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2

[스크랩] (말인이 부르는)청춘을 돌려다오-네번째 이야기

末人 2005. 5. 25. 11:00
(래빈더와 마로니에)-2

키가 컸다.
웃을 때 덧니가 보였다.
목도 길었다.

덕수궁을 빠져나와
정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분위기 있는 다방이 있었다.
커피 잔을 가운데 놓고 앉아
얼굴만 바라봤다.

"이번에 문정문학 동인회를 만들었어요,
운파,곡두,석초, 등등 모두 나옵니다."

함께 가자는 거였다.
그 모임에 그녀를 가입 시켜야
특별한 일 없어도 자연스레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엉뚱한 제안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극구 사양했다,
글 쓰는 분들 모임에 자기가 왜 가입을 하느냐 였다.

허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 후로 수 많은 편지를 보내며 그녀를 설득하여
기어코 그녀를 문정회로 끌어드리는 데 성공했다.

이 후로 한달에 두번
우리는 자연스레 만나는 관계로 발전했다.

모임이 끝나면 우린
단둘이 마냥 걸었다.
종로 1가
무교동 뒷골목에서부터
서대문을 지나 아현동,신촌을 지나
지금은 양화대교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 제2한강교를 건너
김포가도까지 걸었다.

그녀의 집이 염창동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방향은 늘 그 쪽이었다.

가끔은
그녀가 다닌다는 서강에 있는 천주교 성당 마당에도 들렸다.

김포로 가는 가도
한강 변엔 나무벤치가 있었다.

우린 그 곳에 앉아
강물 가득 번져가는 저녁 노을을 보곤 했다.

만나고 있어도 그리웠다.
만나고 오는 날은
더 길고 더 많은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보냈다.

어느새 그녀와 나는
마로니에와 래빈더가 되어 있었다.
래빈더는 내가 항상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의 첫머리에 써 지곤 했다.

그러던 나에게
군대영장이 나왔다.

설탕도 타지않고
쓰디쓴 커피를 마셨다.
그 커피를 마시며 우린
울었다.

때마침 유행하던 노래
잊을 수가 있을까를 읊조리며
우린 걸었다.

수녀가 되기를 희망했던 여인~!
그로부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첫 휴가를 나오고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수녀의 길을 가야만 한다고 했다.

혼자 돌아와
수십통의 편지를 밤새 썼다.

잘 가라는 편지를 쓰며 울었다.

보고싶다는 그 말만 안했어도
그냥
평범하게 지나쳤을 여인이었을텐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갓 스물 처녀..
그도 이젠
50대 중반의
초로의 여인네로 변해 있겠지...
출처 : 도봉에서 관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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