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

예봉산-2007년 8월26일 일요일

末人 2007. 8. 27. 12:18

왕십리전철역에서 덕소역까지는 30분이 걸린다.
9시4분차나 9시23분차를 타면 10시 이전에 덕소역에 도착할 수 있다
용산역에서 덕소까지는 약 45분 소요

도곡리에서 부터 시작되는 예봉산을 오르려면
꽃피는 고향마을 같은 곳.
어룡마을을 통과해야만 한다.

어룡마을이란 이름은
고기 어(魚)에 용 용(龍)으로
도선비기에도 사해의 어룡이 한강으로 모여든다고 했는데,
이중 한강의 어룡이 마을을 관통해 흐르고 있는 궁촌천을 따라 올라와
하늘로 승천했다 해서 붙여진 것으로,
이곳은 도곡리 버스종점에서 굴다리를 지나
약 15여분 만 걸어 들어가면
넓게 초록으로 펼쳐진 들녘과
고즈넉한 예봉산이 반긴다.

예봉산 아래 포근히 안겨 논과 밭,
공방, 연못, 돌담길이 잘 어우러져
남양주 와부지역 마지막 남은 고향이라고 불리는 곳, 어룡마을.
마을 입구에 접어들면
우선 마을이 조용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따금 예봉산으로 향하는 차들이 오가기는 하지만
와부지역 여느 도심에 비하면 소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예봉산을 오를 때
차를 가지고 산 입구까지 가는 사람들을 농담 삼아 '바보'라고 부른다.
몇 십분 동안 마을 골목을 걷는 '특혜(?)'를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도곡리 어룡마을 입구에서부터
마을을 지나 예봉산으로 오르는 코스는
도시와 농촌, 산촌의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천혜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봉산 입구에 위치해 있는 어룡마을은
MBC전원일기를 촬영했던 곳으로
돌담과 낮은 주택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용하고 아담해
글을 쓰거나 도자기를 빗는 등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특히 영원한 명가곡 '비목'을 작시한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도
이곳에서 30년째 자 자리를 잡으면서
'이미시문화서원'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문화를 전파하고 있기도 하다.

이 어룡마을로 가는 88-2번 마을버스는
매시 정각에 덕소역에서 출발한다
소요시간은 10여분이다.
또한 어룡마을에서 덕소역을 가는 버스시간은 매시 15분에 출발한다.
이 마을버스 교통편만 알아도
예봉산 산행을 하는데 있어
엄청난 도움이 된다.

10시정각
나는 이 마을버스를 탔다.
아침부터 푹푹 쪄대는 폭염이 벌써부터 등에 땀을 쥐어 짜내고 있다.

얼린 캔맥을 4개나 준비했지만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아 산 입구 매점식당에서 두 개를 더 샀다.
비싸다,2000원 씩이나 받는다.

들머리를 향하는 길 오른편엔 수량도 풍부한 계류가 철철 넘쳐 흐르고 있고
그늘지고 편한 곳마다
행락객들이 벌써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고 있다.

계류에 타올을 적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산을 오른다.
산객들도 별로없는 한가한 산길이다.
능선길엔 멋진 아름들이 노송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놓고 쉬어가라 유혹한다.
얼린 물을 마시며 숨고르기를 하며 내려다 보는 한강이 그림처럼 멋지다.

능선길은
몇 년 전 갔었던 연인산 산길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넓게 닦여져 있다.

전망좋은 바위에 걸터앉아
얼린 캔맥을 하나씩 따서 들이킨다.
언제나 그렇듯이
산길에서 마시는 한모금의 술은 짜릿한 흥분 그 자체이다.
온몸을 타고 스며드는 찬 맥주 한모금이
벅찬 희열로 느껴져 온다.

한동안 쉬고 있노라니
바람은 별로 없었지만 서늘한 느낌이 살갗에 느껴진다.
적갑산을 지나 막걸리파는 곳을 지나 철문봉에 올라
사진 한장 찍고 예봉산 쪽으로 경사면을 내려가다가
넓고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오찬을 했다.

70세 가까이 되어 보이는 노인 두 분이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오찬을 시작하더니
내게 막걸리며 족발 등등을 권한다.
극구 사양하는데에도 권함을 멈추지 않기에
탁주 한잔을 받아 마셨다.

두 분은 친형제란다.
삼형제가 늘 함께 전국 명산이란 명산은 다 다니곤 하는데
오늘 막내는 업무가 있어 못왔단다.

년로하신 형제분끼리 산행을 하며
또 함께 오찬과 한잔 술을 나누며 담소하는 모습이
여간 다정스러워 보이질 않는다.
부럽다.

기다리는 모님들 일행은 아직도 적갑산 쪽이란다.
한시간 반을 기다리다 지쳐 먼저 발길을 옮겼다.
예봉산 정상에서 또 한 두장의 사진을 찍고
유명한 예봉산 정상 탁주 파는 곳 바로 앞을 통과하여
180미터를 내려오다가
이정표 뒷쪽의 희미한 등로를 따라 하산을 서두른다.

인적이 없다.
늦여름 매미소리가 더욱 거세게 들려오고
이름모를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팔뚝까지 스치는 풀들을 헤치며 30여분을 내려오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돌과 바위가 깔린 계곡길을 따라 상팔당 쪽으로 한동안 내려오다가
쉬기 좋은 물가에 자리를 잡고 베낭을 벗었다.
시원한 계곡물을 머리 가득 뒤집어 썼다
시원하기 이를데 없다.
신발을 벗고 물속에 발을 담그니
오늘 비오듯 땀을 쏟아내며 걸었던 피로가 한방에 사라지는 듯 하다.

아직도 덜 녹은 캔맥을 따서 마셨다.
아이스 커피도 한 잔...

사는 게 뭔가
이렇듯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것을..
왜 그렇게 아파하고 부러워하고 갖고 싶어하는 것일까?

청솔마을을 지나 강변까지 내려왔다.
저녁이 가까와사인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작은 자갈로 꾸며진 예봉정 원탁에 둘러앉아
작은 물고기 튀김을 안주해서
시원한 호프 잔을 기울인다.

한패거리의 산객들이 빠져 나간 가든엔 우리 밖에 남은 이가 없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고
수은 등불이 밝혀지고서도 한동안 술잔을 기울였다.

흐린 하늘 덕분에
지는 노을을 볼수는 없었지만
함께한 사람들의
따사한 인간미는 마음껏 느낄 수 있었던 하루...

작은 시골마을의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듯
나는
내일 내게로 달려올지도 모를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가 되어
올라탄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아침
덕소행 열차에 오르던 때부터
지금
이 버스를 탔을 때까지의 오늘 일들이
하나하나 가슴에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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