그렇게 해.
(낸시, 다시 돌아선다)
아침 늦게까지 늦잠을 자고 싶으면, 자 버리면 그만이야. 그게 하고 싶으면, 해버리면 되지. 근데 넌 뭐지,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고 있잖아.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너무 흥분했나? (주위를 둘러보며) 여자들이랑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래. 난 사내들이랑 어울리는 게 훨씬 편한데. (왔다갔다하며) 아무래도 화가 안 풀리네. 난 남한테 무시당하곤 못살아. 누구보다도 나부터가 이런 내 꼬락서니를 경멸하고 있으니까.
(침묵. 낸시, 조시의 분노가 그녀에게 이어졌다. 그러나 독백하듯 대사)
[낸] 내 남편 나한테 격려한번 해준 줄 알아? 그인 한번도 그래준 일이 없어. 친구 사귀는 거까지도, 내가 새로 사귄 친구를 집에 초대하기라도 하면, 그 날밤에 날 막 야단치는 거야. 레즈비언들이냐구 비꼬면서. 그리고 그 친구 옷차림, 생김새, 말투까지 하나하나 꼬집어가며 비웃는 거야. 그러니 다신 누굴 초대할 엄두가 나질 않았지. 결국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이라곤 그이 동료 변호사 부부들뿐이었지. 사는 게 모두 남편 위주로 흘러가게 되고, 내건 점점 파묻혀 갔지, 하나에서 열까지. 내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게 되고, 바깥세상하고는 완전히 담을 싼, 무관한 인간이 되어 버린 거지.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집에 들어 앉아서 배달부, 수리공 따위나 기다리는 일 뿐이고, 그 사람들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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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뿐인걸. 보면 다른 여자들도 나처럼 집에 틀어박혀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신세가 아닌가 싶어. 매일 우린 집을 지키면서,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리지. 항상 가정을 지켜야 되니까, 안 그랬단 "엄마의 무관심 때문에 소중한 자녀들이 탈선하고, 도둑질하고, 마약까지 하게 되었다"는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니까.
[조] (아직 적대감이 남아있다) 그래서?
[낸] 그래서 결국 난 아무런 존재도 아니게 남아 있었지. 한편으론 남편과 자식에게 한없는 애정을 베풀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고개를 쳐드는 스스로에 대한 욕구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조] 두려워서?
[낸] 그래.
[조] 이봐, 낸시 언니, 우리 모두 언니 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어. 내가 매일 아침마다 뭘 위해 기도하는 줄 알아? ; 용기를 얻기 위해. 또 물론 원만한 성생활을 위해서! 여자들은 죄다 원만한 성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구. 왜 그 서방인가 하는 작자를 먼저 차버리지 않았어?
[낸] (돌아서며 천천히, 의식적으로 조시를 마주본다) 그 예쁜 집과 아름다운 정원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그 사람 곁을 떠날 경우엔, 그때까지 살아오던 대로 나와 애들을 편안하게, 만족하게 해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지. 한마디로, 돈이 없었기 때문이지!
[조] 하, 나랑 조금은 통하는 데가 있네!
[낸] 지금까진 왜 못 느꼈을까?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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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함께 웃으며) 그래서 난 여기가 좋다니까. 좆같은 위선이 통하질 않거든.
(낸시, 울음에 가까운 안도의 웃음으로 바뀐다. 제인이 돌아온다)
[제] 대체 무슨 일 땜에들 그래?
[매] 몰라, 처음엔 서로 싸우고 저 잘났다고들 그러더니, 지금은 또 같이 웃고 그러는구만.
[제] 들어봐, 아까 나가면서 퍼뜩 생각한 건데--- 조시, 네가 그 공청회에서 대표연설을 해줘야겠어.
[조] 내가?
[제] 그래. 모르겠니? 비올렛은 나설 수가 없어, 자기 직장이랑 직접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매로우 부인이랑 단은 좀 문제가 있고, 낸시랑 나도 여기 분위기를 정확히 전달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잖어.
[조] 햐, 하지만 난 생전 옷 입고는 여러 사람들 앞에 나서본 적이 없는데.
[제] 우리가 도와줄게.
[조] 웃길 것 같은데.
[낸] (도전적으로) 너 기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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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조시, 제인이 테이블에 앉아있다. 테이블 위에는 각종 서류가 쌓여있다. 조시는 손에는 펜을 들고, 안경까지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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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시의회의 의견서는 일방적으로 공중 목욕시설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그릇된 견해를 시민들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부정직한 처사인 것입니다. 특히 <공공안전에 대한 심각하고도 무책임한 위협>이라는 구절은 아무런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이미 신문지상을 통해 발표된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공중탕의 폐쇄를 건의할만한 아무런 급박한 위험도 지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낸] 야, 연설문 근사하다!
[제] 자, 이제 이 반박 문에 이어서 객관적인 수치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지. 내 계산기 어디 갔지? 예를 들면, 시의회에서 시립양로원 노인 1인당 지출하는 1년 경비 총액, 양로원 노인 모두가 일년간 주1회 공동목욕탕 사용하는 경비. 그래서 얼마나 저렴한 경비로 시의 복지향상에 기여할 수가 있는가.
[조] 낸시 언니, 난 암만해도 떨려서 안되겠어. 언니가 하면 안될까?
[낸] 안 돼--- 넌 바로 이 목욕탕 옆에서 태어났잖니. 넌 이 동네 사정을 손바닥처럼 훤히 알고 있으니까, 내가 하는 거 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을 꺼야. 잘 해낼 수 있을 테니, 걱정 마.
[제] 오늘 저녁 대성공 할꺼라구.
[조] 쌍소리도 못하고, 술도 못 마시잖아. 으흠, 그 대신 새로 산 내 까만 부츠랑 빨간 벨트 자랑이나 실컷 해야지.
[제]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하고, 그 다음에 우리 주장을 전하기만 하면 돼.
(비올렛, 커다란 종이봉투 두 개를 들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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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밖에서 유태인 친구를 만났는데, 날보고 이러더군. "비올렛 당신네 사우나가 런던에서 최고야! 거기 다닌 뒤부터 내 몸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지지 말아요!" 그러더니 우리 캠페인에 쓰라고 5파운드를 내놓더라구.
[매] (눈을 딱 감고는) 아이구, 유태인이라구 그랬수? ; 그 사람들 하곤 안 어울리는 게 좋아. 암, 안될 일이지. 조심하는 게 좋아요. 금새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비] 자, 숙녀 여러분. 특제 도시락을 6인분 주문해 왔어요. 매도우 부인 이제 그 틀니 끼우시고 어서 일어나세요. 오늘은 우리 모두 힘을 길어둬야 되니까.
(단, 야한 속옷차림으로 등장)
[매] (깜짝 놀라 눈을 뜨며) 게 무슨 소리야? 난 1949년 이래루 틀니를 빼놔 본 일이 없어. 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호원이 입버릇처럼 말했지, 왜 다른 사람들처럼 틀니를 침대 곁에 빼두지 않냐구. 그래 내가 "침대 머리맡에다 모셔 둘려구 내 틀니를 해 넣은 줄 아슈?" 그랬--- (갑자기 단을 발견하고는) 단, 무슨 짓이냐? 가운 입고 나오지 못해! 어서!
[단] 사람들이 그러는데 내 몸매도 봐줄 만 하대. (가슴을 어루만진다)
[매] 너 또 왜 그러는지 알겠다. 너 약 안 먹었지?
[단] 안 먹을 꺼야. 약 안 먹었을 때가 기분이 더 좋아. 엄마가 자고 있는 동안 쭉 난 거울보고 있었다구.
[매] 눈뜨고 보고 있을 마음이 생기대?
[단] 내 몸은 눈부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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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저 정신 빠진 것! 그렇게 되지도 않는 소리 해 싸단 경찰에 붙들려가.
[단] 그렇겐 안될걸. 비올렛이 남자들은 여기 못 들어 온 댔어. 내 살결은 참 하얘. 눈처럼 눈이 부시다구. (허벅지를 찰싹 때린다)
[매] 그 말대꾸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너 땜에 병이 다시 도지는 것 같아.
[단] 엄만 아프니까. 어서 자! 나 기분이 짜릿해지는 게 좋은데.
[매] 얘, 지저분한 소리 그만해라. 쟤 얘긴 들은 척 할 것들도 없다우. 약 기운이 떨어져서 과대망상증이 또 재발하는 모양이니까. 얘, 넌 약 먹지 않으면 저녁식사는 국물도 없다!
[단] 비올렛이 내 꺼도 가져왔을걸.
[매] 그래, 내가 관둬야지. 꼴도 보기 싫다.
[단] (줄넘기를 하며 노래부른다) 길가에서 놀지 마라, 길가에서 놀지 마라, 늑대에게 물릴라!
[비] 이제 그만해, 단. 어머니 그만 언짢게 하구.
[단] 난 지금 짜릿한 기분이 좋은걸.
[비] 그런 기분 누구나 다 좋아하지. 하지만 식사시간엔 그러는 게 아니야.
(비올렛, 낸시, 제인, 음식을 펼쳐놓는다. 비올렛, 마실 것을 가져온다. 조시, 젖은 몸으로 타월을 감은 채 등장)
[조] 사타구니에 조그만 종기가 생겼어.
[낸] 그 애숭이 배우랑 상관 있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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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그렇기만 해봐라, 내 그자식 모가지를 비틀어 놔 버릴 테니. "죽느냐 사느냐" 소리가 쑥 들어갈 때까지 할켜 버려야지.
(모두들 주위에 둘러앉아 먹기 시작한다)
[단] (타월을 두르고는) 엄마, 닭이 좋아, 카레가 좋아? 내가 큰 걸로 갖다줄게.
[매] 네가 옷 입기 전엔 아무것도 안 먹는다. 그 짜릿한 기분인지 뭔지 아직도 그러냐?
[단] 난 두 가지다 먹어야지.
(자기 앞으로 음식들을 끌어당긴다. 모두들 즐거운 식사. 비올렛, 마실 것을 따른다)
[제] (다가앉으며) 햐, 기차게 맛있는데!
[조] 술은 없수, 비올렛? (식사의 즐거움이 넘쳐흐른다) 으흠, 정말 좋네, 이렇게 삥 둘러앉아 먹으니까. 음- 난 형무소 장이 되고 싶을 때가 있어. 아, 한 놈팽이한테만 매달려 있는 거 보다는 그편이 더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잖아. 여러 놈들을 책임지고 있으니까 말야. 언니는 어때, 제인?
[제] 결혼이고 직장이고 책임은 다 귀찮아. 난 다시 여행이나 하고 싶어.
[비] 이젠 샘 때문에 쉽지 않을걸.
[제] 샘도 여행엔 이골이 난 앤걸요. 두 돌 반 때 그리이스 말을 배웠으니까.
[낸] 그리스엔 왜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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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 데이빗이 보트 대여 업에 손을 대고 있어서, 그리이스 작은 어촌에 자리를 잡았었거든. 샘은 매일 아침 일어나기가 무섭게 근처에 사는 어떤 할머니 집에 가곤 했지. 거기 쪼그리고 앉아서 암탉이 아침에 먹을 계란 낳아주길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낸] (부러운 듯) 전원적으로 들린다, 얘!
[제] 데이빗이 훌쩍 떠나버리고 거지꼴이 되기 전까진 그랬지. 거긴 런던에 전화한번 할려면 버스 타고 적어도 20분은 나와야 되는 데였어. 한번은 전화 땜에 나왔다가 막차를 놓친 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샘을 들쳐업고 시골길을 타박타박 걸어오는 수밖에. 한 3,4킬로쯤 걸으니까 정말 죽겠더라구. 그때 마침 같은 방향 오토바이를 만나서 뒷자리에 타구 돌아왔지. 그 산길을 달리는데도 샘은 깨지도 않구 쌕쌕 잘 자더라구!
[조] 그래 계속 거기 살았어?
[제] 한 한 달쯤. 포도 따는 일까지 해보고 왔지. 그리스란 나라에선 여자 혼자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한번은 밤에 자다 깨보니까 내 침대에 웬 사내놈이 기어 들어와 있는 거야. 날이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어둔 채 잠을 잤거든.
[조] 짤라버릴 새끼! 한방 조져버리지 그랬어?
[제] (웃으며) 그냥 꺼지라구 그랬지, 뭐.
[낸] 소름끼친다, 얘.
[단] (미소) 속으로 기분 좋았을걸. 고백해, 제인, 거짓말 하지말고.
[제] 그 녀석, 마을 놈들 중 하나였어. 지 생각엔 지가 끝내줄 수 있다고 믿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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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진짜 그랬어?
[제] (킬킬거리며) 아무튼 여행 다니다 보면 별의 별일이 다 생긴다구. (심각하게) 내 남자를 바라긴 하지만 결혼 따윈 관심 없어, 혹시 누굴 사랑하게 된대도. 언젠간 내 친구 로즈가 놀러와서 하룻밤 자고 간 일이 있어. 그 다음날이 일요일이라 우린 한가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했어. 샘이랑 나 단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랑 같이 식탁에 앉아있는 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
[조] 근데 그 손님이 사내놈이었다면, 언닌 꼼짝없이 혼자 식사 준비를 해야 됐을걸. 그 작자는 의자에 앉아서 코딱지나 파고 있고.
[제]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건 우리들 잘못인 거야. 우리부터 사고방식을 고쳐야돼.
[낸] 우린 남자들이 추켜세워 주기만 바라고 있지.
[제] 그렇게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봉사하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가며.
[낸] 그게 바로 함정인데.
(두사람, 서로에게 몸을 기울여 키쓰)
전남편 친구들 식사 초대돼서 오면 이러고들 그랬지. "요리솜씨가 대단하시단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그럼 별수 없이 그 평판에 어긋나지 않을려구 기쓰는 수밖에 없는 거지.
[제] 나도 요리는 좋아하지만, 나 혼자 부엌에 틀어박혀서 용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으면, 지들두 거들어야지!
[조] 동감이야--- 부엌이랑 이젠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니까. 내 꽃다운 청춘에서 10년은, 애새끼랑 그 잘난 서방님 뒷치닥꺼리로 날려 버린 거라구. 서방이 집에 들어오면 손바닥이나 비벼대며 한다는 소리가 "오늘 저녁 메뉴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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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웃기는 것들이야. 그 작자들 내 머리가 까지고, 아랫도리는 흐늘흐늘해져도 식욕하난 왕성하니!
[낸] 난 부엌일보단 애 키우는 게 더 즐거웠어요. 그런데 그 귀엽던 애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커버리더라구요. 그리고 나한테 걸어와서 덤벼들 듯이 말하는 거예요. "그래, 어쩔 꺼야?" "더 줘!" "어디 가는 거야?" 갑자기 변해버린 애들 모습에 어쩔 줄 모르게 되더라구요. 결국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지르는 수밖에 없죠. '사람 살려!" "도와줘요!"
[조] 곧이어 그 녀석들 섹스랑 돈 같은 더러운 이야기를 지껄여대지.
[제] 그담엔 마약에 손을 대고, 심지어 자살하는 녀석들까지 생기구.
[조] 우리 아들놈처럼 차를 훔치다가 콩밥먹는 신세가 되기도 하구.
[비] 그리곤 부모 일에 감나와라 배나와라 참견하기 시작하지. 옷이 촌스럽다는 둥, 담배 그렇게 피다간 암에 결려 죽을 거라는 둥---
[낸] 또 지들이 불행한 건 모두 부모들 책임이라고 둘러대요. (사이)
[비] 한가진 확실해. 모두들 결국 집을 떠나는 건!
[매] 내 딸은 달라. 저 앤 집을 좋아해.
(모두 웃는다)
[비] 좀 더 먹을 사람?
[낸] 저 좀 더 주세요!
[비] 에미가 애들한테 좋은 본을 보이고, 훌륭하게 장성한 애들을 사회에 내보내는 게 세상 제일 기쁜 일이지. 우리 애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자랑스럽고, 행복할 수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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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저도 그래요!
[제] 나도 우리 샘이 자랑스럽긴 하지만, 애 키우는 일 때문에 인생 전부를 희생할 순 없어. 집안에 오래 들어앉아 있을수록 바깥 세상에 나가기가 더 두려워지는 법이야.
[낸] 나도 바깥 세상에 뛰어들고 싶어. 집안에만 갇혀있는 건 이젠 지긋지긋해.
[단] (끼여들며) 울 엄마한테 그 얘길 해봐! 잘들 한다구 할 테니!
[매] 우리 애는 멀리 가는걸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학교 가는 것도 무척 싫어했다우. 한번은 여름 캠프에 보낸 일이 있었는데, 집에 가겠다고 졸라대면서 징징거렸나봐. 다른 애들은 다 캠프 끝내고 왔는데, 우리 단은 떠난 그 날로 돌아왔다우.
[단] (매도우 부인을 부르며) 엄마 그 방공호 기억나? 아빠가 놀이터로 쓰게 해줬잖아.
[매] 아직도 뒤뜰에 부서진 그대로 있지 않니. 아침이면 우린 도시락을 싸 가지고 그리 소풍을 갔지. 문짝을 떼어다가 침상을 만들었드랬지, 아마.
[단] 아빠가 전기불도 달아줬어.
[매] 고양이도 데리고 갔구.
[단] 참 아늑했어, 거긴!
[매] 네 아버지만 살아 계셨담, 지붕에 구멍이 뚫였을리도 없지.
[단] 금방 없어질 꺼야, 생각 안나, 엄마? 4년 전에도 구멍난 적이 있는데 저절로 막혀 버렸잖아?
[매]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붕이란 건 그런 모양인 거니까.
[단] 내가 그 경찰관을 좋아했을 때, 아빠는 막 화를 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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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네가 경찰관 좋아했던 적이 어디 있냐?
[단] 아냐, 좋아했어. 그래서 그 사람 옷을 찢어버린 거야--- 나랑 데이트를 안 하려구 하잖아. 파란 경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을 찢을 때 뿌드득, 뿌드득 소리가 나는 게 웃기더라니까. 그 경찰관이 바로 내 귀속에 혀를 밀어 넣었던 그 사람이야.
[매] 거짓말하면 못쓴다, 얘야, 대체 누가 네 귀속에 혀를 밀어 넣었다구 그러는 개냐?
[단] 그 작자가. 또 다른 경찰관들도. 그 작잔 다른 짓도 많이 해놓구서, 정식으로 데이트하자니까 싫대잖아--- 그래서 옷을 찢어 버린 거야.
[매] 또 과대망상증이 도지는 구나--- 약 어디 뒀니? 비올렛, 얘, 약 좀 찾아주겠수? 다음엔 또 무슨 망상을 할지 모르겠구만.
[단] 그 사람이 내 귓속에 혀를 밀어 넣을 때 기분이 참 좋더라구. 근데 그 얘길 아빠한테 하니까 막 화를 내잖아 일주일 내내 한마디도 나한테 안 했어. 내 생일이 그때 있었는데두, 아빤 생일 축하 노래도 안 불러줬어. "생일 축하합니다"두.
[매] 그때 경찰이 집까지 찾아와서는 단을 데려가려고 했다우--- 쟬 다신 집밖에 내보내지 않겠다구 싹싹 빌어서 겨우 돌려보냈지. 정말 그 경찰관 옷이 갈가리 찢겨 있더군.
[단] 난 경찰복이 좋아--- 허리엔 커다란 곤봉도 매달려 있고.
[매] 그 뒤로 얘를 집안에서만 키우지 않았더라면, 벌써 붙잡혀 갔을 꺼유, 얜 지나치게 활동적이거든.
[조] 자, 우리 모두 이 공중목욕탕의 발전을 위해, 건배! 오늘밤 내가 연설할 때 말이야. 언니가 가르쳐 준대로, 객관적인 사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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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를 좍 풀어 논 다음 한가지 제안을 내놓을 꺼야. 물론 돈주머니를 좀 끌러놓으란 얘기지. 그래갖구 시에서 보조금이 나오면 말야, 우린 여길 끝내주게 만드는 거야. 새 침대에, 새 타월에. 화장실엔 은은한 조명을 달고--- 하여간 모두 모여서 이곳 살림을 어떻게 꾸려 나갈 건지, 누가 어떤 책임을 맡을 건지, 기타 등등, 밤새껏 떠들어 보자구. 물론 우리들이 아줌마 일을 죄다 떠맡겠단 얘긴 아니구요. 이를테면 비올렛은 여기 지배인, 우린 뭐 일종의 운영--- 위원회--- 그런 거죠, 뭐.
[비] 좋은 생각이야. 오늘밤 조시가 일어나 연설할 때 뒤에 내가 함께 있다는 걸 잊지마!
[조] 여길 위해 함께 노력해 보자는 내 생각 어때?
[제] 제대로만 되면 야 아주 그만이지.
[낸] 우리들 관계가 앞으로도 지속될까?
[제] 이건 남자들하고 연애 관계랑은 질적으로 다른 거야! 그것들은 어느 날은 팔짱을 꼭 끼고 "내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렇다가두, 다음날이면 언제 널 봤냐는 식으로, 뒤 한번 안 돌아보고 다른 여자 꽁무니를 쫓아가는 것들이야. 한마디로 완전히 무가치한 관계일 뿐이지. 우리들 모임이 한결 재밌단 생각이 안 드니? (사이)
[낸] (장난기 있게) 다음 번에 내가 직접 결혼서약서를 써야겠어--- "난 항상 그대의 말을 경청하며, 이해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대에게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가를 확실히 밝혀둘 것 역시 맹세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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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햐, 그거 정말 멋진 아이디어야, 온몸이 떨릴 정도로. 언니! 언니 말대로 하면 나도 가능성이 있다. 나도 제리한테 내 속마음을 다 털어놔 버리고, 졸라볼까? 새로 진짜 사랑을 한번 해보자구?
[제] 진실을 말하는 사람한텐 예상치 못한 행복이 찾아들 수도 있지.
[낸] 나도, 나도 다시 남자와 새 출발하고 싶어. 가까우면서도, 서로를 존중해주는 그런 사랑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부러울 게 없을 꺼야. 이젠 이렇게 좋은 친구들도 생겼으니까!
[조] 지금 내가 아주 짓궂은 상상을 하고 있는데 말야. 난 지금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은빛 스타킹에, 허리엔 은빛 벨트만 걸치고 침대 앞에 버티고 서 있어. 입술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내 앞엔 제리가 생쥐 새끼처럼 꿇어앉아 있어. 우린 막 침대에 오르려던 참이야. 그때 내가 명령하는 거야. "우린 지금부터 한시간 동안 일을 치른다, 알았나?" 그리곤 다 까발려 버리는 거야. 내가 그 자식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학대받고 얻어맞았는지. 자신이 얼마나 조물주의 실패작인지--- 이 모든 걸 다 걸어놓고, 제리가 두 손을 싹싹 빈 후에야 우린 그 일을 하는 거야.
[단] 엄마, 기억나? 그 왜 배꼽에 반짝이를 달고 춤추던 여자? (신이 나서) 그건 그랜빌에서 였어. 엄마 아빠가 내 생일 날 거기 데려가 줬거든. 거기 아라비아 옷 입고, 배꼽춤 멋있게 추는 여자가 있었어. 엄마가 나가자고 해서, 내가 막 싫다고 난리를 치니까, 아빠가 엄마를 야단쳤어. 당신은 춤 끝날 때까지 눈을 감고 있으면 되지 않느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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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재미있었어?
[단] 참 예쁜 춤이었어. 내가 한번 춰볼까? (단, 침대에서 내려와 몸을 흔들며 춤추기 시작한다)
[매] 이게 다 얘 아버지 실수야. 쟬 그렌빌에 데려가 쇼를 보여준 거부터가 잘못이라구. 거기서부터 쟤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니까!
[장] 3장
(낸시, 제인은 목욕탕에 남아있다. 조시, 비올렛, 단은 공청회에 참석하고 없다. 매도우 부인은 침상에서 잠들어 있고, 제인은 낸시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낸] 아침에 깨어보니까, 우리 니나가 소파 위에 그대로 누워 있떠라구. 아마 잠든 채 죽어 버렸나봐. 가엾어 죽겠어. 생후 한달 반 때부터 우리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그땐 올리버도 겨우 두 살이었지. 정말 정이 깊게 들었었어. 우리 애들이랑 같이 자라다시피 했거든. 더 이상의 생활의 변화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어져.
[제] 손가락을 목에 대어봐--- 맥박이 느껴지니? (사이)
[낸] 응
[제] 자, 그럼 손을 천천히 아래로 움직여봐, 가슴에서 갈비 뼈끝까지. (사이)
[낸] 꼭 내 몸 속에서 한 마리가 갇혀있는 기분이야. 며칠 전 윌리암을 만났어. 이혼한 뒤 처음으로. 내가 먼저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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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생활 동안, 난 정말 외로웠어요" 윌리암이 대꾸하더군, 자기도 몹시 고독했다는 거야. 하긴 결혼 일년쯤 뒤엔 서로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꺼렸으니까.
[제] (낸시의 가슴 윗 부분을 누르며) 기분이 어때?
[낸] 한결 나아졌어. 얘, 조시일 걱정돼, 억지로 만들어서 보내는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
[제] 호랑이 굴인데. 비올렛이 잘 도와주고 있을 꺼야. 여기? (낸시의 배를 마사지 한다)
[낸] 그래, 거기--- 어떤 땐 사냥개 한 떼가 뒤를 쫓아오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어--- 그럴수록 난 더 열심히 청소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아등바등 안간힘을 썼지, 윌리엄한테 인정 받으려고. 난 그이 마음에 들고 싶었어. 비단 그이뿐이 아니지. 난 평생 모든 사람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해 왔으니까. 심지어 우리 애들 마음에 들기 위해서까지.
[제] 알고 있어.
[낸] 그동안 난 모든걸 깔끔하게 정리하고, 평온을 유지하는 일에만 온 신경을 써왔어. 너무나 조용하고, 깨끗해서 도리어 산다는 느낌이 안들 정도였다 구나 할까. 조시가 섹스 얘기를 내 앞에서 막 까놨을 때, 내 속에선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고, 야릇한 질투심마저 끓어올랐어. 에스키모 할머니처럼 차가운 가슴속에 꽁꽁 묻어놨던 사랑과 섹스에 대한 욕구가 한꺼번에 뿜어져 나온 거겠지. 날 좀 안아줄래? (포옹한다) 넌 어때? 행복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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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땠을 것 같아?
[낸] 글쎄, 데이빗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사진으로는 행복해 보이던데. 그리이스, 인디아 참 많이들 돌아다녔지.
[제] 방랑의 연속. 6개월은 이스라엘, 4개월은 인디아, 그리고 그리이스. 친구들이랑 정신 없이 대마초도 빨아대고. 그런데--- 웃지마--- 데이빗 그 자식 결혼한 지 채 1년도 안 가서 다른 계집들이랑 놀아나기 시작했어. 초저녁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거야. 날 절망상태였어. 우리가 로마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을 때였는데, 난 매일 밤 뜬눈으로 밤을 새면서 남편 차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 난 그냥 모른척하고 있었어. <성의 자유> 그런 사상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는지, 질투심조차 생기질 않더라구. 그래서 그냥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산 거야. 밤에 둘이 침대에서 뒹굴 때 난 아무 느낌이 안 생겨도, 가짜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척도 해주면서. 나중에 헤어질 때 그 얘길 해줬지 (몸이 경직된다)
[낸] 그러니까 뭐래 든?
[제] 처음엔 내가 그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하는 소리쯤으로 알더군. 하지만 끝에 가선 내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됐지. 그 자식 허약하게 무너지더군. 이젠 더 이상 못 봐주겠으니, 이만 끝내자, 난 떠난다 그랬더니 어린애처럼 막 울어대는 거야. 내가 자기의 유일한 사랑이었고, 다른 여자들은 이름조차도 모른다나. 결국 내 결혼생활도 별 볼일 없었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꽃이 있으면 내가 직접 사고, 듣고 싶은 음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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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 내가 직접 찾아서 듣고 있지. 편하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냐! 난 아직도 사랑을 받고 싶어.
(낸시, 제인을 안아준다)
[낸] 나 집을 팔아야겠어. 어떻게 생각해?
(제인, 포옹을 풀며)
[제] 좋은 생각이다, 얘. 이제부터라도 네가 하고 싶은걸 찾아보렴. 우린 계속 싸워야 해. 승산 없는 싸움이더라도 포기해선 안된다구. 난 죽는 날까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꺼야--- 그러다 혹시 누군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그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거지, 뭐!
[낸] 난 더 급한 게 있어. 이젠 따뜻한 양지로 나가고 싶어. 남자를 찾아야지. 그리곤 우선 사랑부터 할 테야.
(밖이 소란하다. 비올렛, 조시 , 단이 들어온다. 매도우 부인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다. 제인, 낸시 일어선다. 사이. 서로를 응시하는 동안 말없는 침묵이 잠시 흐른다)
[비] 졌어! 개새끼들, 폐쇄해 버리기로 했어!
[낸] 어떻게 된 거야?
[비] 뻔하잖아. 그것들 공청회 전에 결정을 다 내려 논거지.
[제] 자, 다들 앉아. 마실걸 가져올게.
[조] 씨팔 새끼들!
[매] 아이구 고마워라. 우리 새끼 돌아왔구나. 쟤가 거기서도 흥분하지나 않았는지, 원. (약병에서 약을 꺼내서는 단에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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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지금은 싫어, 엄마. 이따가 먹을래 그 사람들이 인제 목욕탕 문을 잠가버린대. 엄마 인제 여기 못 들어온대.
[매] 얘가 흥분해서 얼굴이 새빨개졌네. 거 왜 얜 데려가서 흥분을 시켜놨나?
[단] 나쁜 짓이야. 이건,. 엄마 그 사람들 비올렛도 화나게 만들었어. 지금은 싫다니까- 이따가! (약을 밀어붙인다)
[제] 여기 문 언제 닫아야 되는 거죠?
[비] 3주일 뒤. 빌어먹을, 3주 뒤.
[낸] 내 축하주 할려고 샴페인 가져온 게 있는데, 우리 그걸로 한잔할까?
[비] 그래. 빵 터뜨려 버려, 낸시. 후줄근해 있을 꺼 없다구.
(낸시, 샴페인을 딴다. 제인이 잔을 가져온다. 조시는 매우 풀이 죽어 앉아있다. 낸시, 그녀에게 샴페인을 권한다)
[조] 씨팔, 뭘 위해 건배를 하지?
[낸] 우리 공중탕을 위하여!
[비] 이봐 낸시! 나 우는 꼴 보고싶어?
[모두] 우리의 공중탕을 위하여!
[낸] 연설은 어땠어, 조시?
[제] 비올렛도 연설했어요?
[단] 내가 먼저 한마디했지. 목욕탕 문을 닫으려면, 그전에 먼저 나랑 엄마를 집까지 끌어다 놔야 될꺼라구 겁을 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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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단, 너 단상 위에 올라갔단 말이냐?
[단] 그럼,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외쳤는걸.
[매] 얘, 처음 보는 사람들하곤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든!
[비] 내 남편도 한몫 거들었어.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하고 내가 따지니까, 한 의원녀석 대답이 오십이 넘은 관리직 고용원은 조기퇴직 시킬 수 있게 돼 있다는 거야. 그때 남편이 일어나 벽력같이 소리지르더라구. "은퇴라구? 십 팔 년 동안을 하루 결근도 없이 근무해 왔는데, 당신들 양심이 있는 거요?"
[제] 용감한 남편을 두셨네요.
[비] 그러는데는 다 이유가 있지. 우리끼리 얘기지만 그이가 요즘 질투를 느끼고 있거든. 우리들 뒤에 누군가 멋진 남자가 버티고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단 말야--- (웃으며) 난 남편 질투를 즐기는 편이야. 살짝 살짝 약을 올려놓으면, 질투를 하는지 금방 알 수가 있지. 질투로 몸이 달을 때면 발가락이 옴찔 옴찔 하거든.
[조] 아저씬 잠자리에서도 황소 같겠네!
[비] 응, 내가 투우사 노릇만 잘하면!
(그동안 조시는 옷을 벗고는 타월로 몸을 감싼다)
[낸] 조시, 네 연설은 어땠니?
[비] 조시, 스타였지. 거기 가득찬 청중을 한 손에 사로잡았으니까.
[조] 헛수고만 한 셈이지, 뭐.
[제] 어디 다시 한번 해봐.
(조시, 무대 중앙으로 가서 마이크를 쥔 시늉을 하고는 즉석 연기를 한다)
[조] 신사 숙녀 여러분,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 공중탕 폐쇄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문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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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에 따르면 공중탕의 시설 현대화를 위해선 적어도 7만 5천 파운드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그러나 이 액수는 금년 시 예산 중, 불꽃놀이를 위해 책정된 경비인 3만 파운드와 비교해 볼 때, 결코 과도한 지출이 아니며, 또한 욕탕을 갖추지 못하고 있거나, 갖추고 있더라도 보일러를 가동할 능력이 없는 절대 다수의 서민층을 고려해 볼 때, 이 공중 탕이야말로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공익을 실현할 수 있는 대표적 복지시설인 것입니다.
[단] 여기서 시의원들이 반격을 시작했어.
[비] 조시 연설을 방해하려고 한 거지.
[조] 그것들 숫자들을 막 악쓰면서 내 연설을 막으려고 지랄들이더라구. "이건 예산문제인데, 뭐 제대로 알고나 하는 얘기요!" 이러면서 떠들더라구. 내 이렇게 맞받아 쳐 버렸지. "예산문제라고 넘겨버릴라구 들지 마세요. 이건 예산분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에요. 4백만 파운드나 쳐 들여가면서 새 도서관을 짓겠다구 떠들어대는 당신들이, 우리 서민 공중탕 보수에 7만 5천 파운드 지출을 거부하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연설을 하면서 줄곧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저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앞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나인가?--- 아냐, 이건 조시가 아냐--- 내가 어떻게 감히--- 이러고 있는데 누가 또 소리치는 거야. "부인, 꿈에서 깨쇼! 그런 채산성 없는 사업계획에 돈을 들일 사람이 누가 있겠소?" 그래,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이젠 영영 그만이다. 조시, 속에 있는걸 다 털어놔 버려--- 그 얘길 받아서 대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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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견은 이렇습니다. 시의회는 아무런 사전 상의도 없이, 강권으로 서민들의 복지시설을 탄압하려 하고 있고, 우린 그 사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우린 다 알고 있습니다. 이건 예산상의 문제완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전혀! 이건 저 높은 곳에 앉아서 엄청난 숫자들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나머지, 자신들의 존재가 너무도 위대하다고 착각하는 그 잘난 높으신 양반들 때문에 시작된 문제입니다. 아주 귀하신 분들이니까, 그렇게 자주 스스로 봉급을 인상하시는 것도 다 이해가 됩니다, 그 큰돈을 관리해 주시는 중요한 분들이 시니까요. 하지만 오늘밤 이 자리에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 역시 당신을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낸] 브라보, 조시, 브라보!
[조] 연금을 타는 노인들, 맹인들, 그리고 아주 평범한 남. 녀 서민들. 이들에게 공중탕은 휴식과 대화를 위한, 단순한 욕탕 이상의 역할을 해왔으며, 이들의 삶의 공간을 저 높은 분들의 것과 동등하게 존중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비] 바로 그대로야. 통쾌했지. 다들 조시를 프로 운동가로 여겼을걸.
[조] 연설이 끝나자, 의원들이 수군대면서 투표에 들어갔지. 시설보수와 이용시민 증대를 위한 6개월 간의 유예기간에 대한 투표 말야. (사이)
[비] 결국 우린 졌어. 부결되어 버린 거야! 속은 느낌이더라구. 그 작자들 땅땅 망치를 두들기더군. "부결! 공중탕은 3주 후 폐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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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계단에서 외친다)
[빌] (무대 밖) 아줌마들, 아홉시 에요. 나갈 채비들 하세요!
[조] 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왜 나가? 못 나간다!
[제] 무슨 소리야?
[조] 내 말은 여기 남겠단 말야. 이제부터 점거농성을 개시하겠단 거지. 허락해 주겠죠, 비올렛?
[비] 여부가 있나. 나도 함께 남아 있을게. 날 끌어내기 전엔 난 한발자국도 못 움직여! (문으로 다가서서는 소리친다) 이봐, 빌 문이나 잠그시지. 우리는 이곳을 점거했다!
[빌] (무대 밖) 뭐라구요?
[비] 문 잠그고 집에 돌아가란 말야. 우린 안나간다니까!
(빌, 계단을 뛰어내려온다. 비올렛, 문을 쾅 닫고는 빗장을 건다) 자, 여긴 신경 쓰지 말구, 얼른 나가서 새 직장이나 빨리 구해봐!
(빌, 문을 덜거덕거리며)
[빌] (무대 밖) 비올렛, 비올렛, 내말 들려요?
[비] 그만 뒤로 물러서시지. 네 녀석 엉큼한 속셈 내 모를 줄 알아?
[제] 여기서 외부로 전화통화가 되나요, 비올렛?
[비] 응.
[제] 좋았어, 샘을 옆집에 맡아달라고 해야겠어요. 그리고 나도 여기 있을게요.
[낸] 난 어차피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까, 나도 남아있겠어.
[빌] 아줌마들 이 문 열어요. 큰일나고 싶어요?
[단] 엄마, 우리도 여기 있어,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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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너 엄마 말 안 들을래?
[단] 으응?
[매] 에이구, 자식이 웬수지. 그래 우리도 남자꾸나. 비올렛, 미쳤어요?
[비] 아니. 우린 우리 목욕탕을 사수하기로 결정한 거 뿐이야.
[빌] (무대 밖) 이러단 무사하지 못할걸요, 비올렛.
[비] 신경 꺼줄래?
(빌, 이층으로 올라가는 소리)
[조] 이십 년 동안 난 고작 생각한다는 게 돈이랑, 옷이랑, 집이랑 -
[제] 섹스뿐이었지.
[조] 맞아, 섹스! 이 사회에 대해선 깡통이었어. 이제부턴 달라져야지. 공부를 좀 해서 좀더 멀리 바라봐야겠어.
[비] 그런 말솜씨면 이제 금방 시의회에 진출하게 되겠는데--- 자, 숙녀님들 축하 사우나나 한번 하실 까요?
(무대 안개에 싸인다. 여인들 옷을 벗는다. 안개가 걷히고 난 후 냉탕이 앞으로 옮겨져 있고, 타잔 식의 로프와 다이빙대가 설치되어 있다)
[조] 우리 여길 궁전처럼 꾸며보자구. 온통 대리석으로 장식을 하고 천장은 화초로 가득 덮어버리는 거야. 냉탕 한가운데에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를 만들고. 비올렛은 타잔 표범가죽 옷을 입어요. 난 새하얀 비단으로 만든 눈부신 드레스를 입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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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쭈그리고 앉았다가 펄쩍 뛰어오르며)
[단] 꺅, 까-
(제인, 로프를 타고는 풀 위로 뛰어오른다)
[제] (가슴을 두드리며, 타잔 흉내를 내며) 난 제인이야!
(물 속으로 떨어진다. 낸시, 로프를 쥔다)
[낸] 겁나는데.
(제인, 팔을 내민다. 낸시, 뛰어 내린다. 제인이 낸시를 잡아준다. 서로 물을 뿌리며 장난친다. 조시 차례다)
[조] 난 맥주병이야. 수영을 안 배웠거든.
(낸시와 제인, 팔을 뻗는다. 조시 뛰어 내린다)
[비] 헤이, 숙녀님들 (다이빙대 위에 선다) 의원 나리들께서 우리 같은 곡예사랑 붙어서 승산이 있을꺼라고 생각하나 보지?
(단, 로프를 기어올라 비올렛 곁에 선다)
[단] 엄마, 여기 좀 봐줘 봐! (풀로 뛰어든다. 숨막혀 머리를 내밀며 "아푸 아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