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록 2

고통스러운 배려

末人 2011. 7. 3. 14:06

 모든 수속을 마치고 간호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2인 병실
사내는 혼자 누워 tv를 보다말고 나를 힐끗 쳐다본다.
물기 머금은 탄색빛 하늘이 시야 가득히 안겨온다.
그 아래 희뿌연 비안개에 갇힌 산줄기가 그림처럼 놓여있다.
이런저런 절차를 마치고 다시 조용해진 병실,,,
사내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수?
아,그냥쬐끄만 종기가 나서...
ㅎㅎ 푹 쉬러 오신 거군요 ㅎㅎ 나는 쓸개빠져 살다가 이번엔 간뎅이가 부어서,,ㅎㅎ
나보다 깊은 병중인 자신에대한 질책인지
아니면 나에대한 부러움인지 알듯모를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이것저것 서로를 아는데 필요한 대화들이 이어지고
다시 깊은 침묵이 흘렀다.
병실 창문을 타고 깊숙히 드리우던 햇빛도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온다.
계속 켜둔 에어콘 바람이 조금은 춥게 느껴진다.
춥지 않으세요?
내가 물었다.
그냥 생긴대로 놔두지요 뭐,,
그의 편안한 대답이었다.
나는 조금 추웠지만 그가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온도를 높일 수는 없었다.
소등을 하고 잠을 들려해도
찬 에어콘 바람이 영 거슬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저 사람이 그냥 놔두자는데
나의 뜻대로 일방적으로 온도를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부시시 일어나더니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는 모양이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 것만 같았다.
허지만 나는 찬 에어콘 바람이 싫어 때는 이때다 싶어 온도를 한단계 높혀버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는 아무 것도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변화된 실내온도를 모르는 듯 했다.
온도를 높혔지만 그래도 나에겐 추웠다.
저이가 잠만 들어라 더 높히고 말테다...
누워서 이불로 얼굴까지 뒤집어 썼지만 코끝까지 시려오는 게
금방이라도 감기에 걸려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칸막이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잠이 들었나보다
간간히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생각 같아서는 확 꺼버리고 싶었지만
사내가 혹시라도 더워서 깰까봐 그럴 수는 없었고 최대한 온도를 높혀놓은채
나도 잠이 들었다.
온 밤을 벌벌 떨며 자야했다
다음 날 새벽
혈압을 재겠다며 간호원이 들어와 부시락 대는 바람에 우리 둘은 다 잠이 꺴다.
그가 드리웠던 자신의 칸막이를 열어 젖혔다.
퉁퉁 부은 눈을 부비며 반쯤 일어나 앉은 그의 반신 윗쪽에는 두툼한 점퍼가 걸쳐있었다.
아니 웬 점퍼까지?
내가 물었다.
자신은 추위를 무지 탄다는 것.
두터운 점퍼 뿐이 아니고 그의 침대 메트 위엔
조그마한 전기장판까지 깔려 있었다.
아뿔싸.....
그렇다면 춥다고 에어콘을 끄자고 말씀하시지....
에고 선생님이 더워하실까봐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초저녁에 내가 춥지 않으세요? 하고 물은 건 자신을 배려해서 하는 말 같아
그냥 놔두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거다.
난 더워서 샤워를 하신 걸로 알았죠...
ㅎㅎ 오늘 수술한다는데 샤워는 해야할 것 같아서 한 것 뿐인데요 ㅎㅎ
둘다 추위를 무지 타는 사람끼리
원치도 않는 에어컨을 밤새 틀어놓고 잔 것이었다.
이런이런....
배려도 너무 지나치면 감기걸려 죽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동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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