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1

[스크랩] 공휴산행-아차산

末人 2008. 10. 28. 18:34
무릇
비가 내리고 있는 산의 풍광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공휴일 오후
줄기차게 퍼붓던 빗줄기가
점차 잦아드는 듯 하여
홀로
베낭을 짊어메고 가까운 아차산을 향한다.

영화사 옆으로 난 산행들머리에서
삶은 계란이며, 찐 옥수수며, 김밥 등등을 파는
포장마차 할머니마저도 나오지 않은
아주 조용한 휴일이다.

가까운 가게에서
캔맥주 두 개를 사서 넣고
산을 오른다.

엷은 빗줄기가
흩뿌리고 있다,
받쳐든 우산을 때려대는 빗소리와
솔나무 잎새사이로 방울져 떨어지는 빗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산의 고즈녁한 분위기를 한층 더 느끼게 해 주고 있다.

다져진 황톳흙길 계단을 지나
얼마가지 않으니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헤진 암벽길이 나온다.

단숨에 치고 오르니 팔각정이다.
16분 만의 일이다.

뿌우연 비안개 너머 저 아래로
촉촉히 젖어있는 도회지가 내려다 보인다.

일단 물기베인 나무벤치에 베낭을 벗어놓고
물 한모금을 벌컥였다.

간간히 지나는 등산객들,,,
한가롭기 그지없다.

비에 젖은 비들기들이 먹이를 찾아
바위 위를 쫄쫄거리며 이동하고 있다.

실바람이 불어오며 빗방울을 얼굴에 뿌려준다.
시원하다.

다시 출발...

솔향이 코끝을 파고든다.
흡사 해조음처럼
빗소리가 쏴하고 귓전에 밀려오고 있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산길...
텅빈 능선길엔
실비만이 소록소록 뿌려대고 있다.

일주일 내내 어두워 있었던
가슴 안의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걷혀가고
무심의 평온이 깃들어 오는 듯 하다.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없이 걷기만을 계속했다.

땀방울이 이마 위에 솟는다.
생각하기엔
더없이 좋은 호젓한 길을 가면서
나는 오히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하고 걷기만을 열중한다.

우산을 걷었다.
견딜만한 만큼의 실비가 내리고 있다.

이마와 콧등에 내려앉는 빗줄기가
오히려 상쾌함을 가져다 준다.

잔 솔나무 사이사이로
희뿌연 비안개가
꿈틀거리며 연기처럼 흐트러 번지고 있다.

한폭의 수채화로 담아내고픈 풍광이다.

내려다 봐도 보이질 않는 한강줄기...
차라리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아 평온한 지금...

몇개의 작은 등성이를 오르고 내리다 보니
벌써 아차산성의 정상, 헬기장이다.

나무 벤치에 베낭을 벗어놓고
커다란 캔맥을 꺼내 두껑을 열었다.

하얀 포말이 푸르르 솟는다.
넘칠세라 재빠르게 입술을 갖다대고
한모금 빨아 넘긴다.

갈증에 겨웠던 목구멍이 순간
넘어오는 캔맥의 부드러움에 짜릿한 쾌감마저 느낀다.

비 내리는 산정상
벤치에 홀로 앉아
혼자 마시는 맥주 맛이 좋아야 그 얼마나 좋으랴만
그래도 나름대로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핸펀을 꺼내
문자를 쓴다.

"비 안개 자욱한 산 정상이다
시원한 캔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는다.
빗소리가 만드는 고즈녁한 화음을 배경으로
이렇게 한잔 술을 들며
그대를 생각한다."

여유롭게 한통의 맥주를 비우고
하산을 하기 위하여 일어난다.

마악 출발하려는데
경주의 전화가 온다.

들머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어찌나 재빠르게 내려왔는지
미처 30분도 걸리지 않아 들머리에 도착했다.

경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자축의 잔을 들 시간이다.

그와 더불어 가진 자축의 시간은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났다.

산은 아차산이었는데
뒤푸리는 도봉산 입구에서였다.

철시하는 시간까지
매점에서
오늘 도봉산을 찾은 이들 중에 제일 늦은 시간까지
우리는 산 입구에서 술을 마셨다.

정에 약한 남자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하루를 마감하니
오늘의 이 과음으로 인하여
내일 도관까페 산행은 다글렀나보다.




출처 : 도봉에서 관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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