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1

[스크랩] 말인의 도봉산

末人 2007. 10. 31. 20:44
도봉산행기

후덥지근하다.
가만 있어도 땀이 날 정도로 후덥지근한 날에
산은 무슨 산이냐는 어르신의 핀잔 따윈 들어오지도 않는다.
모처럼 제강이 산행을 하자는 제의를 해 왔는데
어찌 거역할 수 있으리...
급조된 산행 팀 4명은 도봉산역에서 만나 김밥을 사고 담배도 사고
참외도 몇개 주섬주섬 사서 챙겨 넣었다.
그냥 올라갈 수 있느냐 어쩌냐 하며
여론을 요상한 쪽으로 몰고 가던 한녀석의 유혹에
우리는 에라 모르겠다 쪽으로 기운다.
에라 모르겠다...
우선 한잔부터 하고 보자... 이거였다.
한잔도 못하는 제강을 제외하고
당뇨환자인 J 는 겨우 한잔을 거들었고
나머지 서울 막걸리 두 통을 H 와 내가 다 비웠다.
알딸딸... 과연 산행을 해 낼 수 있을까?
그렇챤아도 심장 때문에 산 오르기를 버거워 하는 내가 아닌가...
코스가 뭔지 어딘지도 모른 체 무대포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당뇨병 J 는 뒤쪽에 쳐져 따라오며
연방 아구구구 아구구구 가쁜 신음을 토해낸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속도를 조금 늦춰주며 앞으로 나간다.
얼마만에 와 보는 도봉산이던가..
도봉산이면 다 도봉산인가?
우리네 처럼 도봉산행을 한답시고 나서서는
조금 오르다 숨차면 그 자리에 털퍼덕 주저앉아
몇분이고 잡담을 해대다간 생각나면 또 일어나 걷다가는
그나마도 싫증이 나거나 힘에 부친 듯 하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옆으로 틀어 걷다 내려 가는 길이 나오면 내려오는
그런 산행을 하니
도봉산이 우리 보고 아니 웃을 수 있겠는가...
오늘은 제발 도봉산을 웃기지 않으려고 마음 먹고 나섰는데
아구야 시작도 하기 전에 막걸리부터 퍼 마셔댔으니
오늘도 도봉산 앞에서 코메디언이 아니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두군데 로프를 잡고 오르는 코스도 지나고
바위 틈새에 질긴 생명의 뿌리 내리고 사는 소나무를 의지한체
급 경사도 오르고 하며 산행이랍시고 그런대로 시늉을 해보고는 이내
밥먹고 가자며 주저 앉은 우리들이었다.
거기까지 짊어 지고 올라온 막걸리 두 통을 또 끄집어 내어
밥대신 그걸로 요기를 채우고 나니
아 신선이 따로 있었던가 우리가 신선이지
코끝을 스치고 이마를 간지러대는 초하의 실바람이
못내 우리를 그곳에 오랫동안 주저 앉힌다.
멀리 산 아래 속세의 번뇌들이 도회지의 매연 속에 가물거리고 있다.
살아온 이야기며 살고 잇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 두 통의 술을 비우는데는 실로 한시간도 더 걸렸다.
다시 일어나
무슨 절 터를 지나 하산길로 접어드니
이마에 땀이 흐른다.
그건 산행을 열심히 한 뒤에 나오는 땀은 아니었을 것이다.
막걸리가 체내에서 땀으로 승화(?)되어 나오고 있는 것일 거다.
그래도 오르기 시작하여
산아래 오리구이 집까지 오는 동안 걸린 시간은 5시간도 더 흐르고 난 뒤였다.
아직도 술에 고파하는 영혼을 백세주 몇잔으로 달래고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듯 거들먹 거리며 집에오니
아!
다리도 아프고 취기는 오르고
온몸은 땀으로 얼룩져 있었으나
찬물 한바가지 뒤집어 쓰고나니
에구야 또 한잔 생각나
어디 같이 마셔줄 넘 없나 열심히 핸폰의 숫자를 눌러보는 하루였다.
출처 : 도봉에서 관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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