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

강촌 검봉산

末人 2006. 11. 21. 10:44

풍경을 가르며 열차가 간다. 
속세의 찌든 삶을 벗어나 
피안의 서방정토로 영원한 안식을 찾아 힘차게 달려 간다.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는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며 
만추의 코발트빛 하늘 속으로 
힘차게힘차게 빨려 들어간다. 
하늘을 찌를 듯 뻗어있는 가지 끝에서 
아직도 떠나지 못한 잎새들이 
휘젖는 바람의 촉구에 온몸을 떨고 있다. 
불면의 밤을 지샌 퀭한 눈동자 속으로 
차가운 초겨울 강물이 흘러 들어오고 
핏기잃은 산야는 
깜빡깜빡 
치매환자의 기억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살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인가. 
저승으로 가지고 갈 수조차 없는 
오늘 이 순간 만들어지는 
추억덩어리를 
한점씩 베어서 
가슴 안에 담으면서도 
안타까와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다만 지금이 좋아서일 뿐이리라.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경이롭다. 
더운 날이 있으면 추운 날도 있고 
햇살 강하게 퍼붓는 날이 있으면 
눈발 펄펄 휘날리는 날도 있다. 
시절은 어느덧 
만추와 초동의 기로에 와 있었다. 
옷깃 틈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차다. 
마주하는 얼굴들이 
조금은 부석해 보인다. 
초로의 나이에 
낙서 즐비한 강촌의 낭만이 절절하기야 하겠냐만은 
기적소리 저며드는 강물과 
햇살 부숴지는 역 마을의 포장도로와 
행락인들을 유혹하는 모텔들의 간판들을 보면서 
조금은 젊음 쪽으로 뒷걸음쳐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된비알로부터 시작된 산행은 
얇은 듯 두터운 살가죽 위에 
송글송글 땀방울들을 만들어 올린다. 
강내음 묻혀있는 싱그런 바람을 
배부르도록 마셔두어야지. 
젊음의 넋들이 용솟음치는 희망의 땅에서 
잃어버린 나의 청춘을 찾아내야지.. 
설레이는 마음 한아름 부등켜 안고 
능선 위로 올라선다. 
굽이치는 강물이 아련하기만 하다. 
강원도를 휘돌아 
경기도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물줄기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덧 먼먼 그 옛날의 
잊혀졌던 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느낄 것이 무엇이며 
뱉아낼 감정이 무엇이던가... 
그냥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진정한 내가 되는 것이다. 
살면서 
내가 사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 얼마였던가... 
떠밀려 떠밀려 온 인생이 
어느 덧 석양 앞에 초췌하게 서 있다. 
이대로 져 버린들 
그 누가 기억이나 해 줄 것인가? 
기억해 준들 무슨 의미가 될 것인가.. 
그들도 나처럼 
떠나고 잊혀지고 사라질 것인데.. 
아주 어렸을 적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벽이 
내 앞에 있다는 절망감에 
잠못 이루는 불면의 밤을 무수히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야 
죽음보다 더한 절망도 받아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는 
너무도 평범한 진리를 두고 
한탄과 좌절에 빠져 
왜 그렇게 고뇌했는지.. 
살 날이 비록 얼마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가.. 
먹고 숨쉬고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을진데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산에 오를 적마다 
발아래 들어오는 속세의 풍광들을 바라보며 
허무하고 덧없는 것에 
우리들이 너무도 절박하게 
소중한 목숨을 처절하게 걸고 
승부하며 사는지를 느끼곤 한다. 
검봉이라고 예외일수야... 
서글프다. 
아닌 듯 모르는 듯 
배포 크게 살고팠지만 
어디 그게 내 맘대로 되는 일일까? 
한해를 풍미하던 잎새들이 
말라 떨어져 쌓여있다. 
편안한 산길이다. 
오후 들면서 안개는 걷히어 졌고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정상에 우뚝 선 25인의 회원들 표정이 밝기만 하다. 
부드러운 낙엽 길 따라 4시간을 걷고나니 
시원스레 내리 쏟아지는 구곡폭포의 장관을 만났다. 
십여년 전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 
애써 잊으며 식당행 버스에 오른다. 
어둡도록 강변에 앉아 
물소리를 옆에 끼고 캔맥을 한잔 들이켰다. 
막혔던 숨통이 열리고 
매말라있었던 가슴이 젖어온다. 
강변... 
어둠을 뚫고 미끄러져 들어 오는 열차... 
또 다시 나를 
삶의 처절한 격전지로 실어다 줄 
군용열차와도 같은... 
기적이나 한번 시원스레 울려 줄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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