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인의 재회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오후가 되도 그치질 않고 내리고 있었다.
멍하니 앉아 쇼윈도우 밖으로 보이는 거리를 봤다.
물기가 번지는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도회지의 비오는 날은
언제나처럼
더욱 회색빛으로 뒤덮혀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연달아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행렬을 보며
아, 끈질기게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습도높은 매장 구석을 두리번 거리며
일회용컵에 일회용 커피봉지를 찢어담고
냉온수기의 더운물을 붓고는 찢은 커피봉지를 뚤뚤말아
커피를 저었다.
식욕을 자극하기 좋을 만큼의 김이 올라주었고.
식기를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김은 하얀 비상을 해댔다.
컴을 열고
비와 어울릴 노래를 찾아 볼륨을 높혔다.
이제
비오는 유리창 밖 풍경과
하얀 김이 오르는 커피잔과
그리고 음악과
빗소리까지 모두 갖추었다.
두어모금 커피를 마시고 하늘을 봤다.
짙은 어둠의 모습이
더 많은 하강을 준비하고 있는 듯 무거워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얼마인지도 모를 한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시선 둘 곳조차 잃은체 있었다.
투둑...
엷은 바람에
가로수 잎새가 흔들리며 몇방울의 비를 털어내고 있었다.
문득,
무언가 하고 싶었다.
아니,....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강박관념이
머리를 뒤덮어 왔다.
"잘가-,
나도 잊지는 못할 거야."
환청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분명 바로 곁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핸폰을 열고 숫자를 누르고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그리고 그니가 아닌 그를 만났다.
" 소주 마실까?"
이 말이 의외라는 듯 할말을 잃고 물끄러미 올려다 본다.
우산 끝에 수많은 물방울 들을 묻혀갖고 들어가
목로집 비좁은 입구에 털어 놓는다.
빈대떡을 지져대는 기름 냄새가 무거운 기압골을 타고 코끝에 밀려온다.
맨구석,기대앉기 좋은 벽쪽에 자리를 잡았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듯 그도 촉촉해 보인다.
오늘따라 눈빛이 너무나 맑다.
물빛 웃옷 속에 감추어진 그의 육감어린 곡선이 오늘따라 선명하다.
어두운 동굴 속,
희미한 불빛하나,
왜 음악은 없는지..
선사시대같은 꾸밈이 술맛을 더해준다.
사랑에 최면을 걸려는 듯 빗소리는 고즈녁히 들릴듯 말듯하다.
"보고 싶지두 않어?"
이런 말을 기대했지만
"아주 재미가 좋겠지?"였다.
듣고픈 말은
"나도 무척 보고 싶었어."였지만
"이구! 잘 놀아봐"뿐이었다.
그냥 혼자 마시기 어색해서
서로 잔을 갖다 부딪치곤 잽싸게 들이키곤 했다.
그렇게 반복되어진 시간을 보내고
비오는 거리를 두개의 우산을 편 채
그렇게 벌어진 거리 속에서 걸었고
산림 우거진 비 포장도로를 지나
물오리가 떠있는 호숫가를 스쳐걷고는 또다시
술집을 찾아 들었다.
"나 어쩜 내일부터 핸드폰 내다 버리고 살지도 몰라"
그런 인사를 끝으로 그날은 돌아왔다.
절대로
그는 핸드폰을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런 허전한 끝에
내 몸은 무게를 잃고 있었다.
잡념도,고뇌도,갈등도,체면도 모두모두 빠져나갔고
나는 한줌 바람에라도 날아가 버릴
검불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을 한번 건너면 될걸 건너간 강을 또다시 건넜다.
백화점이 있는 거리의 현란한 조명들은
흡사 흔들리고 있는 내 맘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 졌고,
거리의 차들은 더욱 거칠게 질주해 가는 듯 보였다.
우산과 사람과 불빛과 빗줄기가 어지러울 정도로 뒤엉킨 그 속을 비집고
바로 그니가,
그니가 나타나고 있었다.
미소를 머금었는지,
우수에찬 모습인지,
반겨하는 밝은 표정인지
나는 정면으로 그니를 바라보기 싫었다.
자신의 작은 우산을 접고 그니는
폴싹 내 우산 속으로 뛰어들었다.
웃고있었다.
"오랫만이예요..^^"
오랫만이었다.
단 한줄도 듣고싶지도 않을 사연들이
그니의 3년세월을 치렁치렁 휘감고 있었다.
"그렇군!"
그렇지.오랫만은 틀림없는 오랫만이었다.
허지만 오랫만치고는 냉냉한 만남 순간의 모습들을
우린 짓고 있었다.
레스트랑 "젖고있는 오후"엔 금시라도 꺼져버릴 것같은 촛불이
구원의 손을 흔들듯 타고 있었다.
"비오는 날은 가벼운 탱고를 들어야해!"
그러나 우리의 침묵위로 흐르는 건 G선상의 아리아였다.
"나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겠지?"
궁금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니는 그걸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본래 무심하고 차가운 사람이었다는거, 알고 있었어."
무심?
그래 무심했기에 이별의 시 나부랭이나 휘갈겨대며 살았지.
서러운 날,
밝은 태양을 주지,비를 주다니...
그래, 그래그래 하늘도 무심한거야.
나만 무심한 건 아니야..
너무도 차가운 냉혈동물이었기에
날마다 열 좀 보충해보려고
불붙는 술잔을 기울였지.
지금도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날려져 온거야.
서럽고 사무칠 때마다 손가락은 눈물을 만들어 시를 토해냈지.
너는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았지.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거리, 그 맥주집, 그 음악을 찾았지.
다 써버려 더 나올 것도 없는 눈물을 보여달라는거야?
무심하군.
차갑군.
너무 질겨,나는 너무 질겨..
그만,그만 접어야 해,,,
일어섰다.
돌아섰다.
20대의 감상으로 마냥 앉아 있긴 싫었다.
돌아서 오는 길에도 비는 그치질 않았다.
남아서서 멍하니 배웅아닌 배웅을 하던 그니의 모습에서도
짙은 우수가 서려있음을 봤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기약없는 헤어짐을 만들고 오면서
퍼붓는 빗줄기가 내 가슴안에서 회한이 되어 범람하고 있음을 느낀다.
재회--,
재회였다.
드라마틱한 그런건 아니었지만
달려가고 팠고
달렸고 만났다.
그리고 무슨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돌아왔다.
살면서
가끔
꿈 속에서나 잠시 보았던
평온한 풀밭같은 정경이라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아련한 추억,
그래, 그렇게 간직하며 가자.
아무 것도 아니다.
내 삶의 어느 한 구석을 수 놓았던
작은 삽화라고 생각하며 살자.
어제처럼 오늘도 하루는 열렸고
나는 그 열린 공간 속에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말인)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오후가 되도 그치질 않고 내리고 있었다.
멍하니 앉아 쇼윈도우 밖으로 보이는 거리를 봤다.
물기가 번지는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도회지의 비오는 날은
언제나처럼
더욱 회색빛으로 뒤덮혀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연달아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행렬을 보며
아, 끈질기게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습도높은 매장 구석을 두리번 거리며
일회용컵에 일회용 커피봉지를 찢어담고
냉온수기의 더운물을 붓고는 찢은 커피봉지를 뚤뚤말아
커피를 저었다.
식욕을 자극하기 좋을 만큼의 김이 올라주었고.
식기를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김은 하얀 비상을 해댔다.
컴을 열고
비와 어울릴 노래를 찾아 볼륨을 높혔다.
이제
비오는 유리창 밖 풍경과
하얀 김이 오르는 커피잔과
그리고 음악과
빗소리까지 모두 갖추었다.
두어모금 커피를 마시고 하늘을 봤다.
짙은 어둠의 모습이
더 많은 하강을 준비하고 있는 듯 무거워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얼마인지도 모를 한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시선 둘 곳조차 잃은체 있었다.
투둑...
엷은 바람에
가로수 잎새가 흔들리며 몇방울의 비를 털어내고 있었다.
문득,
무언가 하고 싶었다.
아니,....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강박관념이
머리를 뒤덮어 왔다.
"잘가-,
나도 잊지는 못할 거야."
환청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분명 바로 곁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핸폰을 열고 숫자를 누르고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그리고 그니가 아닌 그를 만났다.
" 소주 마실까?"
이 말이 의외라는 듯 할말을 잃고 물끄러미 올려다 본다.
우산 끝에 수많은 물방울 들을 묻혀갖고 들어가
목로집 비좁은 입구에 털어 놓는다.
빈대떡을 지져대는 기름 냄새가 무거운 기압골을 타고 코끝에 밀려온다.
맨구석,기대앉기 좋은 벽쪽에 자리를 잡았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듯 그도 촉촉해 보인다.
오늘따라 눈빛이 너무나 맑다.
물빛 웃옷 속에 감추어진 그의 육감어린 곡선이 오늘따라 선명하다.
어두운 동굴 속,
희미한 불빛하나,
왜 음악은 없는지..
선사시대같은 꾸밈이 술맛을 더해준다.
사랑에 최면을 걸려는 듯 빗소리는 고즈녁히 들릴듯 말듯하다.
"보고 싶지두 않어?"
이런 말을 기대했지만
"아주 재미가 좋겠지?"였다.
듣고픈 말은
"나도 무척 보고 싶었어."였지만
"이구! 잘 놀아봐"뿐이었다.
그냥 혼자 마시기 어색해서
서로 잔을 갖다 부딪치곤 잽싸게 들이키곤 했다.
그렇게 반복되어진 시간을 보내고
비오는 거리를 두개의 우산을 편 채
그렇게 벌어진 거리 속에서 걸었고
산림 우거진 비 포장도로를 지나
물오리가 떠있는 호숫가를 스쳐걷고는 또다시
술집을 찾아 들었다.
"나 어쩜 내일부터 핸드폰 내다 버리고 살지도 몰라"
그런 인사를 끝으로 그날은 돌아왔다.
절대로
그는 핸드폰을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런 허전한 끝에
내 몸은 무게를 잃고 있었다.
잡념도,고뇌도,갈등도,체면도 모두모두 빠져나갔고
나는 한줌 바람에라도 날아가 버릴
검불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을 한번 건너면 될걸 건너간 강을 또다시 건넜다.
백화점이 있는 거리의 현란한 조명들은
흡사 흔들리고 있는 내 맘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 졌고,
거리의 차들은 더욱 거칠게 질주해 가는 듯 보였다.
우산과 사람과 불빛과 빗줄기가 어지러울 정도로 뒤엉킨 그 속을 비집고
바로 그니가,
그니가 나타나고 있었다.
미소를 머금었는지,
우수에찬 모습인지,
반겨하는 밝은 표정인지
나는 정면으로 그니를 바라보기 싫었다.
자신의 작은 우산을 접고 그니는
폴싹 내 우산 속으로 뛰어들었다.
웃고있었다.
"오랫만이예요..^^"
오랫만이었다.
단 한줄도 듣고싶지도 않을 사연들이
그니의 3년세월을 치렁치렁 휘감고 있었다.
"그렇군!"
그렇지.오랫만은 틀림없는 오랫만이었다.
허지만 오랫만치고는 냉냉한 만남 순간의 모습들을
우린 짓고 있었다.
레스트랑 "젖고있는 오후"엔 금시라도 꺼져버릴 것같은 촛불이
구원의 손을 흔들듯 타고 있었다.
"비오는 날은 가벼운 탱고를 들어야해!"
그러나 우리의 침묵위로 흐르는 건 G선상의 아리아였다.
"나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겠지?"
궁금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니는 그걸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본래 무심하고 차가운 사람이었다는거, 알고 있었어."
무심?
그래 무심했기에 이별의 시 나부랭이나 휘갈겨대며 살았지.
서러운 날,
밝은 태양을 주지,비를 주다니...
그래, 그래그래 하늘도 무심한거야.
나만 무심한 건 아니야..
너무도 차가운 냉혈동물이었기에
날마다 열 좀 보충해보려고
불붙는 술잔을 기울였지.
지금도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날려져 온거야.
서럽고 사무칠 때마다 손가락은 눈물을 만들어 시를 토해냈지.
너는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았지.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거리, 그 맥주집, 그 음악을 찾았지.
다 써버려 더 나올 것도 없는 눈물을 보여달라는거야?
무심하군.
차갑군.
너무 질겨,나는 너무 질겨..
그만,그만 접어야 해,,,
일어섰다.
돌아섰다.
20대의 감상으로 마냥 앉아 있긴 싫었다.
돌아서 오는 길에도 비는 그치질 않았다.
남아서서 멍하니 배웅아닌 배웅을 하던 그니의 모습에서도
짙은 우수가 서려있음을 봤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기약없는 헤어짐을 만들고 오면서
퍼붓는 빗줄기가 내 가슴안에서 회한이 되어 범람하고 있음을 느낀다.
재회--,
재회였다.
드라마틱한 그런건 아니었지만
달려가고 팠고
달렸고 만났다.
그리고 무슨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돌아왔다.
살면서
가끔
꿈 속에서나 잠시 보았던
평온한 풀밭같은 정경이라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아련한 추억,
그래, 그렇게 간직하며 가자.
아무 것도 아니다.
내 삶의 어느 한 구석을 수 놓았던
작은 삽화라고 생각하며 살자.
어제처럼 오늘도 하루는 열렸고
나는 그 열린 공간 속에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말인)
출처 : 말인의 재회
글쓴이 : 末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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