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1

우산과 노인

末人 2005. 12. 2. 11:18

한쪽이 튿어진 우산을 펴들고
노인네는 바느질을 열심히 해댔다.

아니, 천지가 우산인데 왜 궁상을 떨고 있어요?

라는 말에도 아랑곳없다.
저녁 무렵
비도 내리지 않는데 노인네는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신다.

얼마 후
다시 들어온 노인네의 손엔 들고 나갔던 우산이 그냥 들려 있다.

노인네가 망령이 나셨나?
비도 안오는데 웬 우산을 들고 외출을..
그것도 평소 잘 하지도 않던 저녁 외출이라니..

노인네의 이런 행동은 며칠을 두고 계속되었다.

그러한 행동을 이상히 여기던 차
도무지 견딜수 없어 물었다.

아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비도 안내리는데 왜 날마다 우산을 들고 외출을 하느냐고
그것도 다 늦은 저녁 시간에..

그제서야 노인네가 고백(?)을 하신다.

얼마전 집에서 좀 떨어진 은행을 다녀오다가
그만 비를 만나셨단다.
좀처럼 그칠 것 같지도 않고하여
그냥 비를 맞고 걷고 있는데
근처 골목에 주차해 있던 어느 차 문이 열리더니
풍채 좋은 신사 한 분이 우산을 건네며

할머니, 이 우산이라도 쓰고 가세요.
노인네가 비를 그렇게 맞고 가시면 병나십니다.

비록 한쪽 귀퉁이가 고장났지만 쓸만한 우산이었고
덕분에 집에까지 잘 올 수 있었단다.

바느질 몇번만 하면 얼마던지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것을 고친 후
그 차가 주차되어 있었던 그 자리를 찾아가셨단다.
분명,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 같았는데
그 날 이후로 그 차를 도통 만날 수가 없다는 거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그 늦은 시간에 만날까해서
우산을 돌려주려고 갖고 나가보았지만
만날수가 없다는 거였다.

에구,
그냥 버리는 우산이었던 걸 가지고 뭘 그래요?
라는 며느리의 말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며 버럭 역정을 내신다.

너는 어찌 사람의 고마운 인정을 그렇게 깍아내리려 하냐며...

그 분이 어머니께 선물하신 거예요.
그냥 쓰세요...
동네 분도 아닌 것 같고
이제 그만 찾아 나서세요...

비오는 날
다시 한번 찾아 나서보겠다며
그날부터는 외출을 하지 않으셨다.

출근해 있는데
오늘 비가 온다....

지금 쯤 노인네는 우산을 들고 나갔을 거고
그 신사분은
어디선가
좋은 일을 했던
그 비오던 날을 기억하며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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