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의 시 1

엄마와 어머니

末人 2001. 10. 5. 11:32



(엄마와 그린 가을 수채화)



엄마 곁에만 가도
엄마에게선
젖내음이 납니다.
바로 아래인 내 밑의 아우가 생기게 되는 6년동안이나
난 엄마를 떨어지기 싫어
엄마 젖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런 찰거머리 같은 자식을
어떻게 기르느냐고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 엄마에게
측은하게 묻곤 했습니다만
우리 엄마는
당연한 것인냥
내게 젖을 내주곤 하셨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물고 지낸 엄마 젖이었기에
지금도
엄마 곁에만 가면
엄마 젖 내음이 나는 듯 합니다.
피난 나온 탓에
그 어려운 피난 생활을
충청도 장돌뱅이로 살아야 했던 때에
무거운 장 짐 머리에 이고
등짝엔
엄마를 떨어지기 싫어하던 나를 또 하나 짐지으시고
칙칙폭폭 대는 석탄차에 매달려
5일장마다 쫓아 다니시던 울엄마...
엄마엄마 너무너무 많이 불러
지금도
엄마라 불러야만 울 엄마 같아
좀처럼 어머니라고 부르면 어색해
그렇게 불러 드리지 못합니다.
엄마는 날이면 날마다
등짝에 구슬땀 흘리시며 나를 업고 다니셨는데

어쩌다 큰 맘이나 먹어야
자가용 뒷자리에 태워 모시고 나가곤 합니다.
평안남도 강동 군민회--,
해마다 개천절날
엄마는 나이 많으신 고향 오빠 친구들을 만나시러
고향분이 설립하신 상계동
재현 중고등학교 교정을 가시곤 합니다.
서른 몇번 째나 했는데도 나는
오늘 겨우 두 번째,
엄마를 그 곳에 태워 모셔다 드리고
문득
엄마 젖꼭지를 물면서 뒷잔등에서 보낸 6년을 돌아 봤습니다.
나는 엄마를 그대로 엄마라 부르는데
엄마는
나를 지금은
아범이라 부르십니다.
울며 보채고 떼 쓸적마다
젖을 물려주시던 울 엄마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발버둥치며 떼쓰다 고무신발 한짝을 잃어버리던
나를
아범이라 부르십니다.
청아한 시월
며느리의 손에 이끌려 무대 한가운데로 나가
빠른 디스코 반주에 몸을 흔들어 대시는 울 엄마를 보니
눈물이 나도록 고마와지네요.
고향,형제부모 버리고 살아오신 시름
가슴에 시름인냥 안 담으시고
저리도 흥겨워 노구를 흔들어 주시니
우리 엄마, 디스코는 언제 배우셨지?
고마와요, 고마와요. 흔들 수 있는 당신의 건강이 정말 고마와요.
돌아오는 차안에서
엄마는 가방속에서
소주병 하나를 꺼내보이십니다.
아까 그 군민회에서 한병얻어 담으셨데요.
술 좋아하는 아들 주려고...
아범아,
지난주 교회 기도원에 갔는데
뒷산 밤나무 아래 밤들이 너무 많이 떨어져 있더구나
기도원에 한번만 좀 태워다 주려무나.
손주들 밤 밥이나 해주게...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날마다 밤이 밥속에 묻혀 올라온다 했는데
엄마가 지난주 기도원 가셨다 주워 오신 밤이라고 안식구의 설명입니다.
줍기도 쉽지 않다더군요.
풀 숲을 헤치고 가시 넝쿨 속으로 들어가야 겨우 몇개씩 떨어져 있다는 군요.
그래요, 가요, 갑시다, 태워다 드릴게요.
그깐 시장에서 사면 3000원이면 될텐데
엄마가 주워오신 밤이 더 먹고 싶어지네요.
10월 7일에도 가세요.
효창공원에서
이북 5도민 체육대회가 있데요.
지하철 공덕역에서 내려 택씨타고 가시라 해도
걸어가시겠다네요.
택시는 무슨 부자들만 타고 다니는 걸루 알고 계시거든요.
엄마두 이만 하면 부자잖아.
아들이 셋이나 되는데
부자두 한참 부자지요.
그거 택시 한번 탈 돈이면
두부가 몇모인데
우리 식구 몇끼는 반찬할수 있다시는 군요.
맞아요.
그런데
맨날 그딴 계산만 하면
이 세상에 타고 마시고 놀러나 다닐수 있겠어요?
아마
울 엄마는 이 아들이
맥주 딱 두병마시고 15만원 주고 나온적도 있다고 하시면
기절하실거야.
엄마는 엄마나름대로의 삶이었지만
어두워도 형광등을 끄시고 겨우 TV만 켜시고
방이 차도 보일러를 안튼 채
45번인가 무슨 유선방송에서 제공하는
목사님들 설교를 듣고 계시며
음치이면서도 찬송을 열심히 따라하시느라고 애쓰시는 걸 보면
엄마 팔짠가? 라는 생각도 들지만
팔짜는 결코 아니심이 틀림없죠
용돈도
다른 자식들 못지않게 드리는데
그 돈 다 뭐하시는지...
아마
어려운 막내 도와줄려고 어디다 감춰놓으실거라는
안식구의 말이긴한데
그래도
뭐 그리 아둥바둥 아끼시나?
우리,
엄마한테
용돈 저축해 놓으신것 많으면
갈비라두 한번 사달랠까?
하며 안식구와 웃어봅니다.
젖은 6년을 주셨지만
갈비는 안사주실꺼야.
막내 땜에...
내게 주던 그 젖의 사랑을
지금은 옥상위에 몇포기 화분에 심어 놓으신
가을 배추에 물주는 데로
돌려놓으셨나?
과일껍질,음식물 찌꺼기등등 정성스레 썩여
그 배추 밑둥에 흙을 파내고 거름으로 심어주시는데만
온 정성을 쏟으신답니다.
엄마,군민회 잘 다녀왔어?
일본에 있는 외동딸의 전화를 받고는
에고
또 눈물....
엄마,
연속극 해요 연속극...
얼릉 TV 채널을 엄마가 좋아하는 곳으로 돌려드렸죠.
가을 밤은 일찍도 찾아오는군요.
어디선가 한마리 귀뜨라미라도 울어 줄것만 같은데
도회지 콘크리트를
그 작은 넘이 어떻게 뚫고 들어와 울으리....
맞다! 생각났다.
엄마!
우리 다음 주쯤
귀뜨라미 소리나 들으러 야외나 나가요.
기딴 소리나 들으려고 기름값들며 밖엔 쓸데없이 뭐하러 가노?
으~악!
우리 엄마는 역시 우리 엄마야...
그래요 그럼
그 돈으로 두부나 사다 찌게나 끓여 놓고 밥이나 실컷 먹어 봅시다.
아냐...
이것두 실수...
밥 많이 먹긴?
적당히 먹어야지...

우리네 어른들은
우리 어머니뿐만 아니라
모두들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오신탓에
아끼고 사시는데는 이골이 나신 분들일겁니다.
그러면서도
끈끈한 인간적 정이 넘쳐나는 분들일 겁니다.
지금 시대같으면
돈주고 산 분유통이나 꺼내 훌훌타서 아이들에게 던져주면
엄마가 아이에게 먹을 것을 다 해결해 준냥 하겠지만
예전에야 어디 그럴 경제적 여유도 없다보니
그저 몸으로 땔 수 밖에요.
과자 한봉지의 간식도 어려워
자신의 젖으로 해결했던 우리 어머니,
그것도 모르고
마냥 졸라 먹어댔던 자식이 조금은 부끄럽고 후회됩니다만
어쩔 수 없잖아요? 철이 없었으니...
방법은 이제부터라도
어머니 마음 편히 해드리는 것 밖에 더 있겠어요?
오늘
모처럼 어머니의 고향 군민회를 다녀오다보니
마음이 좀 착잡해지는군요.
해마다 군민이 줄어든다는 명예군수님의 말씀도 그렇고
동병상린이랄까?
다 같이 고향을 등지고 나온 분들이라
서로가 서로를 보며 위안을 삼는 모습에서
내 어머니의 늙으심도 새삼 뒤돌아 보게 되는 하루 였습니다.
고향의 봄을 눈물로 열창하시던 어느 노 할머니의 젖은 목소리...
한많은 대동강을 절규하듯 불러주시던 백발이 만발하고 허리가 잔뜩 휘신 어느
노신사의 노래를 들으며
여생이 멀지 않으신 우리 어머니에대하여,
어머니의 모든 속을 남김없이 빨아대던 내가,
이제부터라도
편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는 하루였습니다.
엄마의 젖 힘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거니깐요.
어머니를 엄마라 불렀던 그 때는
우리 엄마 젊으셔서 떼 쓰기 좋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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