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살아보니 별 것 아니네 그려....
어둡고 막막했던 그 때를 벗어나
여기까지 오고 보니
별 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내가 그렇게도 궁금했던 나의 미래를
다 건너오고 보니
아하... 이런 거였군....
내가 어린 날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나의 미래가
바로 이런 거 였었군...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겨울 밤....
종로 일가 뒷골목을 걸으며....
오십 년 전....
그날 처럼 그 곳을 걸으며....
그날처럼
그 곳을 함께 걸었던 옛친구와 걸으며.....
그 땐 그랬었지....
각자 나름대로 쓴 습작詩들을 들고
30원짜리 커피잔을 기울였었지.
무교동 낙지집에서
학사주점에서....
명동 25시에서 30도짜리 소주를 마셔대며
더러는 소설을 들고
낙뢰목의 고통을 시어로 승화시키며
아니면
콩나물을 기르듯
주체를 기르며
옥경이를 흠모하며 자애를 기다리며
신문지로 도배된 벽 속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오던 빈대를 터트려 죽이며
우리는 그 소리를
내일로 향해가는 징검다리 밟는 소리라고
씨부려대기 일쑤였었지....
고장난 영혼을 고쳐보겠다는 생각보다는
영자의 치마폭에서 위안을 받고 싶어했던 순수들....
오만으로 거드름을 피우고
장발로 새치를 감추려고 했던 위선을 부리면서도
비트문학을 갈구했던 그들...
그 중에 몇몇과
거대한 빌딩에 깔아뭉개져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리본다방 옛터를 걸었다.
해맑았던 얼굴 위에
산맥처럼 드리워진 주름들....
짙익은 마른 가랑잎 내음같기도 하고
풋풋함이 베어있는 소사 복숭아 향 같기도 한
환한 미소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 문우....
참새구이에 삼학 쐬주 한잔이 절로 생간나던 겨울 밤....
네아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있는 곡두와 윤하
사십이나 다 된 아들
늦장가를 드리는
꼬부랑깽깽 할배가 되어버린 강무...
그래
살아보니 별 것 아니었지?
만년필에서 기어나오는 잉크로는
세상을 다 그릴 수 없다는 사실....
벌써
저어기 높은데 올라가 주무시고 계시는 벗들도 있쟎은가....
온몸이 작살나고 박살이 나서
쑤시고 결리고 막히고 잘 안돌아가지만
그래도
아직은
오십년 전 이 곳을
다시 걸어 볼 수 있는 힘은 있지 않은가.....
행복하다 생각하세.....
언제 다시
이 길을 걸어보랴....
자네
장로직 사퇴하는 날
강무랑 셋이
인사동 와사등에서
큰 양은대야로 담아내오는 막걸리 그 거...
그 집 술 바닥나도록
잔뜩 한번 마셔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