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2

[스크랩] (말인의)청춘을 돌려다오- 5 (단 하루의 사랑1)

末人 2006. 5. 16. 16:17

(방황하던 시절, 그리고 자애)

무거운 마음으로 귀대를 했다,
중대장은
언제나 내게 수 많은 여성들과의 염문을 듣길 원했다.

날마다
중대본부로 배달되어 오는 수많은 편지가
모두
여성들로 부터 온다는 사실과
그 대부분이
일병인 나 한사람에게 오는 것에 대하여
중대장과 대대본부 정보장교 두 분은
놀라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고참병들은
아가씨를 소개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나는 선심 쓰는 냥
내게 날아온 여인들의 편지를
주소까지 몽땅 그들에게 줘 버렸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면서..
그래서
휴가나가
연애에 성공한 고참병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내게
그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금박지에 포장된 청자 담배를 한갑씩
사다주곤 했다.

제 2의 래빈더로
나는 안정애를 택했다.

그녀는
군 입대하기 전부터
내게 수도 없는 편지를 보내주던
4살 연하의 여인이었다.
하루에도 두 세통 씩
걷다가 생각나면
또는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도
아무 메모장이고 편지를 써서 보내주는
여인이었다.

허지만
Y가 있었기에
별로 큰 관심없이
어쩌다 한통 답신을 보내주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
래빈더가 떠나고 나니
갑짜기 그녀가 생각났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와 그 수많은 편지를 나누었지만
아직도 얼굴을 한번도 보질 못했다.

공교롭게도
만나자고 약속하면 무슨 일이 생겨
이루어 지질 못하곤 했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만날 수 조차 없었던 사랑이었다.

세번째 휴가를 받던 날
중대장은 나를 특별히 불러 세웠다.
"이번에 나가서는 꼭 재미있는 사건을 저지르고 와서 보고할 것..."
엄명이었다.
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풍요 속의 빈곤인 내가 아니던가?
많을 것 같지만 정작 하나도 제대로 된 여자 친구가 없는 나...

휴가를 나가기 직전
내게 날아왔던 여인들의 편지 중에서
서울에 사는 일곱 명의 여성을 선택해서
똑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내가 휴가를 나가니
모월 모일 오후 1시
종로1가 리본다방으로 나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7명에게 보냈으니
한 사람정도야 안 나오겠느냐 하는
느긋한 심정으로 휴가를 나갔다.

문정모임을 가지던 다방..
곡두와 더불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한 여인이 들어왔다.
두리번 거리며 멈츳멈츳 하더니 카운타로 가서
말인을 찾았다.

오호~~!
드디어 성공이닷.
한 여인이 나와 준 것이었다.
반갑게 그녀와 마주 앉았다.
그러나 낭패였다.
일곱 명 중
도대체 이녀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명단은 메모지에 적어 가지고 나왔지만
물어 볼 수도 없고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한참을 대화하면서도
상대가 누군지 몰라 이름도 부르지 못하고
어물어물 하고 있는데
이번엔 또 다른 한 여인이 찻집을 들어서더니 말인을 찾는 게 아닌가?

아뿔싸..
두 마리의 토끼를 쫓다간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는 절대 위기의 시간..
나는
힐끗 곡두에게 눈짓을 했다.
곡두가 그녀를 접대했다.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었다.
카운타에서 전화를 받던 마담이
나를 찾는 전화라며 바꿔준다.

바로 다방 밖
공중전화 부스에 와 있단다.
에구 클났다.
여복이 와장창 한꺼번에 밀어 닥치다니..

황급히 나갔다.
그래
할 수 없다.
언제 또 보랴..
그 중에서 그래도 제일 아름다운 여인을 선택해서 데이트를 즐기자.
위기는 기회였다.
베짱이 생겼다.
오는 여인을 이 핑계 저 핑계로 돌려보냈다.
7명이 모두 몽땅 다 나와 준 것이었다.
나는 베짱 좋게도
그 중에서 나름대로 가장 아름다와 보이던
한 여인을 선택해서 독대를 했다.

허지만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이야기 끝에
군인을 늘 보고 산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녀가
국방부 조달본부 면회실에 근무하는
김영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중대장의 엄명대로
무언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조바심이 들었다.

하여
이야기를 빨리빨리 진행시켜 나갔다.
술을 좋아 하느냐고 물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보조개가 살프시 파이며 지어 보이는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왔다.

얇은 입술은 붉게 홍조를 띠고 있었고
눈동자는 하늘처럼 맑았다.

조용조용한 음성은 내 가슴의 콩을 볶는다.

걸죽한 목로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흐린 하늘이 비를 뿌려대고 있었다.

몇 순배의 탁주 잔이 오고가며
우리는 흡사
오래된 연인처럼 가까와져 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묘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정심을 유발시켜야 겠다는 생각에
한가지 제안을 했다.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하여
그녀는 몹쓸 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나는
만취만 되면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곤 한다는 이야기를 지껄였다.

그녀의 이름은 자애..
망우리 어느 묘역
아무도 찾지않는 쓸쓸한 무덤에
달랑 하나 세워져 있는 묘비,
내 사랑 여기 잠들다. 라는 묘비문...

나는 지금
비가 오는 이런 날
이렇게 한잔 술을 마시고나면
그 자애의 무덤을 아니 찾고는 못 견딘다는 말을 했다..

같이 가실래요? 라는 말도..
....네~!!

잠시 망서리는 듯 하던 그녀가 쾌히 응했다.

마음은 애드발룬을 타고 있었다.
가슴은 더욱 뛰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횐희가 왔다.

우리는
함께 비가 내리고 있는 거리로 나섰다.
망우리 고개를 넘어가는 버스에 올랐다.

허공을 보고 있는 그녀의 옆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왔다.

이 순간이
꿈이 아니길 빌었다.
거리엔 어느 덧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버스는 비가 내리고 있는
어두워진 망우리 고개로 접어들고 있었다.
출처 : 도봉에서 관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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