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식도내시경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 밝아온다.
지난 일주일 동안을
온갖 싸이트를 서핑하며
앞으로 내게 닥칠 모든 경우에 대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며
또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지 알아보는데 소요했다.
식도암 판정을 받는다면?
무엇부터 해야할까..
우선 입원을 하여 보다 정밀한 검사를 할 것이고
그 검사결과에 따라 당장 수술이냐
아니면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먼저 시행한 후 수술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수술을 못할 정도까지 병기가 진행되어 있을 것인가.. 등등
마음이 실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아직
마무리 지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엇부터 할 것인가?
나로 인하여 우리 가족들이 받을 엄청난 시련은 또 어쩌란 말인가..
나 하나 잘못되는 건 얼마던지 감당할 수 있는데
저 병약하고 노쇠한 어머니는 어쩌란 말인가..
자나깨나 자식 건강을 걱정하는 노모인데
노모가 준 이 몸둥이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고
제멋대로 굴려 몹쓸 병까지 얻고만 이 불효는 어쩌란 말인가...
아내는 ..
자식은...
아..
가슴이 쿵쾅거려 미칠지경이다.
한강을 건너는데
오늘따라 심하게 낀 운무사이로 아침 태양이 솟고 있었지만
저 태양마저도
왜 저렇게도 핏기잃은 모습처럼 힘이 없어 보이는지..
혼자 가겠다는 데에도 굳이 따라오는 아내..
그녀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 보인다.
2004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이래
일년에 두번은 필히 다녔던 길..
삼성병원 정문을 걸어 들어가는데
왜 이리도 온몸이 떨리는지..
기온도 그리 낮은 편도 아닌데,
옷도 제대로 입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도 한기를 느껴야 하는지..
집을 출발하여 병원 1층에서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2층 심장내과로 향하면서도
아내와 나는 한마디도 말을 나눈 것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원무과에 접수하고
혈압재고 체중재고.,,
혈압은 119에 83
몸무게 77kg
정상이다.
9시10분 예약이었지만 9시쯤 호명되어 들어 갔다.
"어떻습니까?"
-언제나 제일 처음 던지는 담당 교수님의 질문이다.
다른 환자들을 대할 때도 늘 이래왔으니깐..
심장내과로 식도내시경 결과를 보러 오다니..
허지만 나는 이럴 수 밖에 없었으니깐...
지난 번 위 내시경 결과를 보러 왔는데요.-
마우스를 조작하여 화면 속 내시경 검사항목을 클릭한다.
-위염입니다.-
순간 나는 그럴리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암이 아닙니까?-
-누가 암이래요?ㅡ
-조직검사를 했다면 암이 의심되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소화기내과에 가서 진단한번 받아보세요. 예약연결해 드릴게요.-
너무 싱겁게 끝난 면담이었다.
얼떨떨 했다.
지난 일주일동안
식도암이라는 전제하에 온갖 사이트를 뒤져가며
차후 대책을 나름대로 계획해 온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알지 못할 야릇한 감정이 뇌리를 덮어온다.
그러면서도 과연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그만큼 나는 식도암 환자라는 굴레 깊숙히 나를 처 넣고 있었던 것이다.
소화기내과 예약이 3월이나 된다하여 4층 소화기내과 원무실로 올라가
사정을 이야기하며 조르니 내일 오후로 일반 예약을 해 준다.
지난 며칠동안
인터넷 검색을 하며
60여년을 살아온 나를 도리켜보면
식도암에 걸리고도 남을 행동을 수없이도 반복하며 살아왔다.
그 중에서도 술은 폭주였다.
체질적으로 소주는 안맞고 막걸리가 맞아 늘 그 술만 마셔왔다.
등산을 가는 날이면 막걸리를 베낭 속에 두통세통 짊어지고 올라가 산행도중
쉬임없이 마시며 걸었다.
내려와서도 뒤풀이라는 명목으로
자정을 넘겨가며 까지 퍼마셔댔다.
담배는 2002년 초에 끊었다.
끊기 전날까지도 두갑씩 태워대던 나였다.
허지만 심근경색 처방을 받고 끊은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날 마늘을 좋아하여
날마늘과 고추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따위는 없어도 밥먹는데엔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국산마늘은 속이 안쓰리지만 중국산 마늘은 속이 쓰려
날로 먹지를 못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러니까 군대도 가기전 부터
과식을 하거나
음주를 한 다음 날이면 신물이 올라오고 속이 쓰리곤 했다.
그때마다 가루로 된 노루모 한봉지를 털어넣으면 금새 가라앉곤 했다.
얼마전까지도 그랬었는데
요즈음은 과음을 해도 그런 건 없었다.
이런 점들도 인터넷 검색과정에서
위산이 역류를 거듭하다보면
식도가 위처럼 변한다는 바렛식도라는 것도 알았다.
바렛식도는
식도암,그중에서도 식도 아랫부분에 일어나는 선암의 원인이 된단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건 식도 중간 쯤에서 음식이 걸려 안내려 간다는 거다.
구정 전까지
여동생을 잃고난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날마다 퍼마시다 시피한 그 막걸리가 문제를 일으킨 거다.
식도가 막히고 가슴이 쓰리고
음식이 안내려가고 식사 후 한참 있으면
트림과 더불어 먹은 음식이 올라오고...
가슴은 늘 안개 낀 것처럼 명랑하질 못했다.
특히 과음한 다음 날은 더 심했다.
그런 날은 산을 찾아가
한 삽십분 쉬지않고 땀을 빼가며 숨차게 산을 오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슴이 편안해 지곤 했었다.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식도염이라는 판결 앞에서
나는 기쁨을 느낄 수가 없다.
심장내과 의사의 7년째 거듭되는 충고..
-술 끊으십시요.-
그래,
그것만은 지켜야 겠다.
아니 이제는 마실 자신도 없다.
소담어르신의 투병기를 눈물로 읽으며 느낀 그 감정을
언제까지고 간직하며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에 있어
많은 것들을 조심하고 자제하며 살아야겠다.
-아빠가 암은 아니란다...-
아들 딸에게 전화를 급하게 해대는 아내를 보며
나 하나의 불행이 결코
나 하나의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다.
소중한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착한 마음으로 나를 통제하며 살아야 겠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양보하고 베풀며 살아야 하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주위의 친구들이 그렇게도 잡아끌었던..
내 가족들이 그렇게도 목마르게 기도했던
신앙의 길을 가기로 했다.
믿음 있는 삶을 살면서
다시 얻은 이 덤의 인생을
무언가 아름답게 꾸며가고 싶다.
남몰래 밤잠을 잃고
혼자 뒤돌아 누워
겉으로 울음조차 터트리지 못하고
안으로안으로 오열을 하며
자식의 무병무탈을 갈구한
노모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느님께...
아주버니..
기도하고 있습니다.
너무 염려 마세요..
괜찮을 거예요..
라던 제수씨의 믿음에....
형님도 원..ㅎ
웃어대던 두 동생들의 위로에....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가슴이 콩알만해졌었을
두 자식에게...
어멋님도 같은 증상인데 식도염 진단을 받으셨다면서
괜찮을 거라며
좋은 결과 있기를 끝까지 빌어주신
페어레이디님께..
안도의 답변을 줄 수 있어
너무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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