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인이 쓰는 꽁트)
마누라의 개런티
참으로 기이한 노릇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녀석이 죽다니...
그는 퇴근 시간이 되자 마자 황급히 서둘러 회사를 빠져 나왔다.
봉급날이 얼마남지 않은 탓도 있지만
늘상 그래 왔듯이 비상급 마저 탈탈 털어쓴 터라
타이피스트 미쓰 정 한테 일금 십만원을 빌어 조위금으로 준비하고
택시를 집어 탔다.
담배 한가치를 태워 물고서야 그는 녀석을 다시 떠올릴 수가 있었다.
30대 초반,
그것도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선 피부색도 까무잡잡한데다
학교 땐 축구선수까지한데다
팔다리 근육도 유달리 발달된 건강한 녀석 이었는데
두 달전 수출 상사를 하다 때려 치워버린 뒤로
호의호식 하며 기원이나 들락 거리며 놀던 그가죽으리라곤
두 시간 전 그의 부인한테서 전화받기 전 까지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녀석이 막상 죽었다니바로 어제의 일이
가슴에 한이 되어 걸려왔다.
어제였다.
그가 녀석의 전화를 받은 시간은 거의 퇴근을 몇분 앞둔 무렵이었다.
"야! 촉새야, 너 퇴근 시간 다 됐지?"
"그래 지금 막 하려는 참이다."
"얌마,촉새야,너 오늘 술 한잔 안살래?"
"술?"
"그래 임마,
너 내가 실직하고 들어앉은뒤로 위로 술 한잔 안 사기냐?
내 실직은 순간이고 우리의 우정은 영원한 거 아니냐?"
"얌마. 나 지금 돈 없다. 봉급때가 가까왔잖니"
" 핑계대지마. 사기 싫으면 사기 싫다고 해 임마"
"그게 아니고 지금 주머니 사정이 그렇게 됐다."
"너 그 말 진정이냐? 알았어.
내가 이삼일 내로 네 술 못 얻어 먹으면 성을 갈겠다.임마. 두고봐"
그러던 녀석이 졸지에 변을 당하다니....
도무지 믿어 지지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그는 두시간전 녀석의 부인전화를 받고
얼떨떨한 기분에 황급히 물었었다.
"촉새씨 한테 술 한잔 얻어 마시겠다고 나가시다 그만 트럭에 치어서......"
녀석의 부인은 금새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음성이었다.
그렇다면 더더구나 자신이 후회스러워졌다.
차라리 어제 내가 긋고 마시는 집에라도 가서 한잔 사 줬다면
이런 변고는 없지 않았을까?<
무슨 면목으로 녀석의 부인을 대한단 말인가?
그는 빨리 녀석의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한 미안함 때문에
오히려 택시가 너무 빨리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막다른 골목 끝의 녀석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대문 밖에서 본 녀석의 집은 불이 꺼져 있는체
예전과 변함 없이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앗차!"
그는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시신은 병원에 있겠지.
깜빡하고 어느 병원인가를 안물어 봤군"
그는 대문 밖에 서서 난감함을 느끼며
어디로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를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가까게 지내던 친구지만
불꺼진 녀석의 집 앞에 서 있는게 조금은 무서워 졌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촉새야 이놈아, 부조금은 갖고 왔겠지?
그 돈이면 오늘 저녁 쐐주 한잔 하겠구나?"
껄껄 웃는 웃음 소린 분명 녀석이었다.
순간 그는 심한 안도와 허탈감이 가슴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옛끼 인석아, 사람을 놀려도 유분수지"
"그건 그렇고 우리 마누라 연기도 일품이지?
가서 삼겹살하고 쐐주나 몇병 사갖고와 .
그리고 우리 마누라 좋아하는 돼지 족발도 하나 하고...."
"예끼 인석아"
"우리 마누라 개런티는 줘야 할거 아냐? 하하하"
"알았어 임마"
피식 웃으며 골목을 벗어나는 그의 등 뒤에서
카랑카랑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 불켜도 돼.
촉새녀석이 당신 좋아하는 돼지족발 사러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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