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1

2004년 1월4일 춘천여행

末人 2005. 5. 25. 10:54
산문-춘천여행 | 사랑과 이별의 시
2004.01.04



벌써 9일 째..
나를 집구석에 끌어 앉혀놓은 근육파열이란 넘 때문에
옴싹달싹 못하고 지낸지 벌써 9 일이란 긴 시간이 흘렀다.
답답하다.
어딘가로 내달리고 싶어만 진다.
다리를 잡아 늘리고, 더운물로 지져대고,
바늘로 쑤셔대며 소위 말하는 물리치료로 아침을 보낸 후
중천으로 가는 해를 바라보며 차에 올랐다.
차 안은 봄날처럼 따사롭기만하다.
강물도 얼음을 잊은냥 꿈결처럼 흐르고 있다.
얼마만큼의 서울을 벗어나자
간밤에 내린 잔설들에 의하여
온 산야를 하얗게 뒤덮고 있는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예봉의 불뚝솟은 봉우리에도,
검단의 그늘진 산자락에도
화야산,고동산의 마른 나무 사이마다
하얀 눈들이 살프시 덮혀있다.
강변의 허름한 주막에 들러
어름이 둥둥 떠 있는 동치미국수로 요기를 달래고
다시 강가를 달린다.
간밤에 비가 내린 서울과는 달리
빈 들판에도
밋밋한 산등성이에도 눈들이 내려 쌓여있다.
서설의 풍광이 널린 산야를 사방에 두고
달리는 기분은 또다른 감회를 준다.
남들은 신년이라며 나름대로들
즐거움을 찾아 움직였을 터인데
나는 어쩌다 이 모양이 되어
의미없는 년말년시를 보내야만 했을까하는
따분하고 답답한 생각에
문득 끊었던 담배를 찾아
습관적으로 웃주머니를 더듬어본다.
엷은 햇살에 눈이부신 들판...
그냥 아무런 목적도 없이
도로를 달리니
마음은 시원한데 의미는 느낄 수 없다.
얼마를 달렸을까?
막히지 않은 경춘국도를 달려 춘천으로 들어섰다.
실로 3년만에 와보는 겨울 춘천이다.
외곽을 돌아 다시 또 다른 외곽,
천사의 집에는 아늑한 온기 속에서
길잃은 삶의 황혼들이
한낮인데도 어두운 저녁을 맞고 있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흐르는 사이를 뚫고
간간히 대형 티브이의 소란만이 들려올 뿐,
온도는 아늑했지만 어딘가 한기가 흐르는 듯 하다.
피골이 상접한 만로의 힘없는 손에는
모든 삶의 욕심을 놓아버린
좌절과 포기만이 어둠처럼 매달려 있었다.
가슴을 울컥거리게 만드는 저들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겨울이 녹아내리고 있는 햇볕 속으로 나왔다.
물어물어 명동으로 들어선다.
강원일보를 바라보며 좌회전,
넓고 길다란 지하에 마련된 음습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걸어 올랐다.
뒷골목을 들어서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닭갈비집들이 나타나고
저마다 손님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드리려는 호객행위가
처연하리만치 여기저기에 펼쳐져 보인다.
한패거리의 젊은이들을 따라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집으로 끼어 묻혀 들어갔다.
모두 원조라는데
나름대로 터득한 철학,
집이 허름해야 되고,
손님이 많아야 되고.
간판이 작거나 낡아야 오래된 원조라는 나름대로의 공식을 앞세워
찾아든 집이다.
원조긴 원조인가?
정말로 너무 많은 양이다.
미처 다 먹지도 못하고 절반 가량을 남겨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내가 왜 춘천을 왔는지를 잠시 잊었다.
어느 해 겨울
열차에서 내려 택시를 집어타고 소양호 선착장,
늘어선 빙어 횟집을 찾던 일들,
오봉재를 넘어 추곡약수터 부근
강가 민물 매운탕집에서
소주를 퍼마시던 일들,
마구 비집고 파고드는 바람을 막아 주려고
그의 오버 깃을 올려주던 그해 겨울이
문득문득 떠올라왔다.
그와 걷던 길이 지금 어디 쯤인지는 잊은지 오래지만
문득
겨울이면
생각이 나서 한번 쯤은 오고픈 곳이 춘천이다.
파라오 주변,
호젓한 산길,
말은 없어도 함께 있어 좋았던 사람...
배터지게 먹은 닭갈비가 못내
가슴에 걸리는 듯
속이 답답해져 온다.
어서 뜨자.이 춘천을...
다시 시동을 걸고
눈이 녹아내려 질척이는 도로를 달렸다.
무언가 개운치 못한 감정들이
마음 속에서 질척거린다.
차는 바람을 가르며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