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2

노숙자 친구

末人 2014. 4. 8. 15:29

내 친구 중엔 괴짜가 하나 있다.


함께 다니기가 창피할 정도로
괴죄죄하고 없어보이고 옷마저 낡아빠져
가난뱅이요 노숙자요 처량하고 남루하여 불씽해 보이기 그지없는 친구다.


옷같은 것엔 신경조차 쓰질않아
사시사철 똑같은  양복바지에
똑같은  티셔츠에 똑같은 점퍼 차림의 단벌 노숙자 스타일이다.

 

허지만....
그에겐 돈이 많다.
모르긴 몰라도
몇 백억은 될거다.


천여평의 용산 역전 땅을 평당 일억오천 정도씩 보상을 받은 돈이
그에게 있다
노모가 지난해 돌아가시며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인
그에게 고스란히 물려준 돈이다.

 

평생 돈 버는 일이라곤
한번도 해 본 일이 없는
마작에 주식을 즐기는 백수건달이다.

친구라고 하기엔 별로 정스럽지가 못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달리 그와의 관계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노숙자 타잎인 그를
우리는 조금 높혀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불러주곤 한다.


그 흔해 빠진 핸폰도 없이
누구 것인지도 모를 낡은 어느 명함 뒷면에
내 폰번 하나 달랑 적어가지고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생각나면
술 한잔 하자고 전화를 해 오는 친구다.


자신을 옷으로 꾸미거나 포장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남들로부터 노숙자 신분 정도로 대접 받는 것에 통쾌함을 느끼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을 두고 입고 다니는 낡은 단벌 옷..
어떤 땐 단추도 떨어져 나가
앞가슴이 훤히 들여다 보이게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남들이 다 지니고 다니는 신용카드 하나 없이
그  낡은 바지 주머니엔
언제나 십만원 짜리 수표 몇 장에 오만원 지폐가 수두룩하게 있다.

 

예전에 그랜저가 부의 상징일 때
그도 그랜저를 끌고 다녔다.
우리들을 때려 싣고
아무데고 끌고 다니며 자기가 사주고 싶은 곳에 가서
술을 사주곤 했다.

시간이 남아서인지
별로 할 일이 없어서인지
잊어버릴만 하면 몇 달만에 나타나는 친구
나타나서는 대뜸 한다는 말은
그저 술 한잔 하러 가자는 거다.

 

그런 그가
지난번 횡성까지 가서 한우등심을 사 준 이래로 몇 달만에
엊그제 전화가 왔다.
술 한잔 하잔다

만나자마자 무대포로 택시부터 불러 태우곤
기사에게 장어집으로 가자는 거다.

 

요즘엔
장어가 비싸서인지
문닫은 곳이 많기에 장어집 찾기가 그리 쉽지가 않았다


건대역에서 출발한 택시기사가 암사동 장어집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구워라 마셔라 몇 시간
노닥거리고 나와
어디 좋은 데를 가자는 거다.


좋은 데라곤 끼고마시는 룸싸롱이나
벗고 받는 맛사지 집이나
탱탱한 아가씨들이 득실거리는
핸플방이나 뭐 그런 곳일텐데
오랫동안  당뇨를 앓아 온 환자인 그는
도통 여자 따위엔 관심이 없단다.


갈 곳이 마땅챦아 유원지 선상 까페나 가서
커피나 마시자 했더니
순순히 따라온다.

 

배를 향해 걷던 그가 불현듯 유원지 편의점 앞에 멈춰 서더니
야야,돈 없어
여기서 자판기 커피나 빼 먹잔다.
나 원 참 이거야  원...
물주가 그 녀석이니
마다 싫다 할 수도 없이 그냥 주는대로 받아 마셨다.

 

그리고 우리가 한눈을 파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지붕 위로 날아가버린  닭 쫓던 개 꼴 신세가 되어버린 우리...

 

그 언젠가는
일식집을 가자하기에
서너명이 그를 따라 갔다.
신나게 웃고 떠들며
씹고 마시고 삼키며 놀고 있는데
화장실을 간 줄 알았던 그가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이런 환장할 노릇이 어디 있던가.
거액(?)의 술값을
서로의 주머니를 털어서 겨우 맞춰 내고 나온 적도 있다.


그  이후로는
그가 술을 산다 해도 우린
바짝 긴장을 하고 마셨다.
놈이 중간에 도망가지는 않을런지
마시고 술 취해 뻗어버려 나몰라라 택시타고 사라지진 않을런지...


뻥인지 사실인지
현금을 내 눈으로 보질 않았으니
사실여부를 알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근거있는  이야기가 있다.

 

주식투자를 무슨 도리짓구땡 하듯이
좀 날라간다 싶으면 뭉텅 찍어 버리는 그란다
일전엔 무슨 주식을 이만원에 십만주를 사서
팔만원에 팔았단다.
얼핏 계산해도 육십억은 족히 먹고 나왔다는데...
내가 그 돈의 백분의 일이라도 봤어야 믿지.....

 

아무튼
친구도 아니요
친구 아닌 것도 아닌
요상망상한 시대의 돈키호테...

 
핸폰조차 없는 그와 연락 닿는 일은
그가 꼭 먼저 내게 전화를 해 와야지만 된다.

 

나는
오늘도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야,
남당항 새조개가 맛있다는데
그거나 먹으러 가자고 전화올지를...ㅎㅎㅎ

'단상록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꽃과 내넋두리  (0) 2015.07.28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0) 2015.03.28
비가 와요 엄마...  (0) 2013.07.04
동해야~! 제발 나 좀 잡아 먹어라~!!  (0) 2013.03.28
우라질, 내가 대신 장가 갈까?  (0) 201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