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2

동해야~! 제발 나 좀 잡아 먹어라~!!

末人 2013. 3. 28. 11:52

 

 

3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빽빽히 서 있는  해송사이로
바다로 향하는 오솔길이 나 있었고
그 길 위에 우리는 둘이 걸었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푸른 바다 위에
햇살은 파편처럼 부숴져 내렸고
해안을 때려대는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은 바지 뒷 주머니에 찔러 두었던 하모니카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멜로디는 퍼지고퍼져 하늘로 날아 올랐고
하늘 끝 그 어디 쯤에서 녀석은 말없이 누워 있었다.


산소호홉기를 낀 채
몰핀에 아픔을 희석시킨 채
퉁퉁 부은 몸덩어리를
반쯤 일으켜 세워놓은 침대에 기대앉은 채
가쁜 호홉을 내뱉으며
녀석은 이제 세상을 버리려 하고 있었다.
나와의 50년 인연을 끊으려 하고 있었다.

 

바다는 밤새 울었다.
떠나 갈 그 앞에서
내가 쏟을 통곡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는 토요일 저녁무렵
나는 SUV차량의 운전대를 잡았다.


삶의 구속
고리타분한  나날들
따분하고 지겨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저 지독한 무기력의 소굴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무조건 회피하고 싶었다.
도망치 듯 어둠을 깨부수며 달리고 달렸다.
 

동해로 가자...
고래에게 잡혀 먹으러 동해로 가자...
나를 던져 버리는 거다.
나를 소멸시키는 거다...
그리하여 나는 무(無)가 되는 거다.
동해야~!
제발 나 좀 잡아 먹어라~!!

 

달빛도 별빛도 없었다.
젖빛 수은등이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를 밝혀주고 있었다.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상큼한 바다내음이 동시에 밀려온다.


바로 이거야...
내가 그리도 오래 갈망하던 유토피아...
삼킬듯 달려드는 저 파도
그건 바로 성난 고래의 아가리였다.

 

그곳에 친구가 있었다.
40년 전.
뒷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서 불던 친구
몰핀에 의지한 채
삶의 질긴 끄나풀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그 친구가 떠올랐다.
덧없이 흘러온 인생이
왜 이리도 짧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욀칵....
소리라도 토해내고 싶었다.

 

파도가 일렁이는 밤바다..
그 밤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앉아
소주 잔을 비워갔다.


그가 말했다.
"참 좋다~!!"
얼굴 가득 솟아나는 그의 미소 속에서
가슴 가득 차오르는 행복감을 읽을 수 있었다.


창을 열면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바위에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하얀 포말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리의 꿈도 저랬을까?
우리의 사랑도 저럴까?
그건 아닐꺼야....

 

파도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며
눈빛을 바라보며
산소호홉기 속에서 숨을 할딱이고 있을 그를 떠올리며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아낌없이 써 대고 있었다.

 

푸른 물결 위에
파편처럼 부숴져 쏟아지는 햇살을 가슴에 담으며
차는 바닷가 길을 달려 나갔다.


비릿한 바다내음이 났다.
아침 바람에 흔들리고 잇는 해송 사이로
포장도로는 아주 잘 만들어져 있었고
우리는 그 위를 미끄러지 듯 달려 나갔다.

 

호수를 끼고
바다를 차고
모래언덕을 밟으며
그렇게 달렸다.

 

저 멀리
우람하게 뻗어있는 태백산맥에는
겨우내 뿌려진 하얀 눈가루들이
봄이라는 계절을 무색하게 하리만치
하얗게 쌓여 있었다.


저녁무렵
학교 뒷동산에 올라
태백산맥 그 위에
꿈결처럼 펼쳐져 있는 황혼을 바라보며
별이 뜨도록
트럼펫을 불러대던
강릉에서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경포호숫가에
휘두러지게 피어있던 면사포빛 벚꽃들...
경포대 너른 정자에 올라앉으메
어린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달구경 오던 그 해 팔월보름이 생각나더라.

 

술잔 속의 달을 보고 풍덩하려 했다는
이태백이 없어도
호수 넘어 보이는 건
동해바다의 달이 아니라
호텔이요 모텔간판이요...
풍악은 간곳없고
쌩쌩거리며 스치는 자동차의 소음뿐...

 

만물이 쉬어가는 게 천지요
영원을 흘러가는 길손이 세월이라더니
천지는 머물러 있건만
그 날 그 때는 어디로 흘러간 것일까?

 

달맞이꽃 지천이던 남대천 뚝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숭어 뛰놀던 푸른 물빛은
잿빛이 되어 있더라

 

바위많아 물 또한 맑았던 안인 바닷가엔
이상한 물체만이 전시되어 있었고
인적없던 정동진은 행락의 별천지가 되어 있더라.
 
백봉령 넘어오니 아직도 겨울인냥
골짜기마다 눈이요
구비마다  제설용 모래더미들...

아우라지 맑은 물줄기 따라 거슬러 올라가
구절리 계곡 그 어디메쯤
밤텐트 드리우고 물고기 천렵하던 시절도
이제는 길손되어 떠난 세월이었더라.

 

동강따라 내 달리는 차창 밖으로
봄은 많이도 와 있었다.
갈아 엎은 밭..
군데군데 피어있던 개나리꽃...
푸릇푸릇
밭 둑길마다 새싹들이 올라오고
겨울빛 산허리엔 아지랑이가 서려
희뿌옇게 보였다.

 

꿈결같이 흐르는 동강을 따라 내려오니
그 어디 쯤엔가
한반도 땅덩이가
강물에 에워쌓여 자리잡고 있었다.

 

옥시끼 동동주에
갈증난 영혼을 분칠하고
외롭던 나의 빈 가슴 채워 줄
피앙세 끌어안고 오늘의 정점인 정상에 올랐다.


산은 요동쳤고
강물은 넘쳤다.
천둥은 고막을 찢었고
붙어버린 하늘과 땅은
용암처럼 녹아 흘렀다.

 

가쁜 숨 몰아쉬며
산을 내려오니
어언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쏠~라솔미~ 레도도...
도도도~ 미쏠라 쏠....
미워도 한 세상,좋아도 한세상....
하모니카의 애잔한 멜로디가 되어
영영 내 곁을 떠나 갈 친구...


FOREVER WITH YOU의

흐느적이는 테너쎅스폰 멜로디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친구....


잘 가게나.....

 

어둠을 부수는 헤드라이트.....
열리고 있는 길...


그 길 위에
친구의 미소가 보였다.
그의 미소도 보였다.

 

그래 먼저 가마...
자네는
좀 더 이 인생을 즐기다 오게...
자네 옆에 있는
그 친구에게도 내 말 꼭 전해 주게...
재미있게
즐겁게
사랑 받으며 사시라고.....


그의 목소리가
내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 들고 있었다.

 

바람이 상쾌하게 밀려왔다.
다시 혼자로 돌아가는 길...


내 손엔
어느 틈엔가 벌써
파란 색의 막걸리 한통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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