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에
돌아 볼 여유는 없지만
돌아가고픈 어제는 갖고 있지.
허옇게 빛바래서 돋는
반백의 머릿결을
검은 약물로 염색하고
몇번이고 거울을 보며
아직은 아니라고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다고
무릎을 굽혔다 펴보는데
오는 계절을 기다리기 보다는
멀어져가는
밟아온 길을 자꾸만 뒤돌아 보게되는 건
잎새지고 바람부는 가을 밤 탓일까?
썩고 바람들고
부숴져 뽑아버린 허전한 잇몸에
의치를 심는 일,
흐물거리다 삼킬 수도 있지만
잘근잘근 씹어대던
그 맛이 그리워
패스트 푸드,
발음조차 힘든 거 외면하고
뒷전으로 밀린
탁주 집 기름끼 낀 목로 찾아
좁은 길 가고픈 거,
이미자가 울고
나훈아가 절규하던 골목
남정임이 고은아가 문희가
이뻐 보이려고 몸짓하던 거리
달걀이 둥둥 떠다니던 모닝커피가 있던 목조 다방
어설픈 사랑이 스치다 간 거리
詩想을 줍던 마포강변
이 밤에 가고픈 거,
휠터 없는 백조담배 꼬나물고
어서 여기까지 오고팠는데
여기서 다시
거기로 가고픈 거
약물 바르지 않아도 될
검은 머리가 있어서일까
삐걱거리는 의치가 불편해서일까?
조락하는 물든 잎새가
잠든 세월을 깨우는 가을 밤이면
누구나
한번쯤
어제를 보고파 하는 것
어찌 태어나고
어찌 자랐고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만나며 살아왔는지를..
어느 젊은 날
가을 밤에 만났을 것만 같은 바람이
이 밤에도 부는데
나는 어디로 가고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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