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의 시 1

허상

末人 2009. 3. 5. 15:25

허상

-末人-


붉은 망토가
유혹의 깃발처럼 펄럭인다.
치마저고리가 싫어진다.
꽃길이 열리고
햇살이 뿌려지고
향기가 날아온다.
붉은 옷자락 사이로 내비치는 속살이 곱다.
평온했던
안락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여행을 시작한다.
눈부신 거리
미처
뜯어내 버리지 못한 일력같은 어제가
구멍난 가슴 가장자리에
하얗게 곰팡이로 피어 음습하게 놓여 있었다.
보지말자.
앞이다.
부드러운 바람,
내미는 그 손에서 향수내음이 난다
갈라진 손바닥 사이에
힘껏 움켜쥔 알뜰함을
내 안주머니에 몰래 넣어주던 그런 손은
아니었다.
모습을 사랑한다는 말을 해줬고
꽃길로 나선 용기를 사랑한다고 들려줬고
해가 떠 있는 낮동안만 사랑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포옹은 했지만 그 가슴에 눈물은 없었다.
사랑한다고는 했지만
피맺힌 절규는 아니었다.
어느 한 순간
가지 끝에 머물다가는
삭막한 마른
바람이었음을..
저무는 길
돌아서 올 때
가슴은 비어있었지만
돌아 갈 수 있는 곳이 있어
외롭진 않았다.
또 다른 붉은 망토를 볼 수 없는
색맹이 되고프다.
사랑하고, 받고픈 마음마저
버릴 수는 없잖은가...

'사랑과 이별의 시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이여  (0) 2009.05.23
봄이 온다면   (0) 2009.03.05
비내리는 밤에  (0) 2009.03.05
연가  (0) 2009.03.05
비오는 하늘 보기   (0) 2009.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